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 시게루 일본 자민당 총재가 어제 임시 의회에서 제102대 총리로 선출됨에 따라 이시바 정권이 출범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사상 최악으로 내몰렸던 한일 관계가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의 상호 노력을 바탕으로 셔틀 외교 복원 등 정상 국면으로 되돌려진 후 1년여 만에 맞은 큰 변화다.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결선 투표에서 패한 극우 성향의 다카이치 사나에보다 이시바 총리가 온건하고 한일 관계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현재와 같은 훈풍 기조가 점쳐진다.
많은 외교 전문가와 학자들이 전망하는 한일 관계의 큰 틀은 낙관에 가깝다. “이시바 정권은 제 2차 기시다 정권과 같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총재 결선에서 기시다 진영의 도움으로 당선된 데다 기시다 정권에서 핵심 요직을 지낸 인물들을 유임시킨 사실이 근거라는 것이다. 안보 ‘오타쿠’(골수 마니아)로 불릴 정도로 안보 문제를 중시하는 이시바로선 한국과 안보 면에서 협력해야 할 필요성을 잘 알고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죄해야 마땅하다고 했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라는 점에서 한국과의 케미가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낳게 한다.
하지만 과잉 기대는 금물이다. 조그만 사건, 사고와 정치인들의 망언 한마디로도 엉뚱한 방향으로 흐른 적이 적지 않았던 한일 관계의 궤적에 비춰 볼 때 지나친 낙관은 해가 될 수 있다. 과거사 문제가 특히 그렇다. 일각에서는 “이시바 총리 역시 한국 법원의 징용공 배상 판결을 국제법(청구권 협정)위반으로 인식하고 있어 기존 일본 정부의 자세와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안보 부문의 긴밀한 협력이 중요하다 해도 과거사 문제의 급격한 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분석이다.
기시다 전 총리는 고별 방한에서 “다음 총리가 누가 되든 한일 관계 중요성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시바 총리는 총재 결선 투표에서 “기시다 전 총리가 3년간 이룬 외교 공적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두 총리의 말대로 내년 한일 수교 60주년을 앞두고 일본이 더욱 전향적 행보와 열린 마음으로 우호와 협력의 신시대를 열어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