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경제 시대 '프로 싸움꾼'의 민낯을 들추다

장병호 기자I 2021.04.21 06:03:00

[미디어문화 연구가 김내훈, 국내 대표 논객 분석]
주목경제 시대가 낳은 '프로보커터'
선 넘기로 분열 일으키며 유명세
위악적 콘텐츠 소비 지양해야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주목이 걷히고 여유를 잃은 진중권에게는 억지와 악만 남았다. 프로보커터의 말기적 증상이다.”(134쪽)

“김어준과 종족주의는 낯선 조합이 아니다. 그가 진보·보수 성향은 학습된 가치관이 아니라 타고난 기질이라고 주장하면서 양자의 뇌 구조 자체가 다를 것이라고 짐작한 바 있음을 상기하자.”(164쪽)

진중권, 김어준, 서민, 그리고 ‘가로세로연구소’를 위시한 수많은 보수 유튜버까지 현재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논객들을 향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은 책이 최근 출간돼 눈길을 끈다.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김내훈(29)씨가 쓴 ‘프로보커터’(서해문집)다.

책 ‘프로보커터’는 진중권(왼쪽), 김어준 등 글이나 영상으로 특정인이나 집단을 도발해 주목을 이끌어내는 ‘프로보커터’들이 공론장을 오염시키고 있다고 경고한다(사진=연합뉴스).
프로보커터(provocateur)는 도발(provoke)하는 사람이라는 뜻. 인터넷 등지에서 글이나 영상으로 특정인이나 집단을 도발해 조회수를 끌어올리는 이들을 가리킨다. 김내훈 씨는 최근 이데일리와 서면 인터뷰에서 “영미권의 프로보커터에 대한 책을 쓰던 중 한국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다 보니 유명인(진중권·서민·김어준 등)들이 눈에 띄었다”며 “이들보다 훨씬 더한 ‘매운맛’ 프로보커터들이 속출한다면 여론을 뒤흔들 수 있다는 경고를 담고자 했다”고 집필 의도를 밝혔다.

책은 프로보커터가 등장한 이유를 시대적 변화 속에서 찾는다. ‘일단 눈에 띄는 것’, 바로 ‘주목’이 가치를 규정하는 주목경제 시대가 프로보커터를 낳았다는 것이다. 자유와 저항의 아이콘으로 주목을 받았으나 소아성애자로 전락한 싱가포르 출신 아모스 이(Amos Yee)의 사례를 시작으로 실패한 ‘치즈퐁듀치킨’ 먹방으로 오히려 주목을 받는데 성공한 유튜버 테이스티훈, ‘선 넘기’로 유명세를 탔다가 물의를 빚은 방송인 김민아, ‘페페 더 프로그’로 유명한 인터넷 밈(meme) 등 온라인상의 다양한 문화 현상을 통해 주목경제의 특징을 분석해 제시한다.

‘프로보커터’를 쓴 김내훈 씨(사진=본인 제공)
김내훈 씨는 “마일로 이아노풀로스(영국의 극우 정치 해설가 겸 저널리스트) 같은 인물은 누군가를 기분 나쁘게 함으로써 유명해지고 커리어를 구축했다”며 “과거에는 없었던, 오늘날 새롭게 탄생한 직업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이것이 시대의 산물이라고 생각했다”며 “좋든 나쁘든 일단 이목만 끌고 그 주목 자체를 영달을 위한 자본으로 활용할 수 있는 주목경제 시대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책 후반부는 진중권, 서민, 김어준, 그리고 보수 유튜버 등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특히 이들의 발언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살펴보는 세밀한 분석으로 눈길을 끈다. 가령 진중권의 경우 20년 전 안티조선 운동부터 최근의 여정을 비교하며 그가 원래부터 “모두 까는” 사람이었음을 이야기한다. “진중권은 대체 왜 저러는 걸까?”라는 질문보다 “왜 저렇게까지 악에 받쳤을까?”를 탐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내훈 씨는 프로보커터의 발언을 거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도하는 언론의 행태에도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김내훈 씨는 “프로보커터들이 성장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언론의 제 기능이 상당 부분 마비돼 신뢰도가 바닥을 친다는 사실이 있다”며 “(언론이) 프로보커터의 강한 발언을 인용하면서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이들의 언어를 전파하며 건전한 토론의 가능성이 차단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프로보커터들의 발언은 날로 거세지고 있다. 진중권은 최근 이준석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과 ‘반페미니즘’ 논쟁을 벌이며 자신을 향한 주목을 유지하고 있다. 김어준은 정치권과 언론의 공세 속에서 오히려 프로보커터로서 존재감이 높아지고 있다. 책은 혐오와 차별에 기반한 프로보커터의 언어가 공론장을 오염시켜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김내훈 씨는 “일반 독자들도 비판적인 독해력을 함양할 필요가 있다”며 “위악적인 콘텐츠의 소비를 지양하고 혐오 어린 우스개에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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