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길(96) 광복군 동지회 전 회장은 “단언컨대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가 돼야 한다”며 광복 70주년의 화두를 ‘평화통일’로 꼽았다. 그에게 올해는 광복 70년이자 조국이 분단된 지 70년이 되는 해다. 김 지사를 지난 달 29일 경기도 군포시 자택에서 만났다.
평양 태생인 그는 일본 구주현에 위치한 대방고등상업학교를 졸업하고 1944년 1월 20일 학병으로 징집됐다. 그는 “일본 여자들이 등굣길에 우리를 보고 ‘조센징’이라며 놀려댔다. 고등학교 시절이라 모욕감을 크게 느꼈다”며 “지금도 조선인들을 보고 히죽거리며 웃던 모습들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는다”고 회고했다. 당시 느꼈던 ‘민족적 수치심’은 훗날 그를 광복군으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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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중지파견군(中支派遣軍) 제7997부대에 배치됐다. 당시 같은 평양 출신인 김영호가 처가쪽 인척인 여류소설가 김사랑을 면회하고 온 뒤 탈출을 제안했다. 부대를 탈출해 서쪽으로 가면 장제스(蔣介石)의 군대가 있고 이를 통해 임시정부에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탈출을 감행했다. 며칠 동안 잠도 자지 않고 걸어가 마침내 장제스의 국민당군이 맡고 있던 안휘성 임천 소재 황포군관학교 분교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그는 다른 학병들과 ‘한국 광복군 간부훈련반(한광반)’에 편성돼 군사교육을 받았다.
교육이 끝날 즈음 한광반 내부에서는 3일 밤낮에 걸쳐 토론이 벌어졌다. 이곳에서 새로운 광복군 산하 부대를 만들 것인지, 임시정부를 찾아가 합류할지를 놓고 교육생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린 것이다. 그는 ‘임시정부 합류’를 선택했다. 그는 “‘임시정부에 참여해 국제적으로 싸워야 외국으로부터도 독립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임시정부를 찾아 나섰다”고 설명했다. 당시 임시정부가 위치해 있던 충칭시까지는 6000리(2400km)가 넘는 험난한 여정이었다. 김 지사 일행은 굶주림과 한파와 싸우며 무려 100일을 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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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선생이 임시정부 국무회의를 하다가 우리를 맞아주셨어. 모두 허름한 옷을 입고 계셨지. 김구 선생이 차례차례 우리와 악수를 했지. 우리 일행의 대표로 장준하가 답사를 했어. ‘저희가 고생하신 선생님들 발을 씻겨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지. 우리도 임시정부 선생님들도 모두 울어서 눈물바다가 됐어.”
당시 상황을 전하던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김 지사는 이 대목에서 ‘압록강 행진곡’을 소리 높여 불렀다. “우리는 한국독립군, 조국을 찾는 용사로다..동포는 기다린다. 어서 가자 고향에…”
김 지사는 “김구 선생을 만날 때 느꼈던 건 ‘민족의 피는 부모·형제의 피보다 더 뜨겁고 진하다’는 것이었다”고 했다.
그는 광복군 제2지대 제1구대 제1분대에 배치됐다. 1945년 4월 서안에 있는 미국 전략정보국(OSS·CIA 전신)에서 한반도 침투훈련을 받았다. 그는 OSS 무전반 훈련을 마치고 광복군 국내정진군 경기도 제3조에 편성돼 국내 진입을 준비하던 중 광복을 맞았다. 정부는 지난 1990년 김 지사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했다.
그는 “남북이 통일을 안 하면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 사이에서 나라의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며 “또 다시 강대국들의 식민지가 돼 민족이 사라지게 될까 걱정된다”고 했다.
그는 ‘통일이 된 이후 경제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많다’고 하자, “‘남한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은 민족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며 “자기 영리만 앞세웠던 친일 고관들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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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민족을 사랑하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자신이 올바르다고 믿는 길을 가겠다’는 인생관,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자신만 생각하는 사람이 돼선 안 됩니다. 우선은 자신의 가족부터 생각하는 마음을 가져주세요. 그런 마음이 커지면 국가, 민족을 생각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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