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한 카페에서 만난 신유청(39) 연출은 지난해 자신을 향했던 연극계의 스포트라이트에 대한 소감을 이 같이 밝혔다. 그는 지난해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 ‘그을린 사랑’ ‘와이프’ 등으로 연극계 각종 상을 휩쓸며 주목을 받았다. ‘그을린 사랑’은 제7회 이데일리 문화대상 연극부문 최우수작으로도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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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연출의 행보가 눈에 띄는 또 다른 이유는 순수극과 상업극을 아우르는 왕성한 활동이다. 지난해 연말 국내 초연한 연극 ‘조지아 맥브라이드의 전설’을 연출해 재기 넘치는 무대로 호평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삼연으로 무대에 오른 연극 ‘언체인’으로 관객과 만나는 중이다.
신 연출은 “상업극 작업을 하다 보면 이곳에서는 순수예술을 가미하고 싶어 하고 순수극 작업을 하면 상업성을 가미하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며 “순수극과 상업극의 담벼락을 허물고 평탄하게 만드는 일을 내가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달 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콘텐츠그라운드에서 개막한 ‘언체인’은 잃어버린 딸 줄리를 찾으려는 마크와 줄리의 실종에 대해 알고 있는 싱어의 이야기를 그린 2인극이다. 제한된 공간에서 두 인물이 주고받는 대화로 이뤄지는 서스펜스 드라마다. 신 연출은 초연부터 작품에 참여해왔다.
올해는 대학로 공연계 트렌드로 자리 잡은 젠더 프리 캐스팅을 시도했다. 신 연출에게는 첫 젠더 프리 캐스팅 작업이다. 신 연출은 “젠더를 바꾼다고 공연 자체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점이 이번 작업의 큰 발견”이라고 말했다. 또한 “여자 배우들이 표현하는 감정이 조금 더 섬세해서 캐릭터에 대한 다양한 시야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신 연출의 작품은 무대 구성이 인상적이다. ‘녹천에는 똥이 많다’처럼 ‘언체인’도 무대 뒤편의 소각장과 책상, 의자 등 단출한 무대 구성으로 배우의 연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꾸몄다. 신 연출은 “배우들이 재미있게 놀 수 있고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대본을 볼 때도 배우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 무엇일지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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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연출은 계원예고 재학 당시 연기에서 연출로 전공을 바꾼 뒤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나와 2008년부터 연출가로 활동 중이다. 연극 연출가는 극단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지만 신 연출은 특정 극단에 소속되지 않고 여러 작업을 이어왔다. 경계에 얽매이지 않고 싶어하는 그의 천성은 대학 시절 일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대학 수업 때 연출의도를 써서 페이퍼를 내면 퇴짜를 자주 맞았어요. 더 쓸 게 없는데도 거절을 당했죠. 연출가로서 의도도 중요하겠지만 저는 한 작품을 만나 몇 개월 동안 충분히 흡족하게 사는 것이 더 기분 좋아요. 나무에 비유한다면 깊이 내린 뿌리도 있겠지만 지금은 뿌리보다 하나의 줄기에서 하나의 열매를 먹고 다른 공연으로 넘어가 또 다른 줄기에서 또 다른 열매를 먹는 것이 좋습니다. 중요한 무언가가 남을지는 조금 더 두고 보면 알겠죠.”
‘언체인’은 오는 6월 21일까지 공연한다. 6월 2일부터 20일까지는 두산아트센터 ‘두산인문극장-푸드’ 기획 공연인 신작 연극 ‘궁극의 맛’도 선보일 예정이다. 츠치야마 시게루의 동명 만화를 무대로 옮긴 작품으로 ‘녹천에는 똥이 많다’를 함께 한 작가 겸 연출가 윤성호가 드라마터그를 맡는다. 신 연출은 “연출가로서 되고 싶은 특별한 이상향은 없다”며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단편영화든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편하게 모여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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