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자본시장을 한바탕 휩쓴 해외 부동산 펀드 손실 소식에 개인 투자자뿐만 아니라 국내 기관투자가들도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지난해 말부터 선진국 우량자산에 채무불이행(디폴트) 우려가 커지면서 해외 부동산 시장 곳곳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이 됐기 때문이다.
최근 만난 A 공제회 최고투자책임자(CIO)도 해외 부동산 시장 동향을 분석한 보고서를 사무실 책상에 가득 펼쳐놓고 각 부서 팀장들에게 자산 현황을 보고받기 바빴다. 올해 유럽에 있는 건물들을 매각해야 하는데, 시장 상황이 안 좋다 보니 쉽게 팔리지 않을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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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금융사들이 투자한 해외 부동산 펀드에 무더기 손실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지난해부터 미국을 비롯해 주요국의 고강도 통화 긴축으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기한이익상실(EOD)이 발생하거나 펀드 청산이 어려워지는 일들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가 활성화하면서 오피스 빌딩의 공실률이 치솟는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지난 18일 미래에셋그룹 계열사 멀티에셋자산운용은 지난 2019년 홍콩 골딘파이낸셜글로벌센터(GFGC)빌딩 대출을 위해 조성한 펀드 자산을 90% 수준에서 상각 처리하기로 하고 투자자들에게 알렸다. 손실 규모가 아직 완전히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자산 가치가 하락했을 것으로 간주하고 회계상 손실로 처리한다는 의미다. 총 2800억원 규모로 조성된 이 펀드는 미래에셋증권의 자체 투자금 300억원과 증권·보험사의 자기 자금, 운용사들의 사모펀드 자금 등이 들어갔다.
이지스자산운용도 독일 프랑크푸르트 트리아논 오피스 빌딩에 대해 임의매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주요 임차인인 데카방크의 임대차 계약이 내년 6월에 끝나는데, 데카방크가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하면서 대규모 공실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이지스운용 측은 “(메자닌 대출 등 리파이낸싱에 관심을 표한) 5개 잠재 대주 중 추가 논의를 이어가는 일부 대주는 약정의 필수적 전제 조건으로 본건 자산 소유주의 자본금 추가 납부를 요청하고 있다”며 “고유자금 투입 관련 검토와 국내 기관투자자와의 협의를 통해 추가 자본금 마련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 출장에 공실률 점검 등 방법 총동원
저금리 시기에는 국내 증권사들이 자기자본과 대출로 해외 부동산을 사들인 뒤 국내 기관투자가들에게 재매각(셀다운)하면서 수익을 챙겼다. 당시에는 선진국 우량 오피스들이 안정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는 투자처였지만, 이제는 금리가 오르고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면서 애물단지로 전락하게 됐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7일 기준 해외부동산 펀드 순자산 총액은 77조7035억원으로 지난 2019년 말 55조5435억원 대비 약 40% 증가했다. 금융감독원은 해외 부동산 펀드의 연이은 손실 사태와 증권사들의 투자 현황을 우려해 지난 20일 해외 대체투자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관련 증권사 임원들을 불러 모아 리스크 관리를 당부하기도 했다.
이미 국내 연기금과 공제회 등 기관투자가들은 지난해 코로나19가 한풀 꺾인 이후 해외출장에 열을 올리며 부동산 시장 동향을 파악하고 있다. 특히 행정공제회와 신협중앙회 등은 거의 매달 실무진들이 미국과 유럽 등지로 출장을 다니며 현장실사에 집중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기관들도 운용사를 통해 자산 공실률을 꾸준히 확인하면서 유동성 리스크를 점검하는 일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한 공제회 관계자는 “저금리 시대에 중위험·중수익으로 불린 자산들이 지금은 중위험·저수익이고, 어떻게 처리하지도 못하는 골치 아픈 자산들이 됐다”며 “올해 대출 만기가 돌아오는 자산들이 많아서 리스크 관리를 강화했는데, 이미 가격이 20~30% 빠진 상태라서 셀다운이 될지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