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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회계업계에 따르면 작년 말 금융당국으로부터 감사인 지정을 받은 직권지정 기업 635곳 중 절반이 넘는 400여 곳이 중견회계법인으로 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직권지정은 △3년 연속 영업손실 △부채비율 과다 △횡령·배임 발생 △최대주주 3년간 2회 이상 변경 등의 문제가 생겨 일종의 패널티 성격으로 금융당국이 감사인을 지정하는 것이다.
회계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직권지정 기업들에 대해서도 하향 재지정을 허용해주다 보니 이들이 빅4를 벗어나 중견회계법인으로 몰리게 됐다”며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은 기업들의 감사를 맡다 보니 중견회계법인의 감사 리스크가 커지는 모양새가 됐다”고 말했다.
직권지정 기업 입장에서는 중견회계법인이 빅4 회계법인보다 감사비가 약 20%가량 낮은 이유도 있지만, 부담스러운 빅4의 감사를 피하고 싶은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만약 ‘가’군에 속한 빅4 회계법인으로 지정을 받는다면 ‘나’군에 속한 삼덕·대주·신한·한울·우리회계법인이나 ‘다’군에 속한 이촌·성도이현·태성회계법인 등으로 재지정을 요청하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작년 말 감사인 지정제가 도입되면서 기업과 회계법인을 각각 자산총액과 공인회계사수 등에 따라 ‘가~마’군으로 5개로 분류했다.
금융당국은 당초 기업이 상위등급 감사인군으로 요청할 때만 재지정을 허용했다. 하지만 주기적 지정제도가 도입되면서 기업의 부담을 완화해준다는 취지로 작년 말 하향 재지정도 열어줬다. 주기적 지정제는 민간기업이 외부감사인을 6년간 자율선임하면 이후 3년간 증권선물위원회로부터 감사인을 지정받는 것이다.
만약 감사의견 ‘거절’ 등으로 이들 기업에 존폐가 흔들린다면 감사비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게 중견 회계법인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중견회계법인 한 관계자는 “당초 중견회계법인을 중심으로 리스크가 큰 기업만 지정받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다”며 “직권지정 기업일 경우 하향 재지정을 막는 등 제도적 보완을 해달라고 건의했다”고 말했다. 대형회계법인 한 관계자는 “많은 기업들이 중견회계법인으로 재지정 되면서 인력 규모 측면에서 감사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