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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필 때 연기를 내뿜고 달이 뜰 때 연기를 들이마시노라면 담배는 술을 마실 때의 오묘한 맛을 겸비하였고 파란 연기를 태우고 붉은 연기를 피워내노라면 담배는 향을 사를 때의 깊은 멋까지 갖추고 있다.”
◇“담배가 아니면 답답한 속을 풀지 못하고…”
21세기에 접어들면서 한국사회의 변화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상징을 꼽으라면 담배가 빠질 수 없다. 남아메리카 대륙이 원산인 담배는 14세기 대항해시대 유럽으로 전래가 되었으며 국내에는 임진왜란 당시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연초잎을 원료로 한 담배는 조선 중기 이후 한국인들의 일상생활에 가장 밀접하게 스며든 기호식품이었다.
“담배가 아니면 답답한 속을 풀지 못하고 꽉 막힌 심정을 뚫어주지 못한다”며 “담배를 백성들에게 베풀어줌으로써 그 혜택을 함께 하고자 한다”고 말한 이는 다름 아닌 조선 후기의 성군으로 평가받는 정조였다.
봉건왕조가 무너지고 근대 민주공화국이 들어서는 역사의 격동 속에서도 담배는 그 생명력을 유지하며 민초들의 애환과 함께 해왔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담배의 유해성이 공공보건 영역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담배가게 아가씨’에게 구애하던 분위기는 점차 ‘흡연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로 바뀌어가고 있다. 비록 담배는 ‘건강의 적’이란 지탄 받고 있지만 국가 세수 확보의 중요한 품목으로 묵묵하게 자신의 몸을 불태우고 있다.
◇1990년 중반 취향의 탄생과 함께한 ‘에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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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1993년에 가입하려다 실패했던 OECD(선진국 경제개발협력기구)에 마침내 대한민국이 이름을 올렸던 해가 바로 1996년이다. 그리고 국내 기호식품의 역사적인 측면에서도 각별한 해였다. 소위 ‘양담배’의 물량 공세속에서도 국내 담배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KT&G(당시 한국담배인삼공사, 한국담배인삼공사는 2002년 주식회사 케이티앤지로 사명을 변경한다)의 초슬림형 담배 ‘에쎄’(ESSE)가 애연가들에게 선보인 해이기 때문이다.
‘에쎄’는 이탈리아어로 ‘그녀들’을 뜻하는 3인칭 복수 여성 대명사다. 1990년대 중반은 경제 호황과 사회 전반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를 타고 흡연하는 여성에 대한 편견도 사라지기 시작한 무렵이다. 80년대 후반 무렵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비약적으로 높아졌고 사회에 진출하는 여성들이 많아진 것이 동력이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사회 특유의 집단적인 문화도 변화를 맞이한다. 점차 개인의 개성과 취향을 강조하는 젊은이들이 생겨난 것이다. 이때 대중문화에서 논쟁이 불었던 것이 이른바 ‘X세대’론이었다. X세대는 특히 남녀평등에 민감했다. 중성적인 이미지의 여성들이 주목을 받았다. KT&G가 겨냥한 지점은 바로 젊은 흡연 여성들이었다. 1988년 외국 담배가 국내 시장에 들어온 이후 KT&G는 국산 담배의 품질 향상에 전력을 기울이며 ‘디스’ 등의 제품으로 안방 시장을 사수하고 있었다.
그러나 젊은 여성 흡연자들의 취향을 겨냥한 국산 담배는 없었다. 필립모리스에서 1968년 출시한 초슬림 담배 ‘버지니아 슬림’의 인기가 국내에서도 막강했기 때문이다. KT&G는 미국과 유럽에서 여성 흡연자들의 성장세를 보고 국내에서도 여성 흡연자가 늘어날 것이라 예상해 제품 개발에 착수했다. 그 결과 나온 제품이 바로 ‘에쎄’였다. KT&G는 여성 흡연자와 함께 80년대 집단적인 문화에서 벗어나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의 랩을 들으며 청춘을 맞이했던 20~30대 젊은 흡연자들을 ‘에쎄’의 주 타깃 층으로 선정하고 마케팅을 시작했다. 취향을 중요시 하는 젊은이들에게 기존 궐련 담배보다 얇은 ‘에쎄’는 충분히 호응을 얻을 것으로 예상했다.
