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초연 오른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
토니상 6관왕 휩쓴 브로드웨이 화제작
935장 LED패널로 현대 소통 단절 표현
가족 이야기 초점 맞춰 한국 정서 녹여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사소한 거짓말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7세 소년 에반 핸슨이 맞닥뜨리는 질문이다. 시작은 한 통의 편지. 에반 핸슨이 불안장애를 이겨내기 위해 상담사의 조언에 따라 자신에게 쓴 편지다. 그 편지가 어느 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동급생 코너의 바지에서 나온다. 코너의 가족이 자초지종을 묻자 에반 핸슨은 자신이 코너와 사실은 매우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고 거짓말을 한다.
|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의 한 장면. (사진=에스앤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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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드웨이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이 아시아 초연으로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영화 ‘라라랜드’의 음악으로 잘 알려진 벤지 파섹과 서슨 폴(파섹 앤 폴)이 작사·작곡을 맡은 작품이다. 2015년 워싱턴 D.C. 아레나 스테이지에서 초연했고, 2년 만인 2017년 브로드웨이에 선보여 그 해 제71회 토니상 최우수 작품상 등 6관왕을 휩쓴 화제작이다.
작품은 불안장애를 겪고 있지만 알고 보면 평범한 10대 소년 에반 핸슨의 이야기다. 에반 핸슨은 팔에 한 깁스에 사인을 해줄 친구도 없는 외톨이다. 홀로 에반 핸슨을 키워온 엄마 하이디는 하나뿐인 아들을 위해 밤낮없이 일하지만, 에반은 그런 엄마 때문에 더욱 외롭다.
평범한 소년의 이야기는 거짓말과 우연이 겹치면서 특별한 이야기로 둔갑한다. 에반 핸슨은 코너의 죽음을 계기로 코너의 가족과 가까워진다. 이들에게서 그동안 받지 못했던 가족의 사랑과 따뜻함을 느낀다. 그 마음을 이어가고 싶어 계속해서 거짓말을 한다. 여기에 또 다른 동급생 재러드, 알라나가 동참하면서 이야기는 점점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의 한 장면. (사진=에스앤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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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에반 핸슨’의 스토리는 세세히 살펴보면 허점이 많다. 에반 핸슨이 코너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고자 알라나와 함께 ‘코너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과정이 대표적이다. 불안장애를 겪고 있는 에반 핸슨이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며 “우리가 당신을 찾겠다”(you will be founded)라고 연설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는 감동적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개연성이 부족하다. 실제로 뮤지컬을 원작으로 하는 동명 영화는 이러한 이야기의 허점이 부각되면서 혹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디어 에반 핸슨’의 미덕은 스토리의 허점을 채우는 무대만의 매력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무대 뒤편에 설치된 LED 패널이다. 공연 관계자에 따르면 총 935장(500㎜×500㎜ 기준)의 LED 패널이 이번 공연에 쓰였다. 이 패널은 학교, 집 등 인물들이 속한 공간적 배경이 된다. 스마트폰과 각종 SNS 화면이 나올 때는 현대 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듯하다. 온라인으로는 모두가 연결돼 있지만, 오프라인에선 단절된 현대인의 모습을 무대 연출로 체감하게 만든다.
미국적인 이야기를 한국인도 공감할 ‘가족’이란 주제에 맞춰 풀어낸 점도 인상적이다. 에반 핸슨의 대학 입학 자금을 놓고 하이디와 코너의 가족이 벌이는 신경전, 모든 사건이 끝난 뒤 하이디와 에반이 나누는 대화 등에서 이러한 점이 잘 나타난다. 창작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 ‘레드북’ ‘쇼맨_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 등을 같이 작업한 연출가 박소영과 작가 한정석이 각각 연출과 한국어 대본으로 참여해 한국적인 정서를 작품에 녹여냈다.
|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의 한 장면. (사진=에스앤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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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에반 핸슨’은 자신은 혼자라고 느끼는 현대인에게 건네는 따뜻한 손길 같은 작품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전하는 감동의 힘은 브로드웨이를 건너 한국에서도 유효하다. “언젠가 이 모든 일들이 아주 작게 느껴질 거야.” 하이디가 에반 핸슨에게 건네는 이 한 마디의 울림만으로도 ‘디어 에반 핸슨’은 관람할 가치가 충분하다. 김성규·박강현·임규형이 에반 핸슨 역, 김선영·신영숙이 하이디 역으로 출연한다. 공연은 오는 6월 23일까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