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미 대선은 민주당 케네디와 공화당 닉슨의 대결이었다. 케네디는 ‘현직 부통령’인 닉슨과 비교하면 ‘풋내기’에 불과했다. 대반전은 TV토론 이후 일어났다. 당당하고 활기찬 케네디는 에너지가 넘쳤다. 피곤하고 초조한 모습의 닉슨은 점수를 까먹었다. 케네디의 완벽한 승리였다. TV토론은 ‘미디어 정치’의 서막을 알린 분수령이었다. 80년 미 대선 TV토론도 획기적이다. 배우 출신인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은 특유의 유머와 여유로 현직 대통령이던 민주당의 지미 카터를 압도했다. 2016년 미 대선 TV토론은 힐러리와 트럼프가 맞붙은 ‘세기의 대결’이었다.
한국은 미국보다 40년 가까이 늦었다. 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 TV토론이 공식 도입됐다. 여야 후보들은 전국으로 생중계되는 TV토론에서 정책과 비전을 놓고 겨뤘다. 최대 수혜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대한민국이 배출한 전·현직 정치인 중 ‘가장 박식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김 전 대통령은 능수능란했다. 대선 슬로건처럼 ‘준비된 대통령’을 과시했다. 또 ‘DJ는 빨갱이’라는 해묵은 색깔론에서도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15대 대선 이후 TV토론은 한국 정치의 필수코스가 됐다.
TV토론은 한국정치의 레전드급 명장면도 만들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경선이 대표적이다. ‘이명박 vs 박근혜’의 맞대결은 그야말로 ‘불꽃’이었다. 2012년 대선 당시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의 ‘박근혜 낙선’ 발언도 화제였다. 87년 대선 이후 최초의 과반 대통령 탄생은 이 전 대표가 ‘일등공신’이라는 비아냥이 나왔다. 2017년 대선 TV토론도 빼놓을 수 없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그 유명한 ‘MB 아바타’ 발언의 여파였다. 문재인 대통령과 용호상박의 대결로 일대일 박빙구도를 만들었던 안 후보는 끝내 실언의 후폭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현대정치에서 TV토론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더구나 코로나19 사태로 대규모 오프라인 유세는 불가능하다. 선택을 위한 유권자들의 TV토론 의존도는 더 커졌다. 여야 후보들의 도덕성과 인품, 공약과 정책능력을 따져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선 스케줄과 관련해서 돌발 변수도 추가됐다. 5년 전 국정농단·탄핵사태에 따른 조기대선(12월이 아닌 5월 대선)의 여파로 20대 대선은 오는 3월에 치러진다. 선거운동 기간은 강추위가 몰아치는 1월과 2월이다. 가성비를 고려하면 TV토론만큼 효과적인 수단은 없다.
이상한 건 TV토론의 실종이다. 여야 당내 경선에서의 수많은 TV토론과 비교하면 대조적이다. 최근 동학개미들의 바이블인 ‘삼프로TV’에 이재명·윤석열·안철수·심상정 등 여야 후보가 줄줄이 출연했다. 조회수 합계도 총 800만회를 넘었다. 차기 대통령 적임자를 평가할 좋은 기회였다. TV토론에 목말랐던 유권자들은 “삼프로TV가 나라를 구했다”고 극찬했다. 현행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대선 기간 중 대담이나 토론회는 최소 3회 이상 개최’다. TV토론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이 아니라 다다익선(多多益善)이다. 직전 19대 대선에서도 TV토론은 6차례 이뤄졌다. TV토론은 유권자에 대한 예의이자 대선후보의 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