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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음식이나 혹은 약제들과도 상호 작용을 하기 때문에 와파린을 복용하는 환자는 약물 사용 시 의사와 상의를 하고, 한 음식만 편식하는 것은 좋지 않다. 와파린은 비타민 K 의존성 응고인자와 내인성 항응고 단백의 생성을 방해하여 비타민K 가 많은 음식인 상추, 시금치 등 녹색 음식과 콩류를 아예 먹지 않으려는 분들도 있는데, 음식은 몸 안에서 여러 가지로 대사를 하므로 심한 편식만 하지 않는다면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보고 되고 있다.
그러나 피가 나는 시술을 받거나 잘 지혈이 되지 않는 수술 등을 할 때는 반드시 담당 의사와 상의를 해서 와파린을 언제 어떻게 끊을지, 다른 주사제는 맞을 필요는 없는지 그리고 판막 수술을 한 분들은 예방적 항생제는 필요하지 않은지 등을 상의해야 한다. 최근에는 와파린을 대신하는 약물들이 나와 용량 조절을 위한 피검사나 다른 약물과의 상호 작용이 없도록 하고 있지만 최 모 씨와 같이 기계 판막을 하고 있는 환자라면 와파린 이외에 다른 대체 약물은 없기 때문에 정기적인 외래 경과 관찰과 약물 용량 조절이 반드시 필요하다.
20년간 별 이상 없이 잘 지내던 환자는 어느 무더운 여름날 고추 농사를 하면서 허리 통증이 생겼다고 주변의 한의원에 가서 여러 차례 침을 맞았으나 큰 호전 없었고, 그럼에도 침 치료를 지속하였다. 허리 주변에 약간의 멍이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어느 날 지인들과 함께 지방에 여행을 떠난 환자는 다음날 아침 일어났을 때, 다리를 움직일 수 없었다. 감각과 운동이 모두 마비가 되어 대소변도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청천벽력 같은 일이 환자에게 벌어졌고, 주변 병원으로 먼저 이송되었으나 치료가 불가능하였고, 주말까지 겹쳐 환자가 본원을 방문한 시점에는 이미 하지 마비가 온 지 48시간이 지나서였다.
환자는 허리를 지나는 신경이 아주 큰 혈종(혈액 덩어리)으로 눌려 있어서 사지 마비가 온 것이었다. 이와 함께 와파린 수치는 매우 증가되어 있었다. 응급 수술에 들어가서 혈종을 제거하였지만 이미 신경이 눌려 환자가 스스로 대, 소변을 보거나 혹은 다리를 움직이는 것이 당장에는 어려웠다. 3개월 이상 병원에 입원을 하며 재활을 하던 환자는 감각이 살아나기 시작했으나 여전히 소변줄을 끼고 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미열이 나기 시작했다. 항생제를 쓰면서 소변검사와 다른 검사들을 진행했는데, 소변줄을 통해 소변에 균이 들어가면서 피까지 함께 감염이 되고 이로 인해 기계 판막에도 균이 붙어 버린 감염성 심내막염 환자가 되었다.
문제는 감염성 심내막염이 진행하여 판막이 거의 뜯어지기 직전이라는 점이었다. 당장 수술이 필요했다. 이제 막 다리의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는데, 감염성 심내막염으로 또 심장을 열어야 한다니.. 환자는 너무나 우울해하였고, 워낙 고위험 수술이라 나와 흉부외과 진료과장 모두 환자가 수술 이후 깰 수 있을지 걱정을 많이 했다. 응급으로 주말에 모든 팀이 나와서 환자의 감염된 대동맥 판막과 승모판막 치환을 하고 중환자실로 환자를 이송하였다. 감염성 심내막염 환자의 경우 수술 중 감염된 심장 판막들이 머리로 떨어져 나가게 되면 의식이 회복되는 데 오래 걸리거나 혹은 중풍이 올 수도 있기 때문에 늘 긴장되는 과정이다. 게다가 환자는 아직 하지를 못 움직이는 환자이니 수술 후 재활도 걱정이다.
다행히 수술을 성공리에 마쳐 두 판막을 조직 판막으로 바꾸었고, 이후 지속적인 재활을 해서 5년이 지난 지금 지팡이를 짚고 밝게 웃으면서 내원을 하고 있다. 식사도 잘하시고 어려운 과정이었는데도 긍정적으로 잘 이겨 내시고 외래 때마다 걱정 말라 이야기하시는 환자분이 참 감사하다. 의료기술이 발전하고, 치료가 가능한 질환들도 많지만 심장질환은 완치의 개념이라기보다는 오랫동안 의료진과 함께 관리하는 질환인 경우가 많다. 환자가 시술을 받거나 허리 통증이 있었을 때, 나와 함께 상의하고 이후를 준비했다면 조금 덜 힘드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어 지금은 심부전 환자들을 위한 SNS를 운영하면서 최대한 환자들이 주치의와 필요한 정보들을 공유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모든 사항을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의 노력과 정성을 통해 환자 한 분이라도 힘을 얻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