|
시민운동 활동가이자 교수에서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 중 한 축을 짊어진 ‘어공’(어쩌다 공무원)으로 변신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공이 컸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기반으로 지난 2년간 재벌개혁과 갑을관계 개혁을 뚝심 있게 추진해 왔다. 다만 개혁작업에 몰두하다보니 공정거래위원회의 본연의 책무인 경쟁주창(competition advocacy) 역할은 손을 놓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아울러 다양한 혁신기업이 출현해 기존 산업과 갈등을 빚는 과정에서 시장 경쟁이 과거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음에도 대응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다.
오는 6월14일 취임 2주년을 앞두고 김 위원장과 인터뷰를 통해 지난 2년에 대한 평가와 남은 과제를 물었다.
다음은 김 위원장과 일문일답이다.
-2년간 경쟁당국 본연의 역할인 경쟁 주창 기능은 미흡했다
경쟁주창 기능은 △경쟁 홍보 △카르텔·시장지배적지위 남용 등 경쟁 제한 행위에 대한 제재 △규제개혁과 시장 분석 등 3가지다. 규제개혁과 시장분석을 제외하고는 한국 공정위의 수준은 이미 세계 경쟁당국과 어깨를 견주어 뒤지지 않는다.
남은 과제는 규제개혁과 시장을 분석해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부분이다. 역량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점 인정한다. 방송·통신 분야가 대표적이다. 융·복합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는데 경쟁당국 입장에서는 산업의 과거, 현재, 미래를 엄격히 분석해야 한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도 4차산업혁명의 관점에서 과거 정책을 리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M&A심사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산업을 정확히 분석해야 산업정책과 경쟁정책 충돌을 해결할 수 있다.
-타다 갈등 속에서 금융위와 달리 공정위의 목소리가 없다
△타다 문제와 관련해서 관계부처간 협의를 물론 하고 있지만, 정부안이 나오기 전에 먼저 입을 열수는 없다. 또 다른 갈등이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혁신기업가들한테 요청하고 싶은 것이 있다. 라구람 라잔(Raghurm Rajan) 시카고대 교수와 루이지 징갈레스(Luigi Zingales) 교수가 공저한 ‘자본가로부터 자본주의 구하기(Saving Capitalism from the Capitalists)’를 권한다.
혁신 기업가가 자신의 비즈니스와 관련한 의견을 충분히 개진할 수 있다. 정부도 비판할 수 있다. 혁신사업을 위해선 정부가 바뀌어야 할 부분도 있으니 쓴소리 할 수 있다. 하지만 개별 사업 영역의 혁신이나 규제혁파를 넘어 젊은이들에게 롤모델이 돼야 할 혁신기업가들이 공통으로 내야할 목소리도 있다고 생각한다. 혁신 사업가들이 단순히 세금을 많이 내고 사회에 기부를 많이 하고 도덕적 설교를 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젊은이들에게 미래의 비전을 보여주고, 포용의 정신도 들려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마이클샌델의 저서인 ‘정의란 무엇인가?’에 이런 대목이 있다. 농구 황제인 마이클 조던이 20년 전에 태어났다면 큰 돈을 벌기 불가능 했을 것라는 거다.
그의 재능은 시대를 구분하지 않지만 공을 링 안에 꽂아 넣는 능력을 포상해주는 사회에 사는 행운도 따랐다. 성공은 결국 자기 재능과 사회환경 두가지가 결합한 것이다.
실리콘밸리 1세대 격인 빌게이츠 등은 미래의 비전을 보여주고 하나의 통합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을 했다. 우리나라 혁신기업가들도 혁신과 포용의 비전으로 한국의 자본주의를 구하는 선도적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 분열이 아니라 통합된 사회로 나가기 위해서 어떤 역할을 해야할지 미래지향적인 말씀도 해주길 기대한다.
|
△공정위가 30년간 재벌을 규제했지만 성공 못 한 것은 딱딱한 공정거래법을 통한 사전 규제 방식에 매달렸기 때문이다. 1987년 정치민주화 시대에 형성된 재벌규제방식이 여전히 유일한 방법이라는 인식이 오히려 개혁성공의 애로 요인이다.
재벌개혁의 목표는 일관성을 갖더라도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상법은 모든 기업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충분히 숙성된 내용을 담아야 한다. 공정거래법은 소위 말하는 재벌 규제, 금융그룹통합감독법은 대형 금융집단만을 대상으로 한다. 이런 법들의 합리적 체계를 잘 만들때 우리 기업들도 경쟁력 있고 사랑받는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다.
일부에선 스웨덴의 대타협을 거론한다. 재벌, 노동문제 등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단번에 해결하자는 거다. 스웨덴 대타협에 대한 오해가 낳은 주장이다. 스웨덴 학파의 핵심은 ‘누적 과정(cumulative process)’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제도간 상호연관성을 만들면서 변화를 쌓아가는 게 핵심이다. 스웨덴은 이런 작은 변화를 쌓아 재벌 문제 등을 해결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20년 만에 달라진 우리 사회 모습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기업입장에서는 오히려 시어머니가 늘었다고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한 시어머니가 든 몽둥이는 약해졌지만, 여러 겹이 생겼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발전이다. 하나의 수단으로 개혁을 할 수 없다. 오히려 시장에 반하는 규제가 될 수밖에 없다.
공정위는 기업의 자발적 변화를 강조하는 베스트프랙틱스(모범관행·Best Practice)도 제안하고 있다. 법, 시행령 등 경성규범(hard law)뿐만 아니라 모범 관행, 상생협약 등 연성규범(soft law)을 통해 빈 구석을 잘 메워야 한다. 유럽에서 먼저 시작됐다. EU가 통합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경성법률로만 경제 공동체를 형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다 유연한 연성 규범을 도입했다.
-연성규범은 좋게 말하면 자발적 개혁이지만 기업 팔 비틀기 논란이 있다.
△유럽 역시 ‘팔 비틀기’ 논란은 있었다. 연성규범의 모국이라고 하는 영국에서도 원칙은 “준수하라 아니면 (준수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라”(comply or explain)이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준수하면서 불평하는”(comply and complain) 것이 현실이라는 볼멘소리가 있었다. 그러나 연성규범의 유연성이 경쟁력의 원천이 되었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김 위원장은 일감몰아주기 문제와 관련해 총수일가가 비주력 비상장 기업의 지분을 팔거나 팔지 못하면 그 이유를 설명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물론 정부가 법적 근거 없이 가이드라인을 남발할 경우 절차적 정당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비판에 대해 잘 알고 있고 공감한다. 그럼에도 우리 경제 현실에서 좀더 유연성을 갖고 개혁을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관(OB)·대기업 접촉 제한으로 탁상공론 규제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공정위가 ‘갈라파고스’가 됐다는 비판을 받을 만큼 부당한 접촉을 넘어 아예 접촉을 안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는 것 잘 안다. 하지만 공정위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오버슈팅’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개혁의 성공여부는 오버슈팅 이후 새로운 균형으로 수렴하는 과정을 부드럽게 관리하는 것에 달려 있다. 공식적으로 시장과 소통을 하는 자리를 만들려고 한다. 분기별로 미래산업과 관련해 외부 연구소, 기업과 세미나를 정례화하는 방안을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