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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만난 신인경(사진) 코트야드 메리어트 서울 보타닉 파크 총지배인은 외국 검찰에 출석한 이야기를 넉살 좋게 늘어놓았다. 총지배인은 회사에 빗대면 최고경영책임자(CEO)이다. 그는 메리어트인터내셔널 계열 호텔 최초 한국인 여성 총지배인다운 배포를 보여줬다.
신 총지배인은 “당시 총지배인이 프랑스계 레바논인이었는데 갑자기 사라졌고 부총지배인이 쫓겨나는 등 호텔이 혼란의 연속이었다”라며 “(본인이) 총지배인 대신 석 달가량 호텔을 이끌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50여개국에서 온 쉐라톤 칼리디야 호텔 직원 대부분은 생계가 어렵고 외로웠다”라며 “여권을 돌려받기 위해 주아부다비 한국 대사관에 도움을 청하고 불안해하는 직원을 다독이자 직원들 얼굴이 활짝 피는 걸 느꼈다”라고 덧붙였다.
처음 호텔 재무를 도맡았던 신 총지배인은 이 같은 경험을 계기로 호텔 운영에 관심을 두게 됐다. 그는 “처음 호텔업계에 몸담을 땐 재무 쪽에 흥미를 느꼈다”라면서도 “시간이 흐르니 호텔의 꽃은 운영(오퍼레이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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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총지배인은 “입사한 뒤 처음 받은 업무 지시가 ‘미스 신, 커피 타 와’였다”라며 “여성이 건설회사에서 살아남기란 사실상 불가능했기에 시집을 가거나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장 결혼한다고 잘 살 거 같지 않아 다른 길을 택했다”라고 덧붙였다.
신 총지배인은 그때부터 결혼 자금 대신 유학 자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가 선택한 길은 ‘호텔’이었다. 신 총지배인은 “당시 쌍용건설이 외국에서 큰 호텔을 지어서 완공된 호텔 사진을 회사 복도에 걸어뒀다”라며 “그 사진을 보면서 호텔리어의 꿈을 키웠다”라고 말했다. 그는 1992년 미국 플로리다 국제대학교에서 호텔 서비스 매니지먼트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29세였던 1994년 한국에 돌아왔지만 신 총지배인은 호텔리어가 될 수 없었다. 당시 통념상 여성으로는 나이가 많아서다. 신 총지배인은 “그 나이에 호텔 경력이 없고 학력은 높아서 안 된다며 거절당했다”라며 “차선책으로 외국계 방위산업체에 입사해서 2004년까지 다녔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호텔리어의 꿈은 접지 않았다. 기회가 찾아온 건 석사 졸업 후 약 10년이 지난 후다. 그는 “2004년 W호텔(현 워커힐 호텔)이 개장을 준비하면서 직원을 뽑았다”라며 “당시 약 1000만원 정도 연봉을 깎으면서도 미래를 생각해 W호텔에 합류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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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호텔에서 (유리 천장을) 극복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했다”라며 “외국계 호텔은 외국에서 일할 기회가 많아서 그때마다 외국 근무를 요청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처음 외국 근무를 자원할 때에도 여성이란 이유로 벽에 부딪혔다. 신 총지배인은 “아들을 둔 엄마가 가정을 두고 어떻게 외국에서 일할 수 있느냐고 거절당했다”라면서도 “W호텔 근무 4년 반 만에 중국 쉐라톤 심천에 재무팀장으로 가게 됐다”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중국과 뉴질랜드, UAE까지 거친 신 총지배인은 재무뿐만이 아니라 운영 등에서도 수많은 경험을 쌓았다. 그 덕에 2015년 쉐라톤 대구에서 메리어트 계열 최초로 한국인 여성 총지배인이 될 수 있었다.
신 총지배인은 지난 11일 개장한 코트야드 메리어트 서울 보타닉 파크를 가리켜 “서울에서 이렇게 좋은 호텔은 볼 수 없다”라고 단언했다. 신 총지배인은 “올해 하반기 개장할 서울식물원이 바로 앞에 있어서 편안하게 휴식할 수 있다”라며 “인천공항과 김포공항이 가까우며 시내까지 이동할 수 있는 지하철도 바로 호텔 옆에 있다”라고 소개했다.
끝으로 신 총지배인은 “(본인이) 호텔을 잘 운영해야 여성이 호텔업에 더 잘 맞는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라며 “만약에 이번에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한국에서 더는 여성 총지배인이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