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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I 같은 국책연구기관은 생각하는 자세가 훈련돼요. 보수든 진보든 정부를 위해 일한다는 것이지요. 이번 정부가 경제정책의 기본을 지키지 않는다는 실망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더라고요. 이제는 불가피하다 싶었습니다.”
미래통합당은 윤 교수를 영입하며 ‘포퓰리즘 파이터’로 불렀다. 재정, 복지, 연금 등 경제에 해박한 그가 정책의 디테일을 다듬었으면 하는 기대가 있을 것이다. 이데일리는 지난 27일 서울 서초구 양재역 인근에서 윤 교수를 만나 2시간 안팎 인터뷰했다.
◇중남미 논쟁 공허하지 않다
-이전부터 정치 제의는 있었던 걸로 아는데, 왜 지금인가.
△지금을 한국 경제의 변곡점으로 본다. 1980년대 후반 일본과 흡사하다. 정책을 합리적으로 하지 않고 사회에 활력을 넣지 않으면 일본처럼 간다는 게 확실하다. 그러나 요즘 같으면 일본처럼 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왜 그런가.
△정치가 경제를 포획(capture)하는 사례가 많이 보인다. (나라 경제가 망가진) 중남미 논쟁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코로나19로 또 추가경정예산이 대안으로 나온다.
△코로나19로 돈이 많이 들 것은 누구나 동의한다. 문제는 당장 추경부터 하겠다는 거다. 코로나19 자체가 불확실한데, 어디에 얼마나 쓸 지 근거가 있는가. 나랏돈인 예산은 근거가 없으면 짤 수 없다. 예비비부터 쓰면서 계획을 세우는 게 순서 아닌가. 그런데 청와대와 여당에서 추경을 갑자기 말하니, 그렇게 (추경을 하는 것으로) 돼버렸다. 경제정책이 이렇게 정치화한 적이 있었나 싶다.
-추경은 왜 이렇게 만성화하는 것인가.
△뭔가 하는 척을 해야 하니 그렇다. (10조원 안팎의 추경을) 1~2주 안에 짠다면 졸속 논란은 당연한 것이다.
-이번에도 재정건전성 논란이 있다.
△그렇다. 코로나19 같은 사태를 위해 재정을 튼튼하게 해야 하는데, 이미 재정이 망가지고 있다. 정부는 이번에 대규모 적자국채를 발행할 것이다. 국채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있어서는 안 된다. 한 세대의 지출은 한 세대의 수입으로 해결해야 한다. 적자 편향(deficit bias)을 가장 경계해야 하는데, 지금은 선심은 현 정부가 얻고 부담은 이후 정부가 지는 식이다.
-재정의 역할은 논쟁적이다. 제때 돈을 풀지 않아 침체가 오는 나라도 있었는데.
△한국 현실을 보면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올해 (500조원이 넘는) 슈퍼 예산은 경기 부양 효과를 내기 어렵다. 예를 들어 아동수당 등 소득을 보전해주는 식의 복지 지출은 효과를 알 수 없는 지출이다. ‘다른 나라도 하더라’는 정도가 근거다. 또 한국은 V자형 반등 경제가 아니라 L자형 불황 경제다. 돈을 풀어봐야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다.
◇돈은 푸는데 개혁은 안 한다
-한국의 국가채무 비율이 낮다는 반론이 있다.
△재정은 국가간 비교가 별 의미가 없다. 한국은 국채 비율이 40% 정도 되는데, 2010년 재정위기에 빠졌던 아일랜드의 경우 40%였다. 국채 비율이 높지 않아도 위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다. 반대로 싱가포르는 100%가 훌쩍 넘는다. 그래도 투자자들은 싱가포르를 위험하게 보지 않는다. 무분별한 복지 지출이 아니라 특정한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위해 국채를 발행해 투자 효율성이 높다는 믿음 때문이다. 지출의 내용과 성격이 중요하다. 최근 국제신용평가사인 피치가 한국의 중기 재정을 경고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대로면 시장의 신뢰를 잃을 수 있다. 한국은 초유의 고령화와 싸워야 하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재정은 푸는데 구조개혁 화두는 사라졌다.
