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신문의 사설을 쓰는 것은 보람 가득한 일이다. 다가올 365일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차분히 실로 꿰듯 엮어낼 수 있어서다. 하지만 신축년(辛丑年) 아침을 맞는 감정은 밝고 가볍지 않다. 나라 안팎의 정세가 어지럽고 우리의 지혜와 용기를 시험할 예측불허의 변수가 어둠 속의 산처럼 곳곳에 버티고 있어서다.
신축년 한국 경제의 퀀텀 점프를 위한 첫째 조건은 ‘정치의 정상화’다. 무엇보다 일방 독주를 일삼으며 완력 입법으로 국민과 기업에 한숨을 안긴 거대 여당의 반성과 새 출발이 필요하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12월 밀어붙인 기업규제 3법(상법 ·공정거래법·금융그룹통합감독법)의 처리 과정은 정치가 기업의 발목을 잡는 수준을 넘어 ‘테러’에 가까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헌 소지 등 논란이 상당한 중대재해처벌법 처리에까지 급피치를 올리는 여당의 인식과 자세가 바뀌지 않는 한 우리 경제는 반(反)기업정서와 규제 올가미 속에서 고통의 한 해를 맞을 수밖에 없다. 21대 국회 개원 후 7개월여 동안 발의된 규제 법안만 1400여 건에 달하는 현실에서 정치권의 인식 전환 없이 경제활력 회복은 요원할 것이라는 얘기다.
또 하나는 ‘정책의 정상화’다. 최저임금의 급속한 인상과 주52시간 근로제가 기업과 중소상공인, 자영업자 등에 안긴 폐해는 다시 언급할 필요도 없다. 코로나19의 충격으로 자영업이 생사기로에 몰린 것은 사실이지만 이 정부 들어 30% 넘게 오른 최저임금이 이들의 위기에 큰 몫을 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친서민정책에 드라이브를 건 문재인 정부에서 빈곤층이 3년6개월간 55만명 넘게 늘어난 데 대해 청와대와 정책 당국은 깊은 책임을 느껴야 한다. 임차인을 보호한다면서 도입한 임대차3법이 미증유의 전세대란을 초래하고 집 없는 서민의 고통을 가중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성과 함께 과감한 정책 선회가 따라야 할 대목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리더십의 정상화’ 역시 짚고 넘어가야 할 과제다.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 대립에는 문 대통령의 리더십 부재도 원인을 제공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어서다. 권력형 비리와 의혹 사건이 빈발하고 여론이 들끓을 때는 물론 세대, 지역, 계층간 갈등으로 민심이 제각각 갈라질 때도 대통령의 입과 얼굴은 보이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오히려 관련 당사자들을 갈라치는 듯한 발언으로 대립과 균열을 부추길 때가 많다는 비판을 부르기도 했다. 대통령 지지율이 최근 36.7%까지 추락한 것은 국정 쇄신과 함께 국론 통합의 ‘포용’리더십을 원하는 민심을 대변한다고 봐야 한다.
올해는 코로나19의 후유증이 계속되면서 경제적 시련도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이끌 새 미국 행정부의 정책은 우리의 외교· 안보· 경제는 물론 대북 관계에도 큰 변화를 요구할 전망이다. 4월 재, 보궐 선거를 시발로 죽기살기식 정치 싸움이 시작되면 무책임한 포퓰리즘 공약과 장밋빛 청사진이 쏟아지며 경제 운용 기조도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올해 경제성장률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할 것이라고 낙관했지만 결과는 아닐 수 있다.
교수신문이 지난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는 아시타비(我是他非)였다.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뜻이지만 우리 사회에 만연한 그릇된 사고와 행태를 ‘콕’ 찝어 드러낸 표현이다. 그러나 올해만큼은 상대방의 처지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이 각 분야에 고루 퍼지길 기대한다. 분노와 적개심, 갈등과 무관심은 걷어내고 배려와 양보를 앞세운다면 올해 끝자락에 우리가 스스로에게 내릴 평가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나라의 운명은 국민이 개척하고 열어가는 것이지만 결국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