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서울의 봄’이 개봉하기 전까지만 해도 극장가는 침통한 분위기였다. 엔데믹에 비대면이 풀렸지만 올 여름 블록버스터 시장의 성적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다. 류승완 감독의 ‘밀수’가 500만 관객을 넘기며 그나마 체면을 차렸을 뿐, 하정우, 주지훈 주연의 ‘비공식작전’도 또 설경구 도경수 주연에 김용화 감독이 연출한 ‘더 문’은 재앙에 가까운 참패를 경험했다. 특히 대한민국 최초로 달을 배경으로 한 우주 소재의 SF를 시도했던 ‘더 문’은 그 창대한 시도와는 너무나 초라한 50만 관객이라는 성적표를 받으며 무너져 내렸다.
추석 시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강동원 주연의 ‘천박사 퇴마 연구소’가 190만 관객으로 그나마 선전했고, 강제규 감독의 ‘1947 보스톤’이 1백만을 그리고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은 겨우 31만 관객을 동원했다. ‘1947 보스톤’이야 2020년 제작됐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묵혀졌다 나온 이른바 ‘창고영화’라 그 시의성 차이 때문에 그랬을 수 있다고 여겨지지만, 송강호, 임수정, 오정세, 전여빈 등 호화캐스팅을 했고 평단의 반응도 좋았던 ‘거미집’의 흥행 참패는 아쉬운 지점이 아닐 수 없었다.
극장가는 ‘겨울이 왔다’고 말할 정도로 얼어붙었다. 그건 코로나19를 겪으며 비대면 상황이 지속되면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가 대안적인 영화 소비 플랫폼으로 떠오르는 환경 변화가 만들어낸 위기였다. 그러다 갑자기 엔데믹으로 극장가가 열리게 되면서 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영화들이 픽픽 쓰러져 나간 것이었다. 그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가야할 이유는 무엇인가. 이제 관객들은 영화에 묻기 시작했다. 그 질문에 정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는 영화는 초라해질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 이전 호황기 시절의 영화는 멀티플렉스와 공조하며 천만영화를 심지어 만들어냈다. 적당한 블록버스터의 재미를 적당한 타이밍(여름방학 시즌이나 추석 대목 같은)에 멀티플렉스를 통한 스크린수 융단폭격을 하면 충분히 천만영화가 가능해진 것이다. 관객들이 극장에 가는 것이 중요한 여가로 자리잡혔을 시절의 이야기다. 하지만 비대면 시절을 겪으며 관객들은 알게 되었다. 집에서 OTT에 가입해 영화 한 편 정도의 비용으로 한달 구독료를 내면 한달 내내 다양한 영화들과 드라마들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이런 분위기니 개봉 전부터 ‘잘 빠졌다’는 이야기가 나오던 ‘서울의 봄’ 역시 흥행을 자신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애초 목표는 천만이 아닌(누가 감히 천만을 운운할 수 있는 시절인가!) 4백만을 목표로 했다.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걸 성공으로 세워뒀다는 것이다. 4백만도 어렵다는 업계 이야기들은 영화의 홍보 마케팅에 전력투구를 하게 만들었다. 영화 시작 몇 달 전부터 ‘서울의 봄’ 관련 기사들이 쏟아졌고, 그래서 심지어 이미 개봉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렇게 이미 영화의 홍보가 충분히 이뤄진 상태에서 기자시사회가 열렸다. 호평이 쏟아졌다.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드디어 영화가 개봉됐고, 기다렸다는 듯이 극장에 몰려간 관객들은 입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영화는 400만을 넘기더니 신드롬처럼 성적에 속도가 붙었다.
‘서울의 봄’이 성공한 건 먼저 당연하게도 영화가 좋았기 때문이다. 12.12 군사쿠데타라는 이미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가져왔지만, 그 날 벌어진 사건들을 여러 인물들의 끝없는 선택과 갈등의 상황으로 그려냈다. 그래서 굉장한 액션 신은 많지 않았지만, 두 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을 순삭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그 선택이 훗날 신군부를 등장시키고 그래서 80년 광주의 비극과 그 후로 꽤 오래 지속되는 암울한 시대를 야기했다는 메시지에 당대를 살았던 기성세대들은 물론이고 현재의 젊은 세대들까지 공감했다. 역사가 결국 여러 사람의 선택들의 총합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걸 그 하루를 담은 사건을 통해 실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탄탄한 완성도를 가진 데다, 코로나 이후 달라진 영화 소비 방식 속에서도 굳이 극장에 가야할 이유를 주는 몰입감과 긴박감, 여기에 공격적인 홍보마케팅이 힘을 실어 준 ‘누구나 꼭 봐야할 것 같은’ 분위기가 더해지면서 <서울의 봄>은 ‘영화의 봄’을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으로 등극했다.
물론 ‘서울의 봄’이 영화계에 만들어낸 기대감은 좋은 일이고 또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지금의 달라진 영화 소비 방식에 걸맞는 작품이었고, 그걸 효과적으로 알리는 노력들을 했다는 걸 잊어서는 안된다. 여전히 이 영화가 천만관객을 돌파할 것인가를 두고 섣부른 기대들을 여기저기 내놓고 있지만, 그렇다고 다시 천만관객의 시대로 회귀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닐게다. 이제 새로운 시대에는 천만이 아닌 중소규모지만 완성도 높은 작품을 지향하는 가성비 있는 기획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처럼, 콘텐츠의 새로운 시대는 거기에 맞는 새로운 소재와 형식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이 변화된 환경을 깊이있게 들여다보고 과거의 관성들을 버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게 아니라면 무언가 봄이 올 것만 같았던 기대가 냉혹한 겨울로 돌아설 수 있으니 말이다. 장기 군부독재가 사라지고 봄이 도래할 것 같은 기대를 가졌지만 신군부라는 더 혹독한 겨울을 맞이하게 됐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