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째 반복된 의·정 갈등..공론화 통해 실마리 풀어야"[전문가 긴급 제언]

이지현 기자I 2024.03.13 05:55:00

고영선 부원장 "의·정 갈등 포함 의료문제 공론화 과정 필요"
오주환 교수 "국민이 의·정 대화 테이블로 불러들여야"
정현선 교수 "정부는 잠시 채찍 내려놓고 대화물꼬 터야"
조승연 회장 "이번 기회 통해 의·정 갈등 마침표 찍어야"

[이데일리 이지현 기자] 의료개혁의 역사는 30년이 넘었다. 의사 수 부족으로 인한 의료 서비스질 저하에 대한 우려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는 1995년에 ‘의사인력 공급정책의 방향’이라는 연구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당시 이 보고서를 작성한 고영선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부원장은 “의사 1인당 환자수가 너무 많고 진료시간이 짧아 서비스 개선을 위해선 인력을 늘려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그 당시 연구를 하게 됐다”며 “그때나 지금이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이런 지적에도 의사 수는 늘지 않고 오히려 줄었다. 2000년 의약분업 반대 파업 이후 의사단체의 요구로 의대정원은 4년에 걸쳐 3507명에서 3058명으로 감소했다. 그리고 23년째 이 정원이 그대로 유지 중이다. 이후 원격의료 도입(2014년), 의대정원 400명 확대(2020년) 등을 가지고 정부와 의사단체는 맞붙었지만 결국 정부의 의료개혁은 번번이 좌절되고 말았다.

전문가들의 의·정 갈등 해법 (그래픽= 김일환 기자)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의정 갈등은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고영선 부원장은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선 의사 수가 적다는 데 있다”고 짚었다. 내년엔 국민 5명 중 1명이 65세가 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의료서비스 요구는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하지만 의료개혁은 체계적으로 이행된 적이 거의 없다. 대형 재해가 발생하면 그때마다 땜질식 처방만 이뤄졌다. 정부는 이번에야말로 구조적인 왜곡을 바로잡아 고사위기인 지방의료와 필수의료를 살리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40명 안팎인 ‘미니’ 의대의 정원을 늘려 매년 2000명씩 5년간 의대생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30년 전 솔루션도 비슷했다. 고영선 부원장은 “의대에 학생 수가 100명 정도는 되어야 필요한 전공분야 교수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고 봤다”며 “이건 지금도 적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최근 의대를 보유한 40개 대학은 총 3401명의 의대정원 증원을 신청했다. 교육부는 이르면 이달 말 대학별 배정 규모를 확정한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어느 대학에 몇 명씩 배분하고 나면 의-정 갈등상황은 조금 달라질 것”이라며 “한번 발표하고 나면 타협이 불가능해지므로 이번 계기가 큰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교수들의 집단 ‘사직’ 움직임이 변수가 되고 있다. 서울대 의대 교수들은 전공의 단체행동이 1개월을 맞는 오는 18일을 사직서 제출일로 잡고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정부가 적극적인 사태해결에 나서라는 것이다. 오주환 서울의대 의학과 교수는 “의료공백 사태가 장기화하지 않게 하려고 교수들도 욕을 먹는 카드라는 것을 알면서도 쓴 것”이라며 설명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으면 안 된다고 봤다. 고 부원장은 “의사들이 자기 이익만 챙기는 집단으로 묘사되는 것에 상당히 거북스러워한다”며 “의사들의 자존심을 세워주면서 잘 설득하는 게 필요하다”고 봤다.

(그래픽=문승용 기자)
전문가들은 현재로선 사태해결의 돌파구가 보이지 않지만 출구전략을 모색할 때라는 점은 동의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의협 간의 대화가 아닌 폭넓은 대상과의 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오주환 교수는 시민사회단체가 빠르게 머리를 맞댈 수 있는 논의 테이블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봤다. 오 교수는 “협상에서 진전을 이루고 싶다면 진정성이 있는 이들이 제안하는 형태라면 돌파구가 되지 않을까 싶다”며 그 대상이 국회가 될 수 있겠지만 사실 의료서비스 당사자인 국민이라고 봤다. 정치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보수의 시니어 인사와 소비자단체가 나서서 정부와 의사단체를 논의테이블로 불러들인다면 논의 실마리를 풀 수 있지 않겠냐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의정갈등이 반복되지 않도록 이번에 제대로 된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봤다. 정형선 교수는 “그동안 하려고 했지만 못했던 의사와 간호사 간의 업무조정이나 의료전달체계 개편, 전문의 중심 병원 전환 등 다양한 개혁들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교수는 “시스템 체인지가 필요하다”며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담당하는 사람들의 직업 만족도를 높이고 재정적인 안정성도 더 좋게 하고 사람들로부터 평도 더 많이 받게 하고 법적인 위험도 훨씬 덜하게 한다면 이런 일이 반복될 일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승연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 회장(인천의료원장)은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외래환자를 줄이고 중증환자만 봐도 충분히 병원이 운영될 수 있게끔 해주면서 정부 개혁에 따라갈 것”이라며 “젊은 의사들에겐 장시근 근로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노동자로서 일하지 않게끔 환경을 만들어주겠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 좋은 방향으로 간다는 믿음을 주면서 충분한 수가책정을 통해 정부의 필수의료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돈을 아끼지 말고 이럴 때 건보재정을 투입해야 한다”며 “1차 병원의 엉터리 진료도 바로잡고 상급병원의 바가지 과잉진료도 바로잡는다면 술술 새는 재정도 건전화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개혁)기회를 놓친다면 한동안 개혁은 시도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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