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계 신용대출이 급증하면서 금융당국이 제동을 걸고 나섰지만, 일부 은행과 대출모집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영업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엄격한 규제로 금융당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국내 금융지주 계열 은행들과 달리,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외국계은행과 인터넷전문은행을 중심으로 여전히 공격적인 신용대출 영업·마케팅이 벌어지고 있다.
◇“외국계은행, 당국 눈치 덜보는 거 아니냐”
4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외국계은행인 한국씨티은행은 전문직과 대기업 직장인, 공무원 등 고신용자들을 중심으로 신용대출 확대하고 있는 모습이다. 서울 광화문·을지로 및 강남 일대 등 오피스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직장인 대출 전단지 배포가 이뤄지고 있다. 지난달부터는 고소득 전문직 의사들을 대상으로 최대 5억원까지 신용대출이 가능한 ‘씨티비즈닥터론’ 마케팅도 강화하고 있다.
일부 대출모집인과 중개인들은 전단과 문자 메시지, 웹 포스팅을 통해 ‘월급여 최고 27배까지 가능’, ‘타 은행 대비 150~200% 이상 높은 승인 한도’, ‘한도 1억8000만원까지, 금리 최저 2%대부터’, ‘대기업·공무원·일반직장인 대상’, ‘자체 등급 평가로 신용등급 낮아도 진행 가능’, ‘카드대출 등 2금융권 이용 중이어도 대환 조건으로 진행 가능’ 등 광고성 문구를 내세워 직장인 대출을 유인하고 있다.
한국씨티은행은 일반 시중은행들과 달리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취급은 적고 신용대출 비중이 높다. 이러한 사업 구조로 직장인 신용대출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게 씨티은행 측 입장이다. 다른 시중은행들이 신용대출 조이기에 나서더라도 쉽게 신용대출을 줄일 수 없다는 것이다. 글로벌 그룹 지배 논리를 따르는 외국계은행이기 때문에 국내 감독당국의 눈치를 상대적으로 덜 보는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국내 또 다른 외국계은행인 SC제일은행은 아직 눈치를 살피고 있는 모습이다. SC제일은행 관계자는 “신용평가, 대출금리 조정 등 선제적인 조치를 통해 이미 대출 증가세를 억제하고 있다”며 “향후에도 신용 위험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필요 시 당국의 가이드라인에 맞춰 신용대출 관리를 강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일반 시중은행들은 한도 낮추고 금리 인상
은행권 신용대출은 빠르게 늘고 있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은 지난달 24일 기준 총 126조8863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8월 말 잔액 기준 124조2747억원에서 약 한 달 사이 2조6116억원 늘어난 규모다.
|
신용대출 급증세가 심상치 않자 금융당국은 은행권에 고신용자들을 중심으로 대출 한도를 낮추고 금리를 높이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신용대출 관리방안 제출을 요구했다. 실제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시중은행 여신(대출)담당 부행장들과 화상 회의를 통해 “최고 200%에 이르는 신용대출 소득 대비 한도가 너무 많은 것 아니냐”고 압박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금융당국이 직접 신용대출 조이기에 나서면서 5대 은행을 중심으로 일제히 신용대출 한도를 낮추고 금리를 인상하는 등 몸사리기에 들어갔다. 눈치를 살피던 지방은행과 인터넷전문은행 등 다른 시중은행들도 신용대출 조이기 행렬에 속속 동참하고 있다.
현재 주담대 취급 없이 대부분 신용대출 위주로 영업이 이뤄지는 카카오뱅크는 처음엔 난색을 표하다가 이내 감독당국의 지침을 수용했다. 카카오뱅크는 지난달 25일부터 직장인 신용대출 최저 금리를 2.01%에서 2.16%로 0.15%포인트 인상을 단행했다. 다른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도 이보다 앞선 지난달 18일 신용대출 금리를 올렸다.
금융권 관계자는 “공격적인 신용대출 영업을 자제하자는 분위기가 어렵게 마련됐는데, 일부 은행과 대출모집인들이 이런 상황을 이용해 오히려 적극적으로 영업을 하는 건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