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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가끔 생각나는 곳이 있다. 특별히 인연을 맺은 곳이 아닐지라도 “오랜만에 거기나 갈까”하고 마음을 두드리는 곳. 대구가 그런 여행지 중 하나다. 대구에서는 오랜 시간이 쌓인 사연 많은 골목길이 이리저리 나 있다. 이 길을 따라 걸으며 옛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근대로 떠나는 시간여행도, 구슬프게 들리는 김광석의 노래여행도 좋다. 복작이는 낮의 거리도 좋고, 어둠이 내려앉아 색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밤의 거리도 좋다. ‘이래도 대구~ 저래도 대구~ 이래도 좋구~ 저래도 좋구~ 언제 가도 좋은 대구’로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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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의 싱그러움 가득한 팔공산
대구도 이미 봄이 무르익었다. 이 봄의 정취를 느끼고 싶다면 도심을 살짝 벗어나야 한다. 대구는 잠시 숨 고르기를 하며 한 박자 쉬어가기 딱 좋은 그런 곳이다. 팔공산·달성습지·앞산전망대 등 편안하게 걸으며 화사한 봄 풍광을 접할 수 있다.
팔공산에는 팔공산의 8자를 딴 8개 코스와 팔공산 자락을 하나의 선으로 연결해 걸을 수 있도록 한 4개의 연결코스, 총 12개의 길이 있다. 그중에서도 팔공산 올레길 6코스 단산지 가는 길은 불로동고분군을 출발해 경부고속도로 굴다리∼봉무공원∼단산지∼만보산책로∼봉무동 마을길∼강동새마을 회관까지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삼국시대 고분군에서 시작해 조선후기 마을의 중심 자리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가벼운 흙길이 대부분이다. 파릇파릇 피어나는 초록의 싱그러움이 더해져 봄날 산책코스로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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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로동은 고려 태조 왕건이 공산전투에서 패해 도주하다가 이 마을에 이르렀는데 어른들은 다 죽고 아이들만 남아 있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불로동에는 고대 국가의 무덤인 고분군이 있다. 지름 20m가 넘는 거대한 것부터 일반 무덤만 한 것까지 모두 214기다. 출토된 유물들로 보아 4~5세기경 이 일대에 살던 부족의 지배세력 고분으로 추정할 따름이다.
고분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내려오면 경부고속도로 아래를 지나는 굴다리가 나오고 봉무공원에 닿는다. 봉무공원으로 들어서면 넓은 단산지가 눈에 들어온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6코스를 이어 걷게 된다. 학습관, 생태원, 영상관, 사육장 그리고 무궁화동산으로 꾸민 나비생태원을 지나면 오솔길이 나온다.
6코스는 단산지 중간 지점에서 만보산책로로 이어진다. 만보산책로는 호수 산책길보다 찾는 사람이 적어 호젓하다. 만보산책로 숲길 끝에 단산지 제방이 나오고, 제방 옆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단산굴이다. 단산굴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인공 동굴이다. 단산굴을 지나 큰길을 건너면 야트막한 언덕에 봉무정과 봉무토성이 자리 잡고 있다. 봉무토성은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철기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사용한 유물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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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에도 나루터에도 봄기운에 물들다
봄의 기운을 품고 피어오르는 꽃과 나무는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생긴다. 대구 자연생태의 보고 달성습지는 낙동강과 금호강, 진천천과 대명천이 합류하는 지역에 있는 하천습지다. 보기 드문 범람형 습지로 사계절 다양한 식생을 볼 수 있는 자연생태의 보고. 개방형습지·폐쇄형습지·수로형습지 등이 있다. 봄이면 갓꽃이 장관이다. 여기에 백로나 왜가리 등의 철새와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2종인 맹꽁이도 볼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강의 수위에 따라서 습지의 형태가 한반도나 아메리카 대륙, 남미 대륙의 모양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사문진 나루터는 ‘모래가 많은 백사장으로 통하는 문’이라는 뜻. 신라시대부터 이 나루터를 중심으로 많은 절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오랜 역사를 품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대구로 가는 모든 물자가 통하는 관문으로, 대구에 처음 피아노가 들어올 때도 이 나루터를 통했을 정도로 무역이 활발하던 대일 무역의 중심지였다. 사문진 나루터가 번성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팽나무도 볼거리다. 옛 정취를 살릴 수 있는 주막촌과 나루터 계류장, 나룻배에 이어 유람선까지 운항하면서 사문진 나루터 일대가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독특한 분위기의 장소로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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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동산이라는 뜻의 화원동산은 도심 속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울창한 숲과 사철 꽃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화원동산은 신라 35대 경덕왕이 가야산을 왕래할 때 행궁을 두었던 곳. 1928년 화원유원지로 조성한 이후 1978년 12월 화원동산으로 개장했다. 상화대 위 팔각정에서 바라보면 낙동강, 금호강, 진천천이 합류하는 곳이 한눈에 보이는데 제각기 다른 빛깔을 띠고 있어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산 위에는 옛 토성의 흔적이 있고, 산 아래에는 고분군이 남아 있다. 천천히 걸으면 팔각정이 있는 정상까지 30분 정도 걸린다. 오리전기차로 편하게 올라갈 수도 있다. 낙동강과 달성습지가 한 눈에 보이는 포토 존은 일몰 포인트로도 유명하다.
