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소재로 한 방송 콘텐츠가 큰 인기를 끌면서 요리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도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추세는 자연히 주방에 대한 기능과 인식 등의 변화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단순히 음식을 만들고 먹는 곳에서 여가를 즐기고 가족이 소통하는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건설사들도 이런 수요자 요구에 발맞춰 차별화된 주방 평면을 개발해 속속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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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주방 변천사는 아파트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아파트가 거의 없었던 1950년대까지는 음식을 만들고 차리는 주방이 아니라 아궁이를 중심으로 한 조리 기능 위주의 부엌만 존재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아파트가 등장하면서 주부들이 서서 요리를 할 수 있는 입식 조리대가 설치되고, 찬장과 식탁이 놓인 주방이 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특히 1980년대 들어 연탄보일러가 하나둘 사라지고 도시가스가 보급되면서 변화에 가속도가 붙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ㄱ’자나 ‘ㄷ’자형 등 다양한 형태의 주방이 도입됐다.
그동안 진화를 거듭해온 주방은 최근 쿡방 열풍에 힘입어 또 한번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다. 조리 기능에 충실했던 과거에 비해 소통을 강조한 ‘가족의 열린 공간’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대림산업(000210)이 오는 11일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에 선보일 ‘e편한세상 테라스 오포’ 아파트(전용면적 76~122㎡ 573가구)에 처음 적용할 ‘디하우스’(D.HOUSE) 평면은 거실과 주방 간 경계를 허물었다. ‘오픈 키친’ 형태의 주방에서 부모는 요리를 하고 동시에 식탁이나 거실에 앉은 자녀들과 대화도 나눌 수 있다. 또 거실과 주방이 하나로 이어지면서 넓은 공간이 확보돼 중소형인 전용 84㎡형에도 8인용 식탁 배치가 가능하다. 이를 통해 햇빛이 잘 드는 거실과 연결된 식탁에서 가족이 함께 책을 읽으며 차를 마시는 등 카페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북쪽에 배치되던 주방의 향(向)도 바뀌고 있다. 모아종합건설이 지난달 인천 청라국제도시에서 분양한 ‘청라 모아미래도’ 아파트(전용 71㎡ 418가구)는 전용 71㎡C형의 주방을 거실과 함께 남향으로 배치했다. 주부들이 일상에서 아이들과 가장 오래 머무는 공간이 주방이란 점에 착안해 햇빛이 잘 드는 남향을 선택한 것이다.
대림산업 관계자는 “기존 아파트 평면으로는 수요자가 원하는 다양한 삶의 방식을 수용하는데 한계가 있어 새로운 구조를 개발하게 됐다”며 “주방은 더 이상 음식만을 만드는 공간이 아니라 거실 이상으로 가족 간의 대화가 많이 오가는 곳이란 점에 주목했다”고 설명했다.
◇중소형으로 들어온 ‘ㄷ’자형 구조와 팬트리
중대형(전용 85㎡ 초과)에 주로 적용됐던 ‘ㄷ’자형 주방 구조와 ‘아일랜드 식탁’(조리대 겸용 식탁), 팬트리(식자재 보관 공간) 등도 중소형 아파트로 확대되고 있다. 롯데건설이 지난 4일 경기도 안산시 고잔동에 공급한 ‘고잔 롯데캐슬 골드파크’(전용 49~84㎡ 1005가구)의 경우 전용 60㎡이하 소형인 전용 49·59㎡형 주방을 ‘ㄷ’자형 구조로 설계했다. 특히 59㎡A·C형은 ‘ㄷ’자형 구조에 팬트리까지 갖췄다. 롯데건설 관계자는 “중소형인데도 넓은 주방과 팬트리 등 중대형급 공간을 갖춰 모델하우스 방문객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고 말했다.
현대건설이 파주 운정신도시 A24블록에 분양 중인 ‘힐스테이트 운정’ 아파트(전용 59~84㎡)는 모든 주택형(확장형 선택시)에 아일랜드 식탁을 제공하고 있다. 또 전용 84㎡형은 물론 틈새 중소형 평면인 72㎡형에도 팬트리를 넣어 주방 수납공간을 극대화했다.
신규 분양시장에서 시도되고 있는 주방 평면의 차별화 추세는 쿡방 열풍에 따른 유행의 측면이 강하다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수요자들의 관심이 쿡방에 쏠리면서 건설사들도 자연스럽게 주방 평면을 특화하는 쪽으로 분양 전략을 잡고 있다”며 “당분간은 이런 경향이 이어지겠지만 고령화와 1~2인 가구 증가 추세로 볼 때 장기간 유지되기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