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낙회(사진·62) 법무법인 율촌 고문은 서울 삼성동 사무실에서 진행한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 정책에 대해 이렇게 조언했다. 김 고문은 행정고시 27회로 공직에 임용돼 조세심판원장,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관세청장 등을 역임한 조세정책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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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負)의 소득세(NIT·Nagative Income Tax)는 조세·재정·복지정책 개편을 통해 일자리나 소득이 거의 없는 취약계층에게 최소 생계비(1인당 월 50만원)를 선별 지원하는 정책이다.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이 부자를 비롯한 모든 사람에게 생계비를 보편 지원하는 것과 대조된다.
김 고문은 “기본소득과 부의 소득세는 일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들, 자본주의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어떻게 보호할지 고민하는 측면에서 같은 방향의 정책”이라며 “두 정책의 지급 대상·방식이 다르지만, 재원을 마련하는 방식에서는 같은 고민 지점이 있다”고 했다.
기본소득이든 부의 소득세든 대규모 재원이 필요한 정책을 추진하려면 △각종 수당, 보조금으로 얽히고설킨 현행 복지제도의 통폐합 △각종 예산의 지출 구조조정 △고소득층 핀셋 증세를 넘어선 보편적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게 김 고문의 지적이다.
김 고문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좋은 취지의 정책이라도 재원을 마련하지 못하면 지속가능하지 않다”며 “조세·재정·복지정책 개편은 굉장히 커다란 개혁으로 각종 반발이 예상된다. 결국 대통령이 리더십을 발휘해 새로운 경제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기정부 경제정책 어젠다를 제언하는 책을 출간한 이유는?
△우리 경제의 파이를 키우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고민에서다. 경제 파이를 어떻게 키울지, 시장경제를 어떻게 제대로 작동하게 할지 고민했다. 그리고 경쟁에서 밀려난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보호할지를 고민하면서 효과적인 사회보장제도를 살펴봤다. 특정 캠프를 겨냥해 책을 출간한 게 아니다. 보수든 진보든 우리 아이디어를 활용해 진전된 정책을 만든다면 적극 환영한다.
-관련 사회보장제도로 ‘부의 소득세’를 제안했다.
△기존의 사회보장제도를 좀 더 효과적·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는 대안으로서 제안한 것이다. 부의 소득세 도입은 굉장히 큰 작업이다. 현행 복지·조세제도의 틀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전직 경제관료로서 한국사회에 화두를 던진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작년 12월부터 공저자들이 만나 10차례 정도 토론을 거쳐 올해 책을 출간했다.
-부의 소득세 용어는 약간 생소하다.
△부의 소득세의 ‘부’는 부유하다는 뜻의 부(富)가 아니라 마이너스를 뜻하는 부(負)를 뜻한다. 저소득층에게 소득세를 얹여(플러스) 걷는 게 아니라 소득세를 빼주고(마이너스) 지원하는 것이다. 출간 준비 과정에서 용어를 놓고도 많이 토론했다. 기본소득, 안심소득 등 관련 용어도 많이 나오고 있어 ‘○○소득’으로 명명할까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다 정공법으로 가기로 했다. 미국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제안한 ‘Nagative Income Tax’를 그대로 번역했다.
-부의 소득세가 기본소득, 안심소득과 뭐가 다른가?
△부의 소득세, 기본소득 모두 방향은 같다. 소득이 없는 사람들에게 정부가 지원하자는 것이다. 양측의 차이는 두 가지다. 첫째 지급 대상·방식이다. 기본소득이 모든 사람에게 주는 보편적 복지라면 부의 소득세는 취약계층에만 주는 선택적 복지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재원 마련 방식이다. 이재명 제시한 기본소득 정책은 약 300조원의 예상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 기존 복지제도를 어떻게 할지 불분명하다. 반면 부의 소득세는 현행 복지제도를 통폐합 해서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이다.
