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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베트남)=이데일리 박종오 권오석 기자] 베트남에서 세무 컨설팅 업체를 운영하는 자산가인 쩐 티 마이 흐엉(58·여)씨는 요즘 이체나 대출 같은 금융 거래를 할 때 신한베트남은행의 레타이또 지점을 이용한다. 신한 레타이또 지점은 고액 자산가를 겨냥해 베트남 수도 하노이의 관광 명소인 호안끼엠 호수 인근에서 지난 2017년 말 문 열었다.
레타이또 지점은 1인당 5만 달러(약 5600만원) 이상을 예금해야만 이용할 수 있는 VIP 고객 전용 점포다. 신한은행은 호주뉴질랜드은행(ANZ)이 사용하던 1500㎡(454평) 면적의 프랑스 식민지 시절 지은 건물에 5억원 이상을 들여 실내를 최고급 라운지로 꾸몄다. 한국의 PB(고객 자산 관리 전문가) 센터를 본떠 매니저 8명이 고객을 1대 1로 관리한다.
지난 7일 현지 지점에서 만난 흐엉씨는 “신한은행은 송금이나 고객 혜택 등 서비스가 베트남 현지 은행은 물론 HSBC 등 다른 외국계 은행보다도 훨씬 빠르고 훌륭하다”며 “액설런트(excellent)”라고 칭찬했다. 김근호 레타이또 지점장은 “한국 만의 PB 모델을 도입해 건강 검진 할인, 공항 라운지 이용 서비스부터 고객을 위한 피부 미용 강연 등 정기적인 행사까지 하고 있다”며 “네덜란드, 벨기에, 이탈리아 등 각국 대사와 베트남 국민 가수 등 고위층 명사가 우리 지점의 주요 고객”이라고 했다.
우리 기업이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신(新)남방 국가 내수 시장을 사로잡고 있다. 한류 열풍과 더불어 한국 특유의 편리하고(convenient) 정교하면서도(detail) 빠른(speed) 서비스를 앞세워 고속 성장하는 동남아 지역 소비자의 지갑을 열고 있는 것이다. 김도현 주베트남 대사는 “베트남 등 신남방 국가는 아직 경제 규모가 작지만 중산층이 빠르고 늘어나는 등 내수 시장 잠재력이 커 우리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기업은 선진화한 서비스 노하우와 현지화 전략을 앞세워 현지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베트남 현지 4위 손해 보험사인 PTI를 인수한 DB손해보험의 김강욱 베트남 합작법인 법인장(PTI 부회장)은 “베트남은 보험의 보장성이 낮다 보니 오토바이를 타다 사고가 나도 그냥 툭툭 털고 가는 경우가 많다”며 “교통사고를 내면 보험료가 할증되는 한국식 보상 시스템을 도입하고 보험 가입자 정보를 축적해 보장을 강화한 보험을 출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롯데카드는 다음달 중 베트남에 진출한 롯데백화점·마트 등에서 결제하면 포인트를 적립해주는 신용카드를 선보일 예정이다. 한국 소비자를 상대로 베트남 펀드를 판매해온 미래에셋자산운용은 현지에서도 이와 비슷한 주식형 펀드 상품의 출시를 준비 중이다.
소매 시장에서 현지 업체와 직접 경쟁하는 유통 대기업과 벤처 기업 진출도 활발하다. 롯데는 지난해 베트남 마트 등에서 휴대전화로 상품을 15만 동(약 7000원) 이상 구매하면 10㎞ 이내 고객에게 원하는 시간에 물건을 무상 배달하는 ‘스피드 L’ 서비스를 도입해 호평을 받고 있다. 배송 시간이 짧으면 3시간 이내로 일주일씩 걸리는 현지 유통 업체보다 속도가 훨씬 빨라서다.
한국 청년 2명이 설립한 모바일 청소 서비스 업체인 오케이홈은 인도네시아 소비자의 눈길을 끌고 있다. 오케이홈은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응용 프로그램)으로 신청하면 전문 청소부가 원하는 시간에 집을 방문해 청소를 해준다. 지난 2016년 창업해 한국 교포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 지금은 이용자의 70%가량이 인도네시아 현지인이다.
우리 기업의 적극적인 해외 시장 진출은 경제 체질 강화에도 도움을 준다. 한국 사람이 외국에서 벌어들이는 임금·투자 소득에서 외국인이 국내에서 벌어들인 임금·투자 소득을 뺀 소득 수지는 2017년 현재 1억2000만 달러로 일본(1769억 달러)의 100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국내 기업이 외국에서 올리는 투자 수익이 변변치 않고 기껏 수출로 번 돈도 외국으로 대거 빠져나간다는 뜻이다. 신남방 국가는 우리 기업의 새로운 ‘캐시카우(현금 창출원)’로 경제 구조를 개선하는 역할을 하리라는 기대감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