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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의 눈] 잭슨홀의 우회전 깜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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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찬 기자I 2016.08.31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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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런 연준 의장 "금리인상 여건 강화" 발언
반응 시큰둥하자 연준 2인자 "9월 인상 가능하단 말" 훈수
'우회전 깜빡이 키고 설마 좌회전 하겠나'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사진=AP)


[뉴욕=이데일리 안승찬 특파원] 김중수 전(前) 한국은행 총재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중앙은행은 프리사이즈니스(preciseness·정확성)와 컨디셔널리티(conditionality·조건부)를 명확하게 얘기할 수는 없다.”

뭔 말을 이렇게 어렵게 하나 싶지만 쉽게 풀어 설명하면 내용은 간단하다. 프리사이즈니스는 ‘언제 얼마나 금리를 올리고 내릴 것이냐’를 뜻하는 말이고 컨디셔널리티는 ‘무슨 조건에서 금리를 움직일 것이냐’를 뜻한다. 결국 중앙은행 수장은 무슨 조건에서 언제 얼마큼 금리를 움직일지 속 시원하게 말하지 못하고 또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는 얘기다.

중앙은행 총재가 “다음 달에 금리를 0.25% 포인트 올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고 가정해보자. 금융시장은 당장 금리 변동을 반영하며 출렁거릴 게 뻔하다. 이럴 경우 한 달 후에 금리를 올려봐야 별 효과가 없게 된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언젠가 “우린 절대 미리 시행하지 못한다”(We never pre-commit)고 했던 말도 같은 맥락이다. 중앙은행 총재들은 늘 알쏭달쏭한 말로 여지를 남긴다.

그래도 생각은 말에 흔적을 남기는 법이다. 일부러 슬쩍 방향을 보여줄 때도 있다. 중앙은행 사람들은 이걸 ‘깜빡이’라고 부른다. 자동차가 좌회전할지 우회전할지 미리 깜빡이로 신호를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우회전 깜빡이를 넣었다면 차가 오른쪽으로 가려고 한다는 신호를 주위 차들에게 보낸 셈이다.

지난주 전세계 금융시장의 관심은 미국 와이오밍주(州) 휴양지 잭슨홀에 몰렸다. 가뜩이나 9월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들이 융단폭격처럼 쏟아지던 시점이다.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우회전 깜빡이’(금리 인상 신호)를 킬 것인가에 눈과 귀가 쏠렸다.

옐런 의장은 이렇게 말했다. “견고한 고용시장과 경제 활동과 물가 상승에 대한 우리 전망으로 봤을 때 최근 몇달 간 기준금리를 올릴 수 있는 여건이 강해졌다고 믿는다.” 그는 또 “(금리 인상 판단의 주요 지표인) 물가 상승률이 여전히 목표치인 2%를 밑돌고 있지만 이는 주로 일시적 요인에 기인한 것”이라며 “물가상승률이 몇년 내에 목표치로 올라갈 것”이라도 했다.

물론 실제 금리 인상 여부는 “발표되는 지표에 달렸다”고 했지만 평소 말을 삼가는 중앙은행 수장이 이 정도 사족도 달지 않는다는 건 상식에 맞지 않는다. 옐런 의장은 분명히 ‘우회전 깜빡이’를 켰다.

하지만 시장은 옐런 발언을 듣고 ‘당장 9월 금리를 올리겠다는 건 아니잖아’라고 생각했다. 뉴욕 증시는 옐런 발언 이후 오히려 올랐다. 옐런 의장을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 6월에도 말은 많았지만 결국 아무 일도 없지 않았냐’고 빈정거렸다.

그러자 연준의 ‘넘버2’ 스탠리 피셔 연준 부의장이 답답하다는 듯 훈수를 뒀다. 옐런 의장 발언은 9월에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말이고 올해 두 번의 금리 인상도 가능하다는 말이라고 말했다.

올해 남아 있는 통화정책회의는 9월과 11월, 12월이다. 그런데 11월은 미국 대통령 선거 바로 직전이다. 정치적 부담이 큰 시기일 수 밖에 없다. 올해 최소 한 번의 금리 인상이 필요하고 12월까지 기다리기엔 너무 늦다고 판단한다면 9월 금리 인상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뜻이다. 피셔 부의장 말을 듣고서야 뉴욕 증시는 화들짝 놀라 방향을 꺾었다.

우회전 깜빡이를 넣었다고 해서 그 차가 반드시 오른쪽으로 돈다는 보장은 없다. 오른쪽 길이 막혀 있다고 생각되면 그냥 교차로를 지나 직진하는 일도 흔하다. 하지만 우회전 깜빡이를 넣었다면 차가 오른쪽으로 갈 확률이 높다는 말이다. 우회전 깜빡이를 넣고 왼쪽으로 급하게 도는 일이 자주 일어나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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