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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남태평양’을 떠올리면 아직도 베일에 싸인, ‘죽기 전에 한 번 쯤은…’ 으로 얼버무리고 마는, 심리적으로는 너무나 멀고 먼 곳이다. 하지만 물리적 거리는 비행시간 10시간 정도로 생각보다 멀지 않다. 물론 직항이 있는 곳은 호주, 뉴질랜드를 제외하면, 피지 뿐이라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이 문제다. 일단 피지까지 갈 마음을 먹었다면 그 후에는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그저 마음만 먹으면, 평생 단 한 번도 못 가볼 줄 알았던 곳들을 제주도 가듯 쉽게 갈 수 있다. 그래서 피지를 남태평양의 허브라 부른다.
피지에터 가까운 섬은 통가, 사모아, 바누아투 순 이다. 통가까지는 805km로 항공으로 약 50분, 사모아까지는 1,140 km로 1시간 20분, 그리고 바누아투까지는 1,213 km로, 1시간 40분 정도가 소요된다. 통가는 인구의 99%가 기독교도로, 일요일에는 모든 상점이 문을 닫고, 비행기 조차 띄우지 않을 정도로 신앙심이 깊은 나라다. 아직도 왕이 실질적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왕국이며, 모계사회로, 아이들은 엄마의 성을 따르고 중요한 결정은 여성이 한다. 한 때 남태평양을 평정했던 작지만, 강력한 전사들의 나라기도 하다. 흑등고래 출몰지로 다이버들에게는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하지만 도로에 이정표가 없어 현지인 가이드가 없이 여행하기엔 다소 어려움이 있다. 바누아투는 지금도 폭발 중인 활화산 타나와, 밧줄로 다리를 묶고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오금저린 성인식으로 유명한 곳이다.
◇ 폴리네시안의 심장 ‘사모아’
사모아는 크게 둘로 나뉜다. 보통 사모아라 불리는 곳은 서 사모아(West Samoa)로, 10개 섬으로 이뤄진 독립국이다. 동 사모아(East Samoa)는 미국령이어서 아메리칸 사모아(American Samoa)라 부른다. 같은 인종, 문화, 언어를 쓰는 두 섬이지만, 정치적으로는 다른 나라다. 사모아가 독일, 뉴질랜드 식민지를 거쳐 1962년에 독립을 쟁취한 반면, 아메리칸 사모아는 미국령으로 남는 것을 선택했다. 두 섬 간의 비행거리는 고작 30분이지만, 시차는 24시간이 벌어져 있다. 사모아는 오세아니아 대륙에 속한다. 호주 브리즈번에서 북동쪽으로 약 4000㎞ 떨어져 있다. 날짜변경선에 인접해 있어 지구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이기도 하다. 다른 남태평양 섬들에 비해 적도와 가까워 일조량이 많아 일년 내내 꽃과 풀이 무성하다. 수도 아피아의 팔레올로 공항에 내려 시내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가 걸리는데, 차를 타고 달리다 보면, 수목원이나 정원이라 착각 할 만큼 잘 가꾼 꽃과 나무들이 흐드러진 마을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사모아는 폴리네시아(Polynesia) 문화권이 시작되는 입구로, 폴리네시안의 심장이라는 별명이 있다. 폴리네시아는 하와이·프렌치폴리네시아·뉴질랜드·이스터섬(칠레)을 아우르는 넓은 문화권으로, 폴리네시아인의 특징은 키가 크고, 피부색이 밝으며 직모 또는 약간의 곱슬기가 특징이다. 폴리네시아인 사회는 대부분이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한 피라미드 식 위계구조를 기반으로하며, 공유지와 공동소유 개념을 가지고 있다. 통치자는 마나Mana라고 부르는 영험한 종교적 힘을 갖고 있다고 믿고, 부족사람들은 지도자를 신격화 하며 기꺼히 지배를 받는다. 폴리네시아인들은 주요 생계 활동으로 감자와 빵나무 재배와 같은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폴리네시아인들은 수천 년간에 걸쳐 천천히 태평양 도서에 자리 잡았지만, 일단 정착하고 나서는 그들의 본국과 연락이 끊어져 더 이상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는 특징을 갖는다.
