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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괘씸하다" 망리단길 없애고 한강뷰 아파트 짓자고?

최정희 기자I 2025.03.20 05:00:00

상가주택 하나로 임대료 받아 생활비 대는 85세 할머니
망리단길 좋아 2년 전 신축건물 지어 망원동 입성한 사장님
재개발시 억대 분담금 내야 '아파트 한 채' 받는다던데..
"당장 생활비 끊기는데 아파트 받아 뭐하나, 재산권도 침해"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지난 18일 평일 대낮인데도 6호선 망원역 2번 출구는 유동인구로 시끌벅적하다. 망리단길과 망원시장이 인접해 있는 터라 젊은층부터 노년층까지 다양한 세대들이 길을 오간다. 도로 양쪽에는 상가들이 나란히 줄지어 있고 일부 유명 맛집에는 젊은이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명동, 성수동 상권 못지 않은 북적임이 있지만 흥정을 하는 상인들의 목소리는 옛날 장터를 연상케한다.

이런 길들을 지나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녹색 바탕에 진하게 써져 있는 ‘망원1구역재개발 추진준비위원회’라는 글자를 발견하게 된다. 유동인구로 북적이는 이곳에선 ‘망원동 재개발’로 주민들의 갈등이 5년째 이어지고 있다. 망리단길 일부를 포함한 망원동 416-53일대, 7만 8695㎡ 구역은 2023년 11월, 서울시의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 민간재개발 후보지 선정위원회에서 재개발 후보지로 선정됐다. 신통기획이 처음 도입된 2021년부터 매년 도전해 3수 끝에 선정됐다.

그러나 앞선 두 번의 후보지 선정 불발의 가장 큰 원인이었던 ‘주민 반대’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2023년 후보지에 선정되면서도 두 가지 조건이 달렸다. 주민 반대비율이 13% 수준으로 높은 만큼 다시 주민 의견을 수렴하고 망리단길 등 지역 상권을 고려해 정비사업 구역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 “망원동에서 30~40년 열심히 살아 월세 받아 사는데”


85세 방 씨 할머니는 44년을 망원동 한 자리에서 살았다. 상가주택에서 나오는 월세로 생활비를 충당해서 살아가는데 다 밀고 아파트를 짓는다는 소식에 “괘씸하다”고 말했다. 망원동에서 30년을 살며 상가주택에서 월세를 받아 생활한다는 할아버지도 “아파트 두 채를 줘도 당장 생활비가 끊기는 데 무슨 소용이냐”고 한탄했다.

재개발 후보지가 포함된 망원1동은 70세 이상 인구 비율이 12.9%로 서울 평균(12.3%)보다 높은 편이다. A주민은 “젊은 시절 열심히 노력해서 노후에 임대주고 월세 받아서 생활하는데 하루 아침에 ‘아파트 줄게, 건물 허물고 나가 있으라’고 하면 누가 좋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망리단길이 좋아 2~3년 전에 망원동에 신축 건물을 지어 입주한 사장님들도 날벼락인 것은 마찬가지다. 디자인 제품을 만드는 한 사장님은 “해외 바이어들이 올 때마다 망원동으로 데리고 왔다. 골목골목 예쁜 소품샵들이 많다”며 “(이런 연유로) 모은 돈을 쏟아부어서 2년 전 망원동에 회사 사옥을 지었는데 갑자기 재개발이 된다고 하더라. 제가 해왔던 것들이 다 밀리게 생겼다”고 말했다.

월세로 생활비를 충당하는 노년층이나 이제 막 건물을 올린 건축주들은 재개발로 인해 거리에 나 앉거나 투자금을 잃을 처지다. 망원동 재개발로 인한 갈등이 격화하는 동안 공사비가 30% 넘게 오르면서 재개발 분담금도 커지고 있다. 분담금이 최소 8억원은 넘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작년 망원로 6길 19평 규모의 한 다세대 주택 공시지가는 2억 1900만원이고 해당 주택의 감정평가액이 공시지가의 1.5~1.6배로 책정된다고 할 때 감정평가액은 3억원 중반대로 계산된다. 올 2월 서울 아파트 평(3.3㎡)당 분양가가 4428만원이고, 조합원 분양가가 일반 분양가의 80~85% 수준으로 3500만~3700만원이라고 가정하면 34평 아파트 한 채의 조합원 분양가는 11억 9000만~12억 5800만원 수준이다. 3억원 중반대의 다세대 주택을 갖고 있어도 8억원 넘는 분양가를 분담해야 한다. B주민은 “8억 내고 5~7년 나가 있다가 다시 들어오라고 하면 누가 찬성하겠냐”며 “망원동에서 월세도 받고 개인사업도 하는데 재산권이 침해된다”고 밝혔다.
13일 오후 망원역 2번 출구를 나와 오른쪽으로 돌면 망원시장, 망리단길로 갈 수 있는 길다란 길이 나온다. 사람들이 그 길을 오고가고 있다.(사진=최정희 이데일리 기자)
◇ 주민 갈등 부추기는 ‘신통기획’…투기세력이 띄우는 집값

