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서 상사 대화 내용 몰래 녹음한 공무원…대법 “유죄”

박정수 기자I 2023.10.27 06:05:13

‘청탁금지법’ 위반 행위 적발 목적이라 주장
방문객이 차와 보온병 선물…“수수 금지 물건 아냐”
징역 6개월에 집유 1년·자격정지 1년 선고
法 “사생활 이야기로 통신비밀보호법의 보호대상”

[이데일리 박정수 기자] 사무실에서 상사의 대화 내용을 몰래 녹음한 공무원에 대한 유죄 판결이 대법원에 최종 확정됐다. 특히 해당 공무원은 ‘청탁금지법’ 위반 행위를 적발·신고하기 위해 상사의 대화 내용을 녹음했다며 정당행위를 주장했으나 대법원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대법원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민유숙)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고 27일 밝혔다.

A씨는 2020년 1~7월 B시 도시환경사업소 하수과 오수관리팀에서 재직한 공무원이며, C씨는 오수관리팀장으로 재직한 사람이다. A씨는 2020년 6월 시청 오수관리팀 사무실에서 C씨의 직무상 비위 사실을 적발할 목적으로 C씨 방문자인 E씨와 나누는 대화 내용을 피고인의 휴대전화에 있던 녹음 기능을 이용해 녹음함으로써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했다.

A씨 측은 피고인이 녹음한 C와 E 사이의 대화는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지 않은 공개된 사무실에서 일과시간 중에 이뤄졌고, 피고인은 가청거리 내에 있는 자신의 자리에서 대화를 자연스럽게 듣다가 이를 녹음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피고인이 녹음한 C씨와 E씨 사이의 대화가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 제1항에서 말하는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또 설령 C씨와 E씨 사이의 대화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은 C씨의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위반행위를 적발·신고하기 위해 이 사건 공소사실과 같은 녹음행위를 한 것이므로, 피고인의 행위는 형법 제20조에 따른 정당행위로서 그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1심은 A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녹음한 C씨와 E씨 사이의 대화는 E씨가 C씨에게 준 선물의 사용 방법을 설명하는 내용과 C씨가 선물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며 “하지만 대화 중 C씨는 딸의 생활 습관이나 결혼 의사 등 자신 또는 가족의 사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이러한 대화 내용에 비춰 비밀스러운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C씨와 E씨의 사생활에 관한 내용으로서 통신비밀보호법의 보호대상이 된다”고 판단했다.

또 “대화가 이루어진 장소가 민원인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민원실 내에 있기는 하다”며 “그러나 민원실에서 민원인들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은 민원창구가 있는 부분에 한정됐던 것으로 보이고, 이를 넘어 민원인들이 공무원들이 실제 업무를 보는 사무공간에까지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따라서 대화가 이뤄진 장소가 ‘일반 공중’에 공개된 장소였다고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피고인은 오로지 사적 감정이나 불순한 의도 없이 비위사실을 적발하기 위한 동기, 목적에서 대화를 녹음하게 됐다는 취지로 주장 하지만 C씨로부터 여러 차례 업무미숙이나 근무태도 지적받는 등 반감 누적되고 있었던 정황이 있는 점 등 비춰 보면 오로지 공익적 목적에서 해당 녹음에 착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이어 “C씨에게 준 선물은 ‘차(茶)와 보온병’으로서 그 품목 자체가 공무원이 통상적으로 불법성을 띠고 수수하는 금품이나 향응이라고 보기에는 사뭇 일반적이지 않다”며 “언급된 보온병의 가격도 2만4000원 전후로서 청탁금지법에 의하여 수수가 금지되는 수준의 물건이라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에 1심 재판부는 “이 사건 범행은 피고인이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함부로 녹음해 그 대화참여자들의 사생활 및 대화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며 “그 죄책이 가볍지 않다”고 판시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1심 판결에 불복해 A씨는 항소했으나 2심은 이를 기각했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C씨에게 선물한 차가 청탁금지법에서 금지하는 100만원을 초과하는 고가의 금품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나, 제출한 증거 등을 살펴보아도 차가 1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어렵다”면서 “피고인의 녹음 행위가 헌법과 통신비밀보호법이 부여한 개인의 사생활과 대화의 비밀이라는 사익 및 통신비밀의 일반적 보호라는 가치보다 더 우월하거나 이와 대등한 보호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볼만한 사정도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원심 판결에 수긍해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통신비밀보호법위반죄의 성립, 정당행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설명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