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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남 김정현 기자] 김진일(51)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약간 특이한 이력을 가진 경제학자다.
김 교수는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의 핵심 기관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서 10년가량 일했다. 지난 1996년 미국 예일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곳이 연준이다. 지금도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때 한 달씩 연준에서 자문관(컨설턴트)으로 활동하고 있다. “경제 이론에 실무 경험까지 갖춘 학자”라는 평가는 김 교수만의 강점으로 꼽힌다. 전공 분야는 거시경제와 통화정책. 특히 미국 경제의 정서에도 밝다.
미국발(發) 돌발악재가 유독 우리 경제를 흔들고 있는 요즘이다. 김 교수는 최근 국내외 경제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이데일리는 지난 27일 오후 서울 중구 본사에서 김 교수와 1시간30분 넘게 인터뷰를 진행했다.
◇“트럼프, 자국 제조업 위해 弱달러 선호”
-미국 연준에서 일한 계기는.
△처음 취직한 곳이 FRB다. 2년 정도(1996~1998년) 일하다가 비자 문제로 미국 버지니아대 조교수로 옮겼다. 이후 2003년 다시 FRB로 와서 8년 일했다. 요즘은 연준에 한국인들이 있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거의 없었다.
-미국과 한국 중앙은행의 가장 큰 차이는 뭔가.
△인사 정책이다. 한국은행은 공개채용으로 다 뽑고 난 후 각 부서로 나누는 식이다. 미국은 정반대 시스템이다. 각 국장들이 직접 뽑거나, 팀장들이 채용하기도 한다. 한국은 그러면 채용 비리가 불거질 수 있을 텐데, 미국은 이상한 사람을 채용하면 뽑은 사람이 승진할 수 없게 해놨다. 심사숙고 할 수밖에 없다. 나라마다 역사가 다르니 무엇이 더 낫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통상 압박이 거세다.
△언젠가 하기는 할 정책이었다고 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지지 기반에 했던 약속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중간선거가 치러지는 11월까지는 우리나라에 대한 통상 압박이 계속될 거다. 그 카드를 꺼냈다는 정도가 아니라, (정치적 목적으로 유권자들에게)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보이려고 할 거다.
-‘러스트 벨트’의 불만은 얼마나 큰가.
△러스트 벨트(미국 제조업의 중심지였다가 제조업의 사양화로 불황을 맞은 지역) 노동자들은 ‘우리가 곧 미국’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영국을 제치고 미국을 최강국으로 만든 게 우리인데, 그게 잊혀졌다는 거다. 주로 철강과 자동차 산업 쪽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60~70대가 그 아래 세대에 느끼는 감정과 비슷할 것 같다.
-소외돼서 기분이 나쁘다는 건가.
△그런 심리를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확 긁은 거다.
-미국 달러화 가치가 이례적으로 약세다.
△(최근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이 약달러가 좋다고 한 발언은) 국내 정치용이다. 달러화 가치가 하락한다면 실제 자국 제조업 수출에 도움이 되니 이야기할 수도 있고, 이런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상대 진영보다 정치적으로 유리하다.
-트럼프 대통령도 약달러를 원하나.
△국내 산업이나 백인 노동자를 볼 때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원래 소비의 나라 아닌가.
△제조업 쪽으로 바뀌었다. 그걸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에서 잘 이용했다. 미국 소비자들은 수입물가가 싸지기 때문에 달러화 가치가 높으면(강달러) 좋은 게 당연하고, 과거 미국 제조업은 (환율로 도와주지 않아도) 워낙 잘 됐지 않았나. 그런데 이제는 그게 안 되는 시대다. 희생양을 찾다보니 결국 달러였다.
-요즘 GM 사태도 있다. 이런 돌발악재가 우리 성장률을 떨어뜨릴까.
△그렇다. 특히 한국GM과 관련해서는 정책당국에서 신경을 쓸 것 같다. 자동차와 조선은 고용유발계수가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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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 소득 성장론, 만병통치약 아냐”
-세계 경제가 호황이라는 얘기가 많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언젠가 경기를 반전시켜야 하는데, 아직은 불안하다. 경기 회복세는 여전히 미미하다.
-국내 경제는 어떤가.
△세월호 사태 이후 경제 심리가 떨어질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오래 몇 년간 하락할 줄은 몰랐다. 금방 회복하도록 정책을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나중에 보면 세월호 이후 5년간 유독 경기가 움푹 패여있었다는 게 드러날 것 같다. 온 국민이 집단적 트라우마에 빠진 것 같다.
-요즘 국내 물가지표가 너무 낮다.
△저도 시내에서 이동할 때 주변을 본다. 중국인 관광객이 얼마나 붐비나 등등이다. 그런데 빨리 물가가 반등할 것 같지는 않다.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 중반대까지는 가능하겠지만, 후반대는 어려울 듯하다. (한국은행은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1.7%로 보고 있다. 통화정책 목표치는 2.0%다.)
-가계부채는 어떻게 판단하나.
△많이 빌린 사람들이 부자이기 때문에 괜찮다는 말이 있는데, (1450조원 넘게) 너무 큰 폭 증가해서 걱정스러운 것도 틀림 없다.
-가계부채가 위기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는 게 진짜 위기인 건 아닌가 싶다.
△그렇다. 미국의 경험을 보면, 미국은 국제수지 적자가 늘 때마다 큰 일 난다, 큰 일 난다 말은 많았지만 아직 괜찮다. 일본의 재정적자는 더 심했다. 현재 1450조원 정도의 가계부채가 위기인 건지 아닌 건지는 아무도 모른다.
-문재인정부는 가계대출을 규제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을 줄이는 게 목적이라고 밝히고 달성하는 건 좋다. 그런데 주택가격을 동시에 잡겠다고 하면 힘들어진다. 하나의 정책을 통해 여러 목표를 달성하기는 어렵다. 가계부채와 주택가격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주면 좋겠지만, 경제학적으로 반대로 움직이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가장 정치적인 집단인 청와대에 그런 요구를 하는 건 무리라는 생각도 든다.
-소득 주도 성장론은 어떻게 보나.
△해보지 않았던 정책이다. 새로운 시도로 해볼 만한 것 같다. 하지만 만병통치약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문제다.
-후기 케인지언 경제학이 다른 나라에서도 구현됐나.
△개인적으로 석사 논문을 그걸로 썼다. 워낙 일부만 했던 정책이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단이 어렵다.
(후기 케인지언 경제학은 학계 내 비주류다. 청와대의 소득 주도 성장론은 후기 케인지언 경제학의 영향을 받았다. 유효수요를 늘리는 게 성장의 관건이라는 것이다. 실질임금이 상승하면 소비가 증가하고, 그 결과 노동 수요가 증가해 실업이 감소한다는 논리다.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이 대표적인 학자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어떻게 보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처우가 너무 차이가 나는 게) 문제인 건 맞다. 정규직들이 양보해야 한다. 특히 사회가 개인화하면서 더 그런 문제가 나오는 것 같다. 노동유연성이 높아져야 한다는 견해에 찬성한다. 결국 그걸 해소하는 건 정치인 것 같다.
-연초부터 일자리 추경론이 나온다.
△일자리 추경을 하는 건 문재인정부의 정책에 맞다고 본다. 다른 정책들과 어떻게 연결시키느냐가 관건이다. (하지만 2월부터 추경론이 나오는 건) 정부가 조급한 것 같다. 추경은 (결국 빚을 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중에 누군가는 내야 하고 책임져야 한다. 그게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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