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하 정의당 의원실에 ‘협박 소포’를 보낸 용의자가 경찰에 체포됐다고 한다. 그 당사자가 진보단체인 서울대학생진보연합 핵심간부라는 사실부터가 충격적이다. 사건의 성격상 당연히 보수단체가 개입됐을 것으로 여겨졌으나 예상과는 정반대로 드러난 것이다. 경찰이 지목한 대로 이 용의자가 해당 소포를 보낸 것이 틀림없다면 보수진영을 헐뜯기 위해 공작을 벌인 셈이다. 과거 독재시절에나 있었을 법한 ‘위장 백색테러’가 지금에 이르러서도 버젓이 자행됐다는 데 대해 우려를 금하기 어렵다.
문제의 소포 자체가 소름을 돋게 만들 만했다. 흉기와 동물 사체를 보내면서 “너는 우리 사정권에 있다”는 메시지로 신변의 위협을 암시한 것이다. 윤 의원을 ‘민주당 2중대 앞잡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런 정도만으로도 영락없는 보수세력의 소행이라고 단정 지을 만한 근거였다. 더구나 ‘태극기 자결단’이라는 명의를 사용한 데서도 보수단체를 연상시키려는 의도가 드러난다. 자칫 누구라도 이러한 술책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점에서 섬뜩하기만 하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사상적으로 상당한 범위의 자유가 허용되고 있다. 집회 및 표현의 자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이 용의자가 소속된 대진연만 해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환영하는 ‘백두칭송위원회’ 결성을 주도한 바 있다. 최근에도 후지TV 서울지국과 미쓰비시 중공업 계열사 앞에서 기습시위를 벌였다고 한다. 이렇듯 일반적인 방법으로 의사 표현이 가능한데도 반대편 진영을 위장한 공작으로 사회적인 물의를 야기했다는 점에서 동정의 여지가 없다. 문희상 국회의장도 사건 직후 “한국 사회와 의회주의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며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대진연 측은 이에 대해 “철저한 조작사건이자 진보·개혁세력에 대한 분열 시도”라고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용의자가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채 편의점에서 택배를 부쳤다는 증거만큼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경찰이 용의자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하니, 앞으로의 진행 과정에서 더 자세한 내용이 밝혀질 것이라 판단된다. 국민들의 관심이 쏠린 만큼 경찰의 명예를 걸고 사실관계를 철저히 규명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