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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음료라기보다 출근의 통행료에 가깝다. 오전 8시 47분, 지하철에서 밀려 나온 직장인이 회사 건물 1층 커피전문점 앞에 선다. 머리는 아직 자고 있고, 몸은 회사에 도착했고, 영혼은 엘리베이터 어딘가에서 길을 잃었다. 그때 손에 쥐는 투명 플라스틱 컵 하나. 얼음이 달그락거리고, 검은 커피가 빨대를 타고 올라온다. 그제야 인간은 비로소 업무용 생명체로 부팅된다.
문제는 이 작은 의식에도 원가가 있다는 점이다. 커피 원두는 달러로 사고, 달러는 비싸졌고, 산지 날씨는 예전 같지 않다. 원두값과 환율, 임대료와 인건비 부담이 겹치면서 저가 커피 브랜드도 가격표를 마냥 붙들고 있을 수 없게 됐다. 최근 일부 브랜드가 기본 아메리카노 대신 달고 진한 시그니처 음료부터 가격을 조정하는 이유다.
업계는 아는 것이다. 아메리카노는 단순 메뉴가 아니다. 가격표 맨 앞에 세워둔 깃발이다. 그 깃발이 쓰러지는 순간 소비자는 “여기도 올랐네”라고 말한다. 커피 한 잔을 두고 하는 말 같지만, 사실은 점심값과 교통비 전기요금 등 월급 빼고 다 오른 세상 전체를 향한 한숨이다. 그래서 아메리카노는 버티고, 라떼와 시즌 음료가 먼저 움직인다. 소비자가 덜 민감한 곳부터 가격표가 바뀐다.
소비자도 모르지 않는다. 2000원짜리 아아가 영원할 리 없다는 것을 안다. 얼음값, 원두값, 인건비가 모두 오르는데 커피만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사람들은 묘하게 억울하다. 커피는 하루 중 가장 작은 사치였고, 가장 싼 위로였고, 가장 합리적인 핑계였기 때문이다. 야근은 피할 수 없어도 커피는 고를 수 있었다. 상사의 말은 쓰지만, 아아의 쓴맛은 내가 선택한 것이었다.
저가 커피의 성장은 이 마음을 정확히 건드렸다. 넓은 좌석도, 고급 인테리어도, 오래 머무는 여유도 필요 없다. 빨리 받고, 싸게 마시고, 다시 일터로 돌아가면 된다. 커피는 체류의 상품에서 이동의 상품이 됐다. 카페는 머무는 곳이 아니라 지나가는 곳이 됐다. 그 길목에서 아아는 직장인의 손에 가장 자주 들리는 영수증이 됐다.
그래도 내일 아침 줄은 다시 생길 것이다. 누군가는 잠을 깨려고, 누군가는 입이 심심해서, 누군가는 손에 뭔가 쥐지 않으면 하루가 시작되지 않아서 커피를 산다. 가격표를 한 번 보고, 메뉴판을 한 번 보고, 결국 익숙한 말을 한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요.”
어쩌겠는가. 세상 모든 것이 올라도 정신은 차려야 한다. 월급은 천천히 오르고, 물가는 빠르게 오르고, 메신저 알림은 아침부터 성실하게 울린다. 그 사이에서 우리가 끝까지 붙잡고 싶은 것은 거창한 행복이 아니다. 얼음이 가득 든 컵 하나, 빨대를 꽂는 작은 소리, 그리고 오늘도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다. 아아는 아직 버티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버티고 있다는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