박기성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가 제안한 안심소득과 부의 소득세는 쌍둥이처럼 비슷하다. 저소득층에게만 선별적으로 지원하기 때문이다. 다만 안심소득은 가구 단위로, 부의 소득세는 개인 단위로 지급한다. 가구 단위로 지원할 경우 실제로는 같은 가구인데 형식적으로 위장 분리해 지원을 받으려는 사례가 굉장히 많아질 수 있다. 현행 소득세가 개인 단위로 부과되기 때문에 부의 소득세 지원 제도를 개인 단위로 설계한 측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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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에게 월 50만원, 18세 이하 미성년자에게 월 30만원을 지급할 경우 부의 소득세 도입을 위해 필요한 재원은 총 172조 7000억원이다. 부의 소득세와 성격이 비슷한 인적공제·근로소득공제를 폐지하면 75조 6000억원(A)이 마련된다. 보건복지노동 예산 지출구조조정으로 50조 5000억원(B), 나머지 분야 지출구조조정으로 30조 9000억원(C), 부가세율 인상으로 40조원(D), 사회복지 지방비 회수로 10조원(E), 부의 소득세와 유사한 근로장려금(EITC)·자녀장려금(CTC) 폐지로 5조 2000억원(F) 재원 마련이 가능하다. 이렇게 모인 재원(A+B+C+D+E+F)은 212조 2000억원으로, 필요한 재원(172조 7000억)보다 39조 5000억원 많다. 초과 재원은 국가채무를 줄이는데 쓸 수 있다.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그렇다. 저항의 전선이 3개나 생길 수 있다. 첫째로 기존 복지제도의 수혜를 입는 계층들, 복지 예산 이해관계자들이 반발할 것이다. 둘째로는 예산 지출구조조정에 대해 정부 내부에서 난색을 표할 것이다. 셋째로는 증세 대상자들을 설득해야 한다.
그럼에도 현금성 수당 등 다양하게 중첩된 기존 복지제도를 교통정리해야 한다. 도덕적 해이, 재정누수를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출구조조정을 해서 정부의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문재인정부처럼 재정을 쓰는 것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증세는 자산 과세에 이어 부가세 등 소비과세로 진행돼야 한다. 문재인정부에서 자산 과세를 많이 올려 더 이상 이쪽에서 재원을 마련하기 힘들다.
-부의 소득세는 정공법으로 문제를 풀자는 것인가?
△그렇다.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이 성공하려면 정공법으로 가야 한다. 기존 복지제도를 통폐합하고 지출구조조정을 하는 재정개혁과 증세는 불가피하다. 기본소득이든 부의 소득세든 제도를 도입할 때 재원 마련 방식도 미리 마련해야 한다. 일단 기본소득을 지원해 수혜를 받게 한 뒤 나중에 복지제도 통폐합 등 하자고 하면 그게 더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무조건 현금을 주면 도덕적 해이가 우려된다.
△게을러서 일 안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일할 기회가 없어서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자본주의 사회의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이 사람들에 대한 보호장치가 없으면 자본주의 경쟁 시스템은 지속가능하기 어렵다. 사회적 보호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부의 소득세는 일정 소득(중위소득 30%) 이하의 저소득층 모두에게 1인당 50만원씩 주자는 것이다. 최근에 국세청이 소득자료관리준비단을 출범시키고 소득 파악에 나선 것은 향후에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하고 지원 체계를 만드는데 큰 기여를 할 것이다.
-현금을 주면 근로의욕이 떨어지지 않을까.
△미국에서 부의 소득세를 몇천 가구를 대상으로 실험해 보니, 근로의욕이 조금 감소했다. 그러나 나머지 지표는 양호해졌다. 일례로 실험집단 아이들의 초등학교 출석 증가, 시험성적 증가, 저체중아 출산의 감소, 주택 소유 증가, 가계부채 감소, 식량소비 증가, 영양 개선, 병원 입원 감소 등의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 부의 소득세를 통해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다 보니 긍정적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영국에서는 2013년부터 부의 소득세처럼 사회보장제도를 통폐합하기 시작했다. 2023년까지 10년에 걸쳐서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도 영국처럼 단계적으로 부의 소득세를 도입하면 반발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개혁을 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리더십이 중요할 것 같다.
△대통령의 리더십이 중요하다. 부의 소득세 도입은 굉장히 커다란 개혁이기 때문이다. 물론 대통령 혼자서 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다. 정치세력들과 힘을 모아서 범국민적 합의를 전제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김낙회 법무법인 율촌 고문은…
△1959년 충북 증평군 출생 △청주고 △한양대 행정학과·행정대학원 △영국 버밍엄대 △행정고시 27회 △서울지방국세청 재산세제국 △재무부 세제실 부가가치세과·소비세제과·소득세제과 △국민경제자문회의 사무처 기획조정실 정책조사관 △재정경제부 국고국 재정정보과장·세제실 소비세제과장·소득세제과장·조세정책과장 △기획재정부 조세기획관·조세정책관 △국무총리실 조세심판원장 △기재부 세제실장 △관세청장 △가천대 석좌교수(현) △법무법인 율촌 고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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