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길들을 지나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녹색 바탕에 진하게 써져 있는 ‘망원1구역재개발 추진준비위원회’라는 글자를 발견하게 된다. 유동인구로 북적이는 이곳에선 ‘망원동 재개발’로 주민들의 갈등이 5년째 이어지고 있다. 망리단길 일부를 포함한 망원동 416-53일대, 7만 8695㎡ 구역은 2023년 11월, 서울시의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 민간재개발 후보지 선정위원회에서 재개발 후보지로 선정됐다. 신통기획이 처음 도입된 2021년부터 매년 도전해 3수 끝에 선정됐다.
그러나 앞선 두 번의 후보지 선정 불발의 가장 큰 원인이었던 ‘주민 반대’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2023년 후보지에 선정되면서도 두 가지 조건이 달렸다. 주민 반대비율이 13% 수준으로 높은 만큼 다시 주민 의견을 수렴하고 망리단길 등 지역 상권을 고려해 정비사업 구역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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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세 방 씨 할머니는 44년을 망원동 한 자리에서 살았다. 상가주택에서 나오는 월세로 생활비를 충당해서 살아가는데 다 밀고 아파트를 짓는다는 소식에 “괘씸하다”고 말했다. 망원동에서 30년을 살며 상가주택에서 월세를 받아 생활한다는 할아버지도 “아파트 두 채를 줘도 당장 생활비가 끊기는 데 무슨 소용이냐”고 한탄했다.
재개발 후보지가 포함된 망원1동은 70세 이상 인구 비율이 12.9%로 서울 평균(12.3%)보다 높은 편이다. A주민은 “젊은 시절 열심히 노력해서 노후에 임대주고 월세 받아서 생활하는데 하루 아침에 ‘아파트 줄게, 건물 허물고 나가 있으라’고 하면 누가 좋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망리단길이 좋아 2~3년 전에 망원동에 신축 건물을 지어 입주한 사장님들도 날벼락인 것은 마찬가지다. 디자인 제품을 만드는 한 사장님은 “해외 바이어들이 올 때마다 망원동으로 데리고 왔다. 골목골목 예쁜 소품샵들이 많다”며 “(이런 연유로) 모은 돈을 쏟아부어서 2년 전 망원동에 회사 사옥을 지었는데 갑자기 재개발이 된다고 하더라. 제가 해왔던 것들이 다 밀리게 생겼다”고 말했다.
월세로 생활비를 충당하는 노년층이나 이제 막 건물을 올린 건축주들은 재개발로 인해 거리에 나 앉거나 투자금을 잃을 처지다. 망원동 재개발로 인한 갈등이 격화하는 동안 공사비가 30% 넘게 오르면서 재개발 분담금도 커지고 있다. 분담금이 최소 8억원은 넘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작년 망원로 6길 19평 규모의 한 다세대 주택 공시지가는 2억 1900만원이고 해당 주택의 감정평가액이 공시지가의 1.5~1.6배로 책정된다고 할 때 감정평가액은 3억원 중반대로 계산된다. 올 2월 서울 아파트 평(3.3㎡)당 분양가가 4428만원이고, 조합원 분양가가 일반 분양가의 80~85% 수준으로 3500만~3700만원이라고 가정하면 34평 아파트 한 채의 조합원 분양가는 11억 9000만~12억 5800만원 수준이다. 3억원 중반대의 다세대 주택을 갖고 있어도 8억원 넘는 분양가를 분담해야 한다. B주민은 “8억 내고 5~7년 나가 있다가 다시 들어오라고 하면 누가 찬성하겠냐”며 “망원동에서 월세도 받고 개인사업도 하는데 재산권이 침해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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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동 신통기획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신통기획 제도가 주민간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서울시는 주민 주도하에 신통기획이 이뤄지도록 2021년 사업 초기 주민 제안 단계에서 주민동의율을 30%로 과거 공공기획(10%)보다 높였지만 해당 구역 주민의 투표 참여율 기준은 없다. 그로 인해 2023년 11월 망원동이 신통기획 후보지로 선정될 때 주민 찬성율이 68%를 보였지만 해당 지역의 몇% 주민이 투표에 참여했는지는 알 수 없다. 주민이 100명이라고 하면 70명이 참석했을때 68% 찬성율과 50명이 참석했을때의 찬성율에 해당하는 주민수가 크게 다른데도 말이다.
두 차례나 주민 반대로 후보지에서 탈락했음에도 횟수 제한 없이 매년 신통기획 후보지로 신청할 수 있다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재개발을 추진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은 매년 한 차례씩 주민 표를 모으는 행정 낭비를 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신경전도 치열해졌다.
망원동에서 만난 주민들은 재개발에 찬성하는 쪽은 원주민이 아닌 외부인들이라고 했다. C주민은 “우편물을 보내기 위해 조사를 했는데 한 사람이 이 구역 내 빌라를 수십 채를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다세대 주택은 가구 수가 많기 때문에 한 채만 가지고 있어도 투표수가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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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추진의 가장 큰 목적은 노후화된 주택을 대단지 한강뷰 아파트로 변신하자는 것이다. 건축공간연구원이 발간한 2023년 보고서에 따르면 망원동의 재해 취약 지하층 주택 수는 807가구로 마포구 내에서 가장 많지만 3000~4000가구에 달하는 신림동, 미아동, 면목동 등에 비해선 적은 편이다. 재개발 반대측에선 침수 위험이 높은 반지하 주택도 별로 없는데다 소방시설이 진입하지 못할 만큼 도로가 좁지 않은데 굳이 재개발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작년 서울시가 선정한 자연재해 위험 개선지구에 마포구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6~7년 전에 망원동 상권을 보고 진입했다는 한 건물주는 “도로 넓이가 10미터나 되고 바둑판처럼 반듯하게 정비돼 있는데 굳이 재개발로 가야 하는 지 의문”이라며 “상권도 점차 커지는 상황에서 왜 재개발해야 하냐”고 반문했다.
재개발 추진위에서 주장하는 한강뷰 아파트도 망원한강공원 주변으로 모아타운 사업이 추진돼 고층 아파트가 올라가기 때문에 도심 안쪽에 있는 망원동 신통기획 구역에선 몇 층부터 한강뷰가 나올 지도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모아타운은 3, 7구역이 통합심의위원회에서 조건부 가결되는 등 2026년 착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와 관련 재개발 추진위측에 재개발 사업 반대 주민을 어떻게 설득할지 등을 물어봤지만 답변을 거부했다.
마포구청은 망원동 신통기획이 조건부로 승인된 만큼 3~4월 주민설명회를 열 예정이다. 이와 별도로 서울시 신통기획 선정위원회 주문대로 우편물을 통한 주민의견 조사를 실시할 방침이다. 2023년 9~10월에도 같은 내용으로 주민 의견조사를 실시해 서울시에 전달했지만 해당 결과가 주민들에게 공개되진 않은 채 11월 신통기획 후보지로 선정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