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심 개혁]양승태가 못 푼 상고심 개혁…김명수의 선택은?

한광범 기자I 2018.09.27 05:00:00

사법부 최대화두…오랜 논의 끝 4가지 방안 압축
상고허가제, 대법원 선호불구 여론 동의 힘들듯
대법관 증원, 대법원 부정적 입장 불구 여론 우호적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김명수 대법원장은 20일 취임 1주년을 앞두고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상고심제도 개혁 의지를 피력했다. 다만 방향에 대해선 별다른 언급 없이 국회·정부 등이 참석하는 개혁기구를 구성하겠다는 구상만 밝혔다. 공론화 과정 없이 상고법원 도입을 강행하는 과정에서 동원한 무리수 탓에 사법농단 의혹을 촉발한 양승태 대법원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법농단 사태 해결과 사법개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1일 고영환·김창석·김신 대법관 퇴임식에서의 김 대법원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대법원장 “상고허가제 가장 이상적”…재도입 쉽지 않아

법조계에선 그동안 상고심 개혁에 대한 논의가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이때문에 다양한 개혁방안 역시 제시돼 왔다. 주요 개혁 방안으로는 △상고허가제 △상고법원 설치 △고등법원 상고부 설치 △대법관 증원 등이 거론된다.

상고허가제는 김 대법원장을 비롯해 대법관들이 선호하는 안이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해 인사청문회 당시 상고허가제를 “가장 이상적인 상고심 개혁방안”이라고 했다.

김 대법원장에 의해 제청된 안철상·민유숙·노정희 대법관도 같은 입장이다. 상고허가제는 항소심 판결 후 소송 당사자가 상고를 희망하면 대법원이 사전에 상고이유서와 판결 등을 검토해 선별적으로 상고심을 진행하는 것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경우 9명의 대법관별로 상고 신청 사건을 접수해 최종적으로 4명 이상의 대법관이 찬성한 경우에만 상고를 허가한다.

우리나라는 1981년 소송촉진등에관한특례법을 제정해 상고허가제를 도입했다가 1990년 폐지했다. 국민들의 재판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현재도 같은 이유로 재도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한 판사는 “국민들은 3심을 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변호사들은 사건 수가 급격히 줄어든다는 점에서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도 청문회 당시 상고허가제 재도입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점을 인정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추진했던 상고법원은 대법원과 고등법원 사이에 별도의 상고심을 담당할 법원을 설치하는 게 골자다. 지난 2014년 대법원이 의원입법( 홍일표 자유한국당 의원)을 빌어 발의한 안을 보면 현재 대법원이 전담하고 있는 상고심 사건을 원칙적으로 상고법원이 맡는게 핵심이다. 대법원은 상고 사건 중 ‘법령 해석 통일’이나 ‘공적 이익’과 관련된 사건에 한해 심사하고 상고법원 심리 사건 중 의견이 의견이 일치하지 않거나 기존 판례를 변경해야 할 사건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이송받아 심리하도록 했다.

상고법원안사실상 ‘4심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에 발목이 잡혔다. 법원 안팎에선 상고법원 인사권을 무기로 대법원장의 영향력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결국 상고법원 설치안은 의원 168명의 공동발의에도 불구,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채 19대 국회의 임기종료와 함께 자동폐기됐다. 사법농단 사태를 촉발시킨 사안이었던 만큼 재논의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대법원의 상고심제도 개혁 추진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농단 의혹으로 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사진은 지난달 1일 고영환·김창석·김신 대법관 퇴임식 모습. (사진=연합뉴스)
고등법원 상고부 도입안은 전국 5개 고등법원에 상고심을 전담하는 별도 재판부를 구성하는 안이다. 상고법원과 전체적인 모양새가 비슷하다. 이 안대로면 대법원은 고등법원·특허법원 심리사건 등 별도 마련된 심리 기준에 맞거나 상고부로부터 이송되거나 특별상고된 사건만 심리하면 된다. 상고부 재판부 구성은 지방법원장급이나 고등부장급을 주로 임명하도록 했다.

상고부 도입안은 참여정부 당시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가 마련해 정부 입법으로 국회에 제출됐다. 당시 상고부 도입안은 특히 지방에서 환영 받았다. 지방자치단체를 비롯해 지역 변호사회와 법학전문대학원 측에서 사법 권력의 지방분권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선호도가 높았다.

하지만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국회 논의 과정에서 지역 유착 우려가 있어 대법원이 있는 서울고법에만 상고부를 설치해야 한다”고 가로막고 나선 탓에 입법이 무산됐다.

◇김명수 “대법원 증원도 고려 가능”…전향적 입장

대법관 증원안은 현재 법원을 제외한 법조계에서 가장 선호하는 안이다. 현재 13명인 대법관을 대폭 늘려 대법관 1인당 사건 수를 경감하자는 것이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양 전 대법원장 시절 상고법원 도입을 반대하며 대안으로 제시한 안도 대법관 증원이었다. 정치권에서도 대법관 증원안에 우호적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진행의 어려움과 사건수 경감의 한계 등을 이유로 반대 입장을 확고하게 유지해왔다. 더욱이 대법관 증원 문제는 최고 법원을 둘러싼 헌법재판소와의 자존심 싸움도 걸려 있어 대법원으로선 수용불가 입장이 확고했다. 다만 김 대법원장은 지난해 인사청문회 당시 “대법원에서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 왔던 대법관 증원 부분도 (다른 방안과 마찬가지로) 고려할 수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법조계에선 김 대법원장의 취임 후 행보를 고려할 때 대법원이 구체적안 방향을 제시하기 보다는 국회와 정부가 참여하는 논의기구의 논의 과정을 지켜볼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고위 법관은 “김 대법원장 성향상 논의기구에서 구체적 방향이 정해지면 이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정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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