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안혜신 기자] 준정부기관인 예금보험공사와 산하 정리금융공사 출신 임직원 6명이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유령법인)를 설립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예보의 페이퍼컴퍼니 설립에 대해 금융위 등 감독기관 역시 전혀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인터넷 언론 뉴스타파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는 15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세피난처인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유근우 전 예보직원을 비롯해 진대권, 김기돈, 조정호, 채후영, 허용 등 정리금융공사 전직원 6명을 추가로 공개했다. 이들 중 김기돈씨는 정리금융공사의 사장까지 역임했던 인물이다.
이에 따르면 예보 직원이었던 유근우씨와 정리금융공사 직원이었던 진대권, 김기돈, 조정호, 채후영 씨 등은 지난 1999년에 버진아일랜드에 ‘썬아트파이낸스(SUNART FINANCE LIMITED)’와 ‘트랙빌라홀딩스(TRACKVILLA HOLDINGS LIMITED)’라는 이름의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들이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시기다. 1999년은 국내 IMF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시기이기 때문. 게다가 이들 중 일부가 당시 부실 금융기관으로 퇴출된 삼양종금과 동화은행 출신 인사였다.
이에 대해 예보는 “페이퍼컴퍼니 설립은 내부 절차에 따라 적법하게 진행됐다”면서 “부실 금융기관으로 퇴출된 삼양종금의 해외자산을 회수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해명했다. 이를 통해 2000만달러 이상의 공적 자금을 회수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뉴스타파 측은 페이퍼컴퍼니 설립자의 명의가 예보가 아닌 개인 직원 명의라는 점에 의문을 표했다. 또 이러한 페이퍼컴퍼니 운영 전반 내역은 금융위나 국회에도 보고되지 않고, 철저히 비공개로 운영됐다. 뿐만 아니라 예보는 페이퍼컴퍼니 운용과 관련 기록을 제대로 제시하지도 못하고 있다.
뉴스타파 측은 “예보의 페이퍼컴퍼니 운영 사실은 십년이 넘도록 감독기관이나 국회에 제대로 보고되지 않았고, 관련 기록이 얼마나 보관되고 있는지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한편 뉴스타파는 이날부터 ICIJ와 함께 조세피난처 프로젝트를 크라우드 소싱(대중의 지식과 정보를 모아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는 시민참여 방식)으로 전환키로 했다.
이에 따라 ICIJ는 이날 한국시간 오전 11시부터 버진아일랜드 등 10개 조세피난처에 설립된 10만여개의 페이퍼컴퍼니 관련 정보를 세계 모든 사람이 접근해 검색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 데이터페이스 시스템을 개발해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뉴스타파 역시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들 때 한국 주소를 기재한 150여 명의 한국인과 외국인, 기업의 목록, 정보를 담은 데이터베이스를 뉴스타파 웹사이트에 게시했다. 여기에는 페이퍼컴퍼니 설립관련 서류에 기재된 영문이름과 한글로 변환한 이름, 이들이 만든 페이퍼컴퍼니 이름, 한국주소, 신원이 확인된 경우 직업 등 인적사항 등의 정보가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