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여가부의 ‘아이돌 검열’ 지침 황당하다

논설 위원I 2019.02.20 06:00:00
정부가 ‘아이돌 출연규제’ 지침을 내려 논란이 일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최근 방송사 등에 배포한 ‘성 평등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에서 “음악방송 출연자들의 외모 획일성이 심각하다”며 사실상 아이돌 그룹의 출연 횟수를 줄이도록 지침을 내렸다. 이에 “성 평등과 아이돌 외모가 무슨 관계냐”라는 비판과 함께 과거 독재시대의 장발 단속과 다를 바 없는 시대착오적 과잉 규제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여가부는 “방송의 과도한 외모 지상주의가 불러오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 경각심을 갖자는 취지”라며 규제나 통제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물론 이런 지적이 아니라도 중·고생과 초등학생들까지 외모에 신경을 써야 할 만큼 우리 사회의 외모 지상주의 풍조는 심각하다. 여기에는 매일같이 방송에서 예쁘고 날씬한 아이돌 그룹을 보고 자란 영향이 크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폐해의 심각성을 감안할 때 외모 지상주의는 당연히 개선해야 할 사회적 과제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선호를 반영한 방송 프로그램을 통제해 이런 풍조를 고치겠다는 발상은 납득하기 어렵다. ‘외모의 다양성’을 이유로 아이돌의 방송출연을 규제하겠다는 것은 황당하기만 하다. 오죽하면 정치권에서 “진선미 여가부 장관은 여자 전두환이냐”라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다. 실효성 없는 규제 행정의 전형일 뿐이다.

정부는 지난해에도 폭식이 국민 건강을 해치고 비만의 원인이 될 수 있다며 ‘먹방(음식을 먹는 방송)’을 규제하겠다고 나섰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자율을 무시하고 국가가 국민 생활을 간섭하려 했기 때문이다. 최근 방송통신위원회의 해외 성인·도박 사이트 접속 차단이 검열 논란을 빚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외모 검열’까지 하겠다고 나서니 딱한 노릇이다.

아무리 취지가 좋다고 해도 국가의 국민생활 개입은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비만이나 성인사이트 접속, 외모 관리 등은 개개인의 주관적 취향이지 획일적 잣대로 재단할 사안이 아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국가가 경제·사회 정책, 심지어 국민의 일상까지 간섭하려는 것은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전체주의적 발상이다. 여가부는 당장 관련 지침을 철회하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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