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성이냐, 편법이냐…바이오, IFRS 해석 놓고 설왕설래

이명철 기자I 2018.05.24 07:03:14

금감원 테마감리 칼날…금융상품·수주산업서 바이오로
명확한 기준 없는 사각지대…자의적 판단이 논란 불씨
“바이오 회계기준 마련보다 이해 제고 과정 선행돼야”

[이데일리 이서윤 기자]
[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올해 들어 유독 바이오 업계 회계 기준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국제회계제도(IFRS)의 자율성 때문이다. 기업들이 원칙만 지키면 된다는 IFRS의 대전제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면서 회계 기준을 위반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는 게 금융당국의 논리다. 기업 입장에서는 원칙에 입각해 자율적으로 처리했던 사안들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발목을 잡고 있다며 항변하고 있다. 건설이나 조선 등 다른 산업처럼 바이오에 대해서도 명확한 회계 처리 기준이 있어야 논란의 소지를 줄일 수 있다는 제언도 나오고 있다.

◇ 왜 하필 바이오? “이제 차례가 온 것 뿐”

바이오 업계의 회계처리가 도마위에 오른 것은 예견된 수순이라는 지적이다. 그동안 회계 처리와 관련해 잡음이 끊이지 않던 분야는 조선과 건설 등 수주산업이다. 장기 공사를 진행하며 수익과 비용이 발생하는 특성상 손실을 감추거나 비자금을 만드는 등 임의적인 조작이 상대적으로 수월했기 때문이다. 단일기업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인 4조원대 분식 회계가 들통 난 대우조선해양(042660)이 대표 사례다.

금감원이 2014년부터 실시한 테마 감리 역시 지난해까지 수주산업을 집중 조명했다. 2014년에는 장기공사계약 수익 인식 등을 회계 이슈로 선정했고 2016년 미청구공사 금액의 적정성, 지난해 수주산업 공시의 적정성 등에 대해 테마 감리를 실시했다. 아니면 신종증권의 지나친 자산화처럼 금융상품 인식이나 회계 처리 분류 오류 등을 잡아내는데 집중했다.

하지만 수주산업의 수익인식 기준 강화 등 회계 기준을 정비함으로써 이 같은 논란은 잦아들고 있다. 한국회계기준원에 따르면 올해 도입된 새 수익기준서(제1115호)는 건설·조선업처럼 진행 기준을 주로 사용하는 기업은 예상 수익을 미리 반영치 않고 실제 생긴 시점에 인식토록 함으로써 회계의 오류를 최소화하도록 했다.

2011년 도입한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는 개정안이 꾸준히 적용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바이오와 직접 연관한 회계 기준은 없는 상황이다. 기업의 자율적 판단이 더 많이 작용할 수 있는 회계 사각지대에 놓였던 셈이다. 올해 주요 테마감리 이슈를 바이오 기업들의 개발비 인식·평가 적정성으로 꼽은 것도 이와 관련한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라는 게 금감원 설명이다.

◇ IFRS 논란 게속…창조적 회계인가 분식인가

IFRS가 기업의 자율적 판단을 존중한다는 면에서 기업과 금융당국의 입장차가 발생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이하 삼성바이오)의 경우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이하 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분류한 회계 처리가 쟁점이다. 삼성바이오는 에피스에 투자한 바이오젠이 주식을 추가로 더 살 수 있는 권리(콜옵션)를 갖고 있기 때문에 콜옵션 사용시 지배력 상실을 가정해 관계사로 분류했다고 한다. 잠재적 가능성까지 감안해 지배력을 잃으면 관계회사로 처리토록 한 IFRS 기준에 따른 조치다. 하지만 금감원은 에피스의 관계사 분류 시점과 콜옵션의 낮은 행사 가능성 등을 감안하면 회계 처리가 고의성을 띄고 있다는 결론을 냈다. 일각에서는 에피스 가치를 크게 부풀림으로써 삼성물산 합병을 용이하게 한 것 아니냐는 의문도 품고 있다.

업계에선 연구개발(R&D)에 들어가는 자금을 재무제표상 비용으로 처리할지, 자산으로 인식할 지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일부 바이오기업들은 개발비 상당 부분을 자산화해 영업손실이 발생하지 않았다. 무형자산은 미래 경제적 효익 창출이 가능한 지 여부를 놓고 결정한다. 효익 창출이 확실하다면 임상 초기 단계여도 자산으로 인식해도 되고 반대라면 개발이 상당부분 진척돼도 비용으로 처리하는 게 일반적이다.

삼성바이오는 개발비 이슈 모두 회계기준이 정한 원칙은 지켰지만 해석 차이에 따라 논란이 발생한 형국이다. 기업은 충실히 회계 처리했다고 항변하지만 금융당국은 고의적으로 기업가치를 부풀리거나 실적 악화를 피했다며 문제 삼았다. 시장에서도 IFRS의 원칙을 적절하게 이용한 ‘창조적 회계’라는 옹호론과 편법을 사용한 ‘분식 회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론이 맞서고 있다.

◇ 바이오用 회계기준 필요할까…“시기상조”

원칙 중심의 IFRS가 지닌 특성상 회계 기준의 모호함이 논란을 키웠다는 의견도 있다. 한 회계법인 대표는 “예전 회계 기준에서는 단순히 OX식으로 나열했기 때문에 기업이나 감사인인 회계사 입장에서는 오히려 더 명확했다”며 “지금 IFRS 기준에서 자율적으로 판단하라고 해서 그렇게 했는데 나중에 분식이라고 하면 논란의 여지가 생기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신약 개발 성공 여부에 따라 가치가 폭등할 수 있는 바이오기업을 단순히 제조업이나 정보기술(IT) 기업과 한 틀에 묶으면 이치에 맞지 않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바이오만의 회계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고개를 들고 있다.

하지만 국제사회가 약속한 회계 기준을 무작정 바꾸기는 쉽지 않은 만큼 우선 협의와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게 회계 업계의 전언이다. 국내 회계기준 제정을 맡고 있는 회계기준원 역시 현재 논란에서는 한 발짝 떨어진 상태다.

회계 기준이 모호하기 보다는 논란이 되는 산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것이 우선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변동성이 큰 바이오산업을 두고 ‘임상 2상 이하는 비용처리, 임상 3상부터 자산 인식’식의 일률적인 회계처리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회계기준에 정통한 한 회계사는 “주식이 다양한 가격에 거래되는 것처럼 기업 가치평가 과정에서 모두가 동의할만한 명확한 기준을 세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무작정 회계 기준을 바꾸거나 모호함을 지적하기보다는 해당 산업을 잘 이해하는 전문가들이 사례를 조사하고 공유해 시장 이해도를 높이고 기업도 회계 처리 기준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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