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12일 고려대 산학협력단(김승섭 교수)에 의뢰해 전국 소방직 공무원 8525명(여성 508명)을 대상으로 지난 8~9월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응답한 여성 소방대원 중 51%가 언어폭력, 11.1%가 신체폭력, 19.8%가 성희롱을 일반인으로부터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전체 소방대원의 경우 응답자 37.9%가 언어폭력, 8.2%가 신체폭력, 3.3%가 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남성보다는 여성 소방대원이 일선 현장에서 폭력에 더 많이 노출돼 있는 것이다.
하지만 폭력 신고율은 저조했고 후속조치는 거의 없었다. 신체적 폭력을 당한 소방대원의 18.6%가 소방기관에 보고했고 8.6%만이 후속조치가 이뤄졌다. 언어폭력, 성희롱의 경우 각각 10% 이하만 보고됐고 후속조치는 1% 미만에 불과했다. 특히, 여성 대원의 경우 성희롱을 보고해도 이에 대한 소방기관의 후속조치는 한 건도 없었다.
김승섭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는 “지방의 경우 인맥 관계가 좁기 때문에 지방직 신분인 이들 대원들이 폭력을 당해도 기관 차원에서 엄한 처벌을 요구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면서 “기관의 제대로 된 처벌이 없다 보니 보고율도 낮을 수밖에 없고, 여성 대원의 경우 남성중심의 조직 문화에서 더욱 피해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일반인 폭력에 女 소방 취약..성희롱 신고에 후속조치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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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대원들이 각종 질환을 안고 있지만, 이에 대한 기관 차원의 대책도 유명무실했다. 정부는 소방공무원 보건안전 및 복지기본법에 근거해 소방관대원들을 대상으로 특수건강검진을 시행 중이다. 하지만 대원 91.1%는 ‘특수건강검진을 받아도 기관차원의 후속조치는 없었다’고 답했다.
구조장비, 치료비를 자비로 처리하는 문제도 심각한 수준이다. 응답한 대원 76%가 ‘개인안전 장비가 충분히 보급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33.2%는 ‘최근 3년간 장비 노후화 문제로 개인 안전장비를 자비로 구입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79.1%는 ‘지급되는 개인안전 장비의 품질이 안전을 보장하기에 부적절하다’고 답했다. 이들은 안전장갑(26.1%), 기동화(18.7%), 공기호흡기(12.2%) 순으로 품질개선이 시급하다고 응답했다.
◇안전처·인사처·공무원연금공단 “제도개선 협의”
1일 이상의 요양이나 치료가 필요한 부상을 당한 경험이 있는 소방공무원 1348명 중 173명(12.8%)만 공무상 요양을 신청해 승인 받았다. 이는 부상자 8명 중 1명꼴로만 요양승인을 받았고 나머지 7명은 자비로 치료한 셈이다. 출동 중 교통사고를 당해도 이들 대원 중 10명 중 7명(69.4%)은 병원비를 자비로 부담했다. 소방대원들은 △기관의 행정평가상 불이익(37.8%) △복잡한 신고절차(25.5%) △공무상 요양승인을 신청할 수 있는 부상 기준의 부재(25.0%) 등의 이유로 공무상 요양승인신청서조차 내지 못했다.
김 교수는 “소방공무원 전체를 아우르는 특별법 형태의 근로기준법 제정이나 복지기본법 개정이 필요하다”며 “공무상 요양을 신청할 경우 불이익 처우가 가해지는 것을 금지하는 제도도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권위는 이 같은 실태 보고서를 토대로 국민안전처(안전처) 등 관계부처에 개선사항을 통보하고 90일 이내에 개선여부를 재확인할 계획이다. 안전처, 인사혁신처, 공무원연금공단은 이달까지 소방 공무원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하고 제도개선 방안을 협의할 계획이다.
윤순중 안전처 소방정책국장은 “소방특별법 등 법 제정 부분은 부처 내부에서 논의된 적은 없어서 인권위와 협의가 필요하다”며 “인사처, 공무원연금공단과는 공상을 인정받는 범위를 현재보다 확대하는 방향으로 논의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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