망원동 신통기획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신통기획 제도가 주민간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서울시는 주민 주도하에 신통기획이 이뤄지도록 2021년 사업 초기 주민 제안 단계에서 주민동의율을 30%로 과거 공공기획(10%)보다 높였지만 해당 구역 주민의 투표 참여율 기준은 없다. 그로 인해 2023년 11월 망원동이 신통기획 후보지로 선정될 때 주민 찬성율이 68%를 보였지만 해당 지역의 몇% 주민이 투표에 참여했는지는 알 수 없다. 주민이 100명이라고 하면 70명이 참석했을때 68% 찬성율과 50명이 참석했을때의 찬성율에 해당하는 주민수가 크게 다른데도 말이다.

두 차례나 주민 반대로 후보지에서 탈락했음에도 횟수 제한 없이 매년 신통기획 후보지로 신청할 수 있다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재개발을 추진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은 매년 한 차례씩 주민 표를 모으는 행정 낭비를 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신경전도 치열해졌다.

망원동에서 만난 주민들은 재개발에 찬성하는 쪽은 원주민이 아닌 외부인들이라고 했다. C주민은 “우편물을 보내기 위해 조사를 했는데 한 사람이 이 구역 내 빌라를 수십 채를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다세대 주택은 가구 수가 많기 때문에 한 채만 가지고 있어도 투표수가 많아진다.

토허제로 몇 년째 묶여 있음에도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실거주 의무가 해제돼 외부 투기세력이 다세대 빌라에 대거 투자해 시세차익을 거두고 있다는 원성도 자자하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시스템에 따르면 5층짜리 다세대 빌라 한 곳은 경기도 화성에 주소지를 둔 김 씨가 2020년 7월 3억 5000만원에 구입했는데 4년 만인 2024년 5억 2000만원에 매각해 2억원 넘는 차익을 남겼다. 또 다른 다세대 빌라는 2020년 1억 7500만원에 거래됐으나 작년 3억 5000만원까지 뛰었고, 인근 빌라도 2019년 2억원에서 작년 4억원까지 뛰었다.
망리단길로 가는 길 한 복판에는 ‘망원1구역 재개발 추진준비위원회’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사진=최정희 이데일리 기자)
◇ 한강 조망 아파트 vs 노후화 안 됐는데

재개발 추진의 가장 큰 목적은 노후화된 주택을 대단지 한강뷰 아파트로 변신하자는 것이다. 건축공간연구원이 발간한 2023년 보고서에 따르면 망원동의 재해 취약 지하층 주택 수는 807가구로 마포구 내에서 가장 많지만 3000~4000가구에 달하는 신림동, 미아동, 면목동 등에 비해선 적은 편이다. 재개발 반대측에선 침수 위험이 높은 반지하 주택도 별로 없는데다 소방시설이 진입하지 못할 만큼 도로가 좁지 않은데 굳이 재개발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작년 서울시가 선정한 자연재해 위험 개선지구에 마포구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6~7년 전에 망원동 상권을 보고 진입했다는 한 건물주는 “도로 넓이가 10미터나 되고 바둑판처럼 반듯하게 정비돼 있는데 굳이 재개발로 가야 하는 지 의문”이라며 “상권도 점차 커지는 상황에서 왜 재개발해야 하냐”고 반문했다.

재개발 추진위에서 주장하는 한강뷰 아파트도 망원한강공원 주변으로 모아타운 사업이 추진돼 고층 아파트가 올라가기 때문에 도심 안쪽에 있는 망원동 신통기획 구역에선 몇 층부터 한강뷰가 나올 지도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모아타운은 3, 7구역이 통합심의위원회에서 조건부 가결되는 등 2026년 착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와 관련 재개발 추진위측에 재개발 사업 반대 주민을 어떻게 설득할지 등을 물어봤지만 답변을 거부했다.

마포구청은 망원동 신통기획이 조건부로 승인된 만큼 3~4월 주민설명회를 열 예정이다. 이와 별도로 서울시 신통기획 선정위원회 주문대로 우편물을 통한 주민의견 조사를 실시할 방침이다. 2023년 9~10월에도 같은 내용으로 주민 의견조사를 실시해 서울시에 전달했지만 해당 결과가 주민들에게 공개되진 않은 채 11월 신통기획 후보지로 선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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