△그렇다. 한국 경제의 문제는 잠재성장률이 너무 빨리 떨어진다는 점이다. 돈을 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경제 실력을 높여 막힌 부분을 뚫어야 한다. 노동, 규제, 교육, 공공 등의 구조개혁이 필수다. 그 과정에서 구조개혁 충격을 재정이 받쳐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재정을 푸는 얘기만 한다.
-예컨대 공공개혁은 ‘공무원 철밥통’ 문제가 있다
△한국 공무원은 철저한 호봉제이고 고용 안정성이 100%다. (민간과 비교해) 일을 시작할 때 급여 수준이 나쁘지 않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무원 사회의 처우가 다른 국민들보다 월등히 높다는 건 문제가 있다. 노량진에서 젊은이들이 얼마나 고생하나. 사회의 에너지가 가장 안전하고 활력이 덜한 곳으로 움직이는데, 이건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다. 정부가 앞장서서 사회의 활력을 파기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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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왜 연금 얘기 안 꺼내나
-복지의 핵심이 연금인데, 정작 연금개혁 얘기는 없다.
△연금은 한 나라 복지의 가장 중요한 기둥이다. (세대간 분배가 필수여서) 사회적 역량이 높아야 제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료 보장, 빈곤 지원보다 더 그렇다. 그런데 한국 국민연금은 끝이 보이는 제도다. 2057년이면 적립금이 고갈된다. 현재 40%의 소득대체율을 위해 모든 세대가 같은 보험료를 내야 한다면 급여의 16~17%다. 그러나 지금은 9%만 내고 있다. 그 결과 적립금이 조기에 바닥나는 것이다. 2057년 이후 젊은이들은 40% 연금을 위해 30% 보험료를 내야 한다.
-존속이 가능한 건가.
△바보가 아닌 이상 30~40년 후 누가 그렇게 많이 내겠나. 존속이 되겠나. 지금 50대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게 정부가 그냥 방치하고 있는 국민연금의 민낯이다.
-‘더 내고 덜 받는’ 연금개혁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매우 어렵다. 그래도 해야 하고, 하는 나라들이 있다. 프랑스가 하고 있지 않나. 정부·여당이 정말 진정성을 갖고 연금개혁을 띄워야 한다. 야당도 같은 자세로 대화해야 한다.
-국민연금 수익률을 높일 수는 없는 건가.
△수익률을 높일 조건 자체가 안 된다. (국민연금 운용 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는 위원 20명 중 6명이 정부이며, 나머지도 친정부 인사들이 많다. 정부 영향력이 너무 세다. 그 대신 금융투자 전문가는 한 명도 없다. 안정성과 수익성의 적절한 배분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치적으로 휘둘릴 여지가 클 것 같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금융의 중심인) 서울이 아니라 전주에 있는 것은 수익률에 도움이 안 된다. 그저 정치적 입김에 따라 결정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국민연금이 정책의 도구처럼 돼 있다.
△(국민들이 부담해서 쌓은) 국민연금이 투자 회사의 경영 개입을 강화하는 것은 짚어볼 문제다.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가진 기업은 300여개다.) 먼저 국민연금이 상장사를 평가할 만한 전문성이 있나 묻고 싶다. 무엇보다 국민연금 지배구조부터 정비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국민연금의 독립성과 전문성 제고가 시급하다. 너무 정치화돼 있다.
◇윤희숙 교수는…
△1970년생 △서울대 경제학과 △서울대 경제학 석사 △미국 컬럼비아대 경제학 박사(공공경제학)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KDI 재정복지정책연구부장 △국민경제자문회의 자문위원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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