◇국내 담배 시장 점유율 부동의 1위
‘에쎄’는 2004년부터 국내 담배시장에서 부동의 판매 1위 제품이다. 현재 국내 담배 시장에서 27%의 점유율을 유지하며 국내 초슬림 시장의 약 80%를 점유하고 있다. 하지만 ‘에쎄’는 출시 초반에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흡연자중 다수를 차지하는 남성들은 군대에서 익숙했던 ‘88’과 ‘디스’에 비해 얇은 ‘에쎄’가 담배 본연의 맛을 내지 못한다고 폄하했다.
또 여성 담배라는 인식 탓에 남성들이 기피하기도 했다. 게다가 1997년 연말에 6.25 동란 이후 최대의 국가적 위기였다는 IMF가 터진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보기 어려웠던 대량 정리해고와 명예퇴직이 실시되며 담배의 수요는 높아졌지만 ‘에쎄’는 시장점유율 1%에서 머물렀다. 하지만 ‘에쎄’는 오히려 반전의 계기를 맞이 한다.
IMF로 인해 더 이상 조직의 보호를 받을 수 없음을 깨달은 40대 남성 흡연자들이 자신의 건강을 챙기기 시작하면서 덜 해로운 담배로 ‘에쎄’를 지목했기 때문이다.
눈 앞에 벌어지는 경제위기 속에서 담배 한 개비로 스트레스를 달래던 40대 남성 흡연자들이 대거 ‘애쎄’로 전향을 시작했다. 여성과 젊은 흡연자를 위해 개발했던 ‘에쎄’는 차츰 중장년층 사무직 남성들에게 ‘기존 담배보다는 덜 나쁜 담배’로 인식된다. 여기에 와이셔츠 주머니에 들어가도 티가 나지 않는 ‘에쎄’ 한 갑의 날씬함은 갈수록 호평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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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부터 2004년까지는 건강을 염려하는 소비자들의 니즈를 반영하여 타르 함량을 낮춘 ‘에쎄 라이트(Lights)·원(One)·필드(Field)는 그 신호탄이었다. 2006년에는 대나무 참숯 필터 기술을 적용한 ‘에쎄순’을 출시했고 2007년부터는 프리미엄 이미지를 원하는 애연가를 위해 ‘에쎄 스페셜골드’(ESSE Special Gold), ‘에쎄 골든리프(ESSE Golden Leaf)를 출시해 고가 담배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또한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젊은층을 겨냥해 차별화된 패키지의 ‘에쎄 엣지’(ESSE EDGE)와 ‘에쎄 센스’(ESSE SENSE)를 출시하면서 시장을 선도했다.
◇국산 담배의 ‘적통’ 안방시장을 지키다
2013년도에는 세계 최초로 초슬림 제품에 캡슐을 적용한 브랜드인 ‘에쎄 체인지’(ESSE CHANGE)’를 출시해 기존 40대 위주의 고객층을 20~30대까지 확대했다. 2016년에는 ‘에쎄’ 출시 20주년을 맞아 250여 년 전 정조가 즐겨 피웠던 조선시대 최고급 담뱃잎인 ‘서초’(西草)가 10% 함유된 국내 최고급 프리미엄 담배인 ‘에쎄 로열팰리스(ESSE Royal Palace)’를 출시해 국산 담배의 ‘적통’임을 과시했다.
식품업계에서는 ‘에쎄’가 한국 사회의 변화를 면밀히 파악해 개개인의 입맛에 맞는 제품을 끊임없이 출시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특히 1988년 국내 담배 시장 개방 이후 이른바 ‘글로벌 BIG 3’로 불리는 필립모리스, 브리티쉬 아메리칸 토바코, 재팬 타바고 인터네셔널의 공격적인 영업에도 국내 담배시장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은 데에는 ‘에쎄’의 공이 큰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또한 사회문화적으로 ‘에쎄’는 ‘개인의 취향’이 화두로 떠오르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 시대의 흐름과 맞아 떨어진 대표적인 제품이기도 하다.
한국담배인삼공사 공채 출신 첫 최고경영자에 오른 백복인 KT&G 사장은 “1996년 출시 이후 ‘에쎄’는 지금까지 29종을 출시했다”며 “제품이 아닌 가치를 소비하는 고객들에게 ‘에쎄’만이 제공할 수 있는 독특하고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