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서거한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는 참으로 많은 것을 남긴 ‘아시아의 거인(巨人)’이다. 1959년 영국 식민지 자치정부 총리에 이어 1965년 영국과 말레이사아에서 완전 독립한 신생국의 초대총리에 올라 25년간 재임하는 동안 싱가포르를 ‘아시아 4마리 용(龍)’의 하나로 우뚝 세운 주인공이었다. 더욱이 싱가포르의 생존 자체가 의문이라는 국제사회의 비관을 보기 좋게 깨뜨리고 이룬 업적이어서 더욱 뇌리에 새겨진 인물이다, 그동안 싱가포르의 1인당 국민총생산(GDP)은 400달러에서 1만 2750달러로 30배 이상 늘었고, 작년엔 한국의 2배인 5만 6113달러로 세계 8위이자 아시아 1위를 차지했다.
그는 깨끗하고 청렴한 사회를 강조한 ‘클린 앤드 그린’ 정책으로도 유명하다. 쓰레기 무단 투기나 침뱉기, 거리 흡연 등의 공공질서 위반 행위를 엄히 다스렸으며 공직자 처우를 민간기업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리고는 부정부패에 무관용 원칙을 고수했다. 외국자본 유치와 가공·중계무역 활성화 등으로 경제를 일으키고 공교육을 확립하는 한편 국민 90%가 자기 집을 소유할 수 있도록 ‘주택혁명’을 성공시킨 것 또한 그의 업적이다.
자신의 회고록 ‘일류국가로 가는 길’의 제목처럼 일류국가의 꿈을 실현했으니 ‘싱가포르의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는 그러나 아시아가 서구식 민주주의를 흉내내기보다는 강력한 지도력 아래 국가발전을 추구해야 하며 필요하면 언론·출판·집회의 자유를 일부 제한할 수 있다는 내용의 ‘아시아적 가치’를 밀어붙여 ‘온건 독재자’ 또는 ‘아시아의 히틀러’로 폄하되기도 했다.
그는 생전에 “싱가포르가 잘못되면 무덤에서라도 일어나겠다”고 할 만큼 조국의 지속 발전을 염원했으나 그가 떠난 싱가포르의 앞날은 그리 밝지 못하다. 빈부 격차와 저출산 등으로 경제적 혼란이 심각한 탓이다. 싱가포르의 현실은 오랜 불경기와 더불어 갈등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는 우리 사회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리콴유처럼 국가 목표를 흔들림 없이 밀고나가면서도 시대의 다양한 수요를 충족시킬 강력한 지도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