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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한 추상미술에 서정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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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운 기자I 2017.01.09 06:00:00

''류경채의 추상회화 1960-1995''전
서울 종로구 사간동 현대화랑 2월 5일까지
류 화백의 대형 추상회화 30여점 전시

류경채 ‘염원 95-2’(사진=현대화랑)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1949년 처음 열린 제1회 국전(대한민국미술전람회)은 최대 관심사였다. 일제 강점기 최고 권위를 지녔던 조선미술전람회를 대채해 대한민국 제1공화국 정부가 실시한 대규모 미술공모전이었다. 국전은 동양화·서양화·조각·공예·서예 등의 분야로 나눠 작품을 공모했다. 심사위원들이 입선작을 선정하고 그 가운데 특선작을 뽑은 다음 다시 대통령상과 국무총리상, 문교부장관상을 선정해 수여했다. 제1회 국전 수상작 전시에서 가장 눈길을 끈 작품은 ‘폐림지근방’이었다. 서른 살이 채 안 된 젊은 화가 류경채가 그린 ‘폐림지근방’은 고전적 사실주의를 벗어난 풍경화 기법으로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서정주의 추상화가’ 류경채(1920~1995) 화백의 작품인생을 되돌아보는 대규모 회고전이 열린다. 서울 종로구 사간동 현대화랑에서 오는 2월 5일까지 열리는 ‘류경채의 추상회화 1960-1995’는 1990년에 개최한 ‘류경채 회고전’ 이후 26년 만에 민간에서 열리는 전시다. 당시 전시에서 감상할 수 없었던 1990년대 작품을 포함해 총 30여점을 선보인다.

황해도 해주 출신의 류 화백은 전주사범학교 2학년 재학 중 선만학생미전에 입상하며 미술에 두각을 나타낸다. 이후 일본의 동경녹음사화학교에 입학해 회화를 배운 뒤 해방 이후 동경사범학교(현 서울교대 전신)의 교사로 근무하던 중 ‘폐림지근방’이 국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으며 일약 주목받는 화가가 된다. 이후 이화여대 미대 교수를 거쳐 1961년부터 서울대 미대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가르치다 1986년 정년퇴임했다. 퇴임 이듬해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으로 선출됐고 1995년 타계 후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생전의 류경채 화백(사진=현대화랑 제공)
류 화백은 명성에 비해 생전에 전시를 거의 하지 않은 작가로 꼽힌다. 학기 중에는 붓을 들지 않았고 소품보다 대작 위주로 작업을 한 까닭에 작품 수가 많지 않았다. 여기에 화단의 상업성과 결탁하지 않았던 꼿꼿한 성품도 한몫했다. 류 화백은 생전 전시를 권유하는 지인들에게 “그림 일로 안색을 바꾸는 일도 싫고 돈 받으려고 머리를 조아리는 일은 죽기보다 더 싫다. 차라리 한 끼를 굶는 것이 뱃속이 편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전시는 류 화백의 작품을 ‘서정적 리얼리즘’(1940~1950년대), ‘비구상’(1960년대), ‘순수추상’(1970년대), ‘색면분할’(1980년대), ‘기하학적 추상’(1990년대)으로 나눠 선보인다. 후기로 갈수록 한지 같은 질감에 담백하고 단순한 도형을 화폭에 구현하려 했다. ‘화사한 계절’, ‘염원’ 등의 제목을 통해 서정적 감성을 숨기지 않았던 것도 특징이다.

제자였던 유희영 전 서울시립미술관장은 류 화백의 작품에 대해 “자연대상의 사실적인 외양보다 그 이면의 본질성을 중심에 삼았으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감성으로 재해석한 작품세계는 자연현상의 원천적인 힘을 더해준다”고 평했다.

류경채 ‘축전 91-4’ (사진=현대화랑)
류경채 ‘계절 63-5’ (사진=현대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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