대구의 남구, 달서구, 수성구에 걸쳐있는 앞산. 해발 660m 높이에 좌우로 산성산과 대덕산을 거느리고 있다. 이들 세 산 줄기의 북쪽 계곡에 조성한 공원이 앞산공원이다. 대구에서 가장 큰 도시자연공원으로 케이블카, 전망대, 낙동강승전기념관 등이 있어 가족나들이 코스로 인기다. 케이블카 정상에서 북쪽으로 180m 지점의 비파산 정상부에 설치된 앞산전망대에서 대구 시가지와 멀리 팔공산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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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따라 이색적인 대구 시간여행
대구 도심은 400여년간 영남의 정신적·지리적 중심지였다. 여기에 한국전쟁의 피해가 적어 근대 문화유산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덕분에 격동의 근현대사에 얽힌 이야기가 집중적으로 얽혀있는 공간과 사람이 있다. 대구근대골목은 20세기 우리 지역의 근대사를 고스란히 스토리로 담아낸 골목길이다. 총 5개 코스가 있다. 한 번에 코스를 정주행할 이유는 없다. 발길 닿는 대로 골목길을 따라 걷는다.
제1코스경상감영달성길은 북성로와 서성로를 중심으로 달구벌의 그때 그 시절을 주제로 엮은 길이다. 대구의 옛 지명 ‘달구벌’의 기원과 조선시대 행정중심도시로서의 모습, 근대 상업발전의 근간 등 흘러간 시대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제2코스인 근대문화골목은 근대문화의 발자취를 주제로 비교적 짧은 코스이지만 볼거리가 많다. 골목투어를 전국 유명 관광지로 만든 가장 인기 있는 핵심 코스다. 동성로, 남성로를 중심으로 엮은 제3코스인 패션한방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약령시가 있었던 약전골목, 교동귀금속거리·주얼리 관람·체험·쇼핑이 가능한 주얼리타운, 대구 최고 번화가 동성로, 전국 3대 재래시장 중의 하나인 서문시장을 볼 수 있다. 제4코스 삼덕봉산문화길은 젊음과 예술의 거리를 주제로 하는 길이다. 마지막으로 제5코스 남산100년 향수길은 남산, 종교, 인쇄골목을 만날 수 있는 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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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즈음에’, ‘이등병의 편지’, ‘사랑했지만’ 등 수많은 명곡을 남기고 떠난 천재 가수 김광석. 그의 노래가 봄바람에 실려 귓가를 어루만진다. ‘김광석다시그리기길’에서는 다양한 거리 공연은 물론, 기타 선율에 실려 오는 김광석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김광석 골목 스튜디오라 불리는 대구MBC 라디오 부스도 있다. 대구여행자들의 인증 샷 코스로 빠지지 않는 곳이다. 김광석다시그리기길과 이어져 옛 추억을 공감할 수 있는 방천시장은 1945년 해방 후 일본과 만주에서 온 사람들이 장사를 시작하며 생성됐다. 한때는 대구 서문시장, 칠성시장과 더불어 대구를 대표하는 시장으로 손꼽혔다. 지금은 문화예술가들의 활동으로 활기를 되찾고 있다. 함께 둘러보기 좋다.
△여행팁= 이달 12일까지 대구는 ‘2019 봄 여행주간’에 맞춰 ‘Nature 대구, 당신이 몰랐던 대구의 아름다운 자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대구 생태(ECO) 관광지를 재조명한 생태체험 투어와 함께 대구의 먹거리를 즐길 수 있도록 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