사모아 역시 엄격한 피라미드식 위계질서로 사회가 운영된다. 웬만한 범죄는 부족 안에서 해결하기 때문에, 경찰의 역할이 미미하다. 화합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파 사모아 (Fa’a Samoa)’ 정신 때문에 범죄율 자체가 매우 낮은 이유기도하다. 독일, 뉴질랜드 외에는 바깥 세계와 교역이 많지 않았던 터라 전통문화도 잘 보존돼 있다. 두 번의 식민 경험을 겪었지만, 전쟁을 해본 적이 없어, 남성들만 놓고보면, 통가, 피지에 비해 사모아 남자들은 매우 가정적이고 말도 행동도 부드럽고 상냥한 편이다. 사모아에서는 집안 일을 비롯, 모든 힘들고 어려운 일들은 다 남자들의 몫이다. 아직도 과거에 지열로 음식을 익히던 방식인 우무Umu요리를 자주 해 먹기 때문에, 땅을 파고 돌을 달구는 ‘험한 일’인 요리도 남자들의 몫이다. 식사를 할 때도 어른이 가장 먼저 먹고 상을 물리면 여자와 아이들이 먹는다. 그 후에 남성들이 마지막으로 음식을 먹는다. 물론 어른과 약자를 보호하고 사랑하는 질서에 따른 문화긴 하지만, 남자들은 참 살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남자들을 몇 년 정도 이주 시켜서 고생 좀 해보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가장 저렴하게 여행하는 곳
질서가 잘 잡혀 있고 평온한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이 곳에 여행을 왔다가 이주를 결심하는 사람들도 많이 생겨났다. 특히 예부터 많은 예술가들이 사모아에 각별한 애정을 가졌다. 소설가 서머싯 몸은 타히티를 배경으로 한 소설 ‘달과 6펜스’뿐 아니라 사모아에서 영감을 받아 단편소설 ‘레드’를 썼다. 조슈아 로건 감독은 고전 뮤지컬 ‘남태평양(South Pacific)’의 모티브를 사모아에서 얻었다고 한다. ‘지킬 앤드 하이드’, ‘보물섬’ 저자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생의 마지막 6년을 사모아에서 보냈다.
체류비용도 주변 나라인 피지, 바누아투에 비해 상당히 저렴한 편이다. 프랑스 령인 타히티, 뉴칼레도니아에 비하면 거의 1/10 수준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여행안내서 출판사인 ‘론리플래닛’이 ‘남태평양에서 가장 저렴하게 여행할 수 있는 나라’로 사모아를 선정했다. 사모아 전통가옥인 팔레 Fale(코코넛 잎과 줄기로 지은 오두막집)에 묵으며 시내나 마을에서 음식을 사 먹고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한다면 하루에 30달러로 충분히 여행이 가능해 주머니가 가벼운 배낭여행객에게 특히 인기가 좋다. 물론 에어컨이 딸린 호텔에 묵으며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차를 빌려 돌아다니면 하루에 60달러 정도 든다. 물론 영화에 나오는 남태평양의 분위기에 젖어들고 싶다면 하루에 150달러 정도는 각오해야 하지만 말이다.
사모아에 사는 한국인은 0.5명이다. 변호사이자 사모아 총영사인 제리 브런트Jerry Brunt씨에게 한국인 거주통계가 있는지 물어보니, 본인의 아버지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0.5명인 셈이라고 우스갯 소리를 했다. 몇 번의 시도가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사모아에 정착한 한국사람은 한 명도 없다. 바로 옆에 미국령인 아메리칸 사모아가 있기 때문인데, 사모아가 원양어선 기지였던 한 때, 무려 3천명 이상이 거주를 하기도 했다. 지금은 3백 명 정도의 교민이 있다고 한다. 상식적으로도 미국 령인 나라에 사는 것이 물자, 복지, 사회기반 수준 면에서는 훨씬 편리할 게 분명하다. 하지만, 편리함으로 따지면 굳이 한국을 떠날 필요는 없다. 요즘 같이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라는 소설 제목이 와 닿을 때는 사모아 생각이 간절하다. 한국사람이 없고, 전통과 질서, 무엇보다 상식이 살아있는 있는 청정자연 사모아라. 모험심이 강한 나로서는 사모아의 최초 한국인 거주자로 역사에 기록되고 싶은 욕심도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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