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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미국 브로드웨이 원작 버전은 첨단 무대장치와 조명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대로 가져오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국내 라이선스 초연 중인 연극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내달 31일까지 광림아트센터 BBCH홀·이하 ‘한밤개’)의 연출을 맡은 김태형 연출가의 말이다. 로열티 등의 문제로 ‘대본’만 가져온 것이 오히려 득이 됐다. 국내 제작진과 스태프가 의기투합해 만든 무대는 올해 공연한 작품 중 수작으로 꼽을 만하다. 첨단기술과 아날로그가 결합한 새로운 한국버전의 탄생이다.
연극은 2003년 발표한 마크 헤던의 동명소설을 각색했다. 2013년 영국에서 초연 뒤 그해 올리비에 어워드 7관왕, 올해 토니상 5관왕을 휩쓴 작품은 독창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화려한 무대연출로 극찬을 받았다. 자폐소년 ‘크리스토퍼’가 이웃집 개가 살해당한 것을 발견하고,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세상 밖으로 발을 내디디면서 펼치는 소년의 성장담이다.
김 연출은 “배우가 직접 쓰레기통, 현금인출기, 냉장고, 소파, 책장 등의 소품을 몸으로 표현하는 등 연극적 상상력을 발휘하고자 했다. 특히 자폐아동을 둔 가족의 정서를 표현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귀띔했다. 이어 “예산 안에서 첨단 무대기술을 도입했다. 60% 정도는 첨단 무대기술을 적용하고 나머지 40%는 끈끈한 연기력으로 채웠다”고 말했다.
자폐증을 앓고 있는 주인공 크리스토퍼의 내면을 무대 전체에 감각적으로 형상화한 것이 특징이다.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은 크리스토퍼의 꿈, 엄마를 찾아 처음 기차를 타게 된 두려움과 혼란스러운 감정을 조명과 영상에 담았다. 화려하고 다소 복잡한 영상·조명 효과를 위해 무대는 최대한 비웠다. 정승호 무대감독은 “우주와 같은 크리스토퍼의 머릿속을 무대 전체에 표현하려고 했다”며 “구조물을 거의 활용하지 않고 영상과 조명으로 다이내믹하게 채우되 정서를 담으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배우 윤나무, 려욱, 전성우가 크리스토퍼를 연기하고 김영호와 심형탁이 애드 역으로 연극에 처음 도전했다. 크리스토퍼 역은 어려운 수학공식, 은하계의 생성원리를 줄줄 읊어대는 등 대사량이 엄청나다. 크리스토퍼 역으로 연극 첫 도전에 나선 려욱은 “많은 대사량과 자폐증 연기 등 어려운 점이 많지만 작품의 메시지가 워낙 좋아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이 작품을 소화하지 못하면 다른 어떤 것도 하지 못할 것 같았다”고 소감을 말하기도 했다.
김 연출은 “브로드웨이 버전이 ‘쿨’ 하다면 일본 버전은 슬프다. 두 버전을 잘 갈무리하려고 했다”며 “원작자는 자폐아에 대한 연민에서가 아니라 세상의 다른 존재를 사람들이 존중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품을 썼다고 하더라. 나 역시 다른 시각에서 세상을 보여주려고 애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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