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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승현 이성기 기자] `아침 7시까지 출근할 것.`
전날 밤 문자를 받은 지검 소속 수사관 A씨는 `어디 압수수색을 나가는구나`하고 직감했다. 하지만 어떤 사건인지, 대상은 어디인지 사전 정보는 전혀 없었다. 평소보다 1시간 이상 일찍 나온 A씨는 현장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어떤 사건이며 확보할 타깃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검찰 관계자는 “압수수색의 생명은 보안 유지”라며 “담당 검사 외 수사 관련자들에게도 일절 알려주지 않는다”고 했다.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물증은 수사 초반 성패의 가늠자다. 피의자·참고인 소환 조사는 물론 이후 공소 제기 및 유지의 키 포인트다. 수사기관이 압수수색에 공을 들이고 증거인멸 및 은닉 등의 행위를 엄하게 처벌하는 이유다.
범죄 혐의 수사에 필수 코스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대상에 오른 기업들은 수사 편의를 위한 압수수색으로 경영 타격이 심각하다고 호소하고 법무법인(로펌) 등 변호사업계에선 변호사와 의뢰인 간 비밀 유지가 근본적으로 봉쇄 당할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재계 “무차별 압수수색은 투자 중단 등 경영 타격” 우려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려지는 것처럼 물리력을 동원한 `육탄 방어`는 옛날 얘기다. 압수수색 영장에 기재된 장소에 못 들어가게 막을 경우 공무집행방해가 더해진다. 과거 서류 뭉치에서 휴대폰과 업무용 컴퓨터, 서버 등 압수 대상 대부분이 디지털 증거인 점도 물리적 충돌 현상이 줄어든 배경이다.
통상 압수수색은 영장에 기재된 목록만을 대상으로 하는 게 원칙이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일단 책임자급 인물에게 영장 기재목록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데 실제로는 임의제출 형식으로 받는 경우가 많다”면서 “강제력 행사를 자제한 일종의 신사 협정 형식으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최근 들어서는 디지털 증거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일반 문서와 달리 삭제해도 복구가 가능한 게 최대 장점이다. 특히 온갖 정보가 담긴 휴대전화는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이 될 수 있다. 휴대전화의 경우 범위를 특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물건 자체로 압수한다. 포렌식 절차를 거치면 사건과 직접 관련없는 개인 정보까지 노출되는 게 불가피하다. 피의자 압박용으로 개인 정보를 활용한다는 얘기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업무용 컴퓨터와 서버 등 압수수색은 포렌식 작업(이미징으로 당시 자료 확보)을 하는데 수 일이 걸리기도 한다. 해당 기업에선 이 과정을 계속 참관해야 하기 때문에 업무는 일시 스톱 된다. 특히 장기간의 강제 수사는 경영상 심각한 타격으로 이어진다. 롯데그룹은 지난 2016년 6월10일부터 시작된 132일 간의 수사로 유·무선 커뮤니케이션이 차단되고 전산과 물류 등 각 계열사의 사업흐름에도 차질을 빚었다. 추진 중이던 미국 화학사 액시올(현 웨스트레이크) 인수 무산은 물론 북남미 및 유럽 등 업체들과 추진 중이던 인수·합병도 중단 또는 무기한 지연됐다.
당시 호텔롯데 상장을 통해 마련 예정이던 재원 가운데 1조8000억원 가량을 해외 호텔 및 리조트, 면세업체 인수 등에 투자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호텔롯데 상장이 연기되면서 이 같은 대규모 투자 플랜에도 차질이 생겼다. 한 재계 관계자는 “롯데의 추정 피해액만 3조원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면서 “수사 후유증에서 완전히 회복됐다고 보긴 어렵다”고 전했다.
디지털증거 최소화·사전 정리…法, 무차별 압색 관행에 제동
재계에선 문제의 소지가 될 디지털 증거 생산을 줄이고 사전에 정리하는 등 대처에 나섰다. 고의 분식회계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삼성이 대표적이다. 다른 대기업 역시 디지털 증거가 될 수 있는 자료의 생산을 줄여가는 분위기다. 불필요한 문서 작성 등을 줄이고 전화나 구두로 보고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재계에선 범죄 혐의와 거리가 먼 사전 기선제압이나 수사 편의를 위한 압수수색 관행이 여전하다는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압수수색 소식이 언론을 통해 생중계되는 건 일반인에게 유죄라는 심정을 갖게 하려는 의도 아니겠느냐”며 “임직원 휴대전화 압수에 주력하는데 개인 사생활이 고스란이 담겨 있어 그 자체만으로 공포감이 크다”고 전했다.
최근 법원도 별건 수사 등을 위해 영장 범위를 벗어난 압수수색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 서울고법 형사2부(재판장 차문호)는 최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방위사업체 A사 직원 6명에게 1심처럼 무죄를 선고했다. 국방부 조사본부가 A사의 식사 접대가 있었다는 제보를 바탕으로 수사에 착수, 영장을 발부받아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1780GB 상당의 컴퓨터 저장매체와 업무 서류철까지 압수했다는 이유에서다.
서울고법 관계자는 “수사기관이 대상 혐의와 무관한 컴퓨터 저장장치와 서류철까지 전부 압수한 다음 장기간 보관하면서 이를 활용해 별건 수사에 활용했다”며 “해당 증거는 물론 그 증거에 기초해 수집된 2차 증거도 모두 위법 수집 증거로 증거 능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재판장 이순형) 역시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 1심 선고에서 본류인 채용 비리 혐의가 아닌 선거운동 조력자를 강원랜드 사외이사로 지명하게 한 혐의와 관련해 검찰의 위법수집 증거를 지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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