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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감 시대, 외고·자사고 폐지 가속도…진통 불가피

신하영 기자I 2018.06.15 05:00:00

박근혜 정부 땐 진보교육감 대거 당선돼도 ‘지지부진’
文정부 ‘고교 개편’ 국정과제로…“4년 전과 다르다”
외고·자사고 우선선발 폐지로 힘 뺀 뒤 일반고 전환
조희연 ‘완전추첨’ 교육부령 개정사항 “당장은 불가”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당선인이 14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탑에서 참배 후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신하영·김소연 기자] 13일 치러진 전국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성향 후보가 대거 당선되면서 외국어고·국제고·자율형사립고(자사고) 폐지 정책에 가속이 붙을 전망이다. 자사고 지정 취소권한을 두고 교육청과 교육부가 갈등했던 박근혜 정부 때와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평가다.

하지만 외고·자사고 폐지 정책에 격렬하게 반발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아 진통은 불가피해 보인다. 진보교육감들은 외고·자사고·일반고로 서열화된 고교 체제를 개편하지 않는 한 공교육 정상화가 어렵다고 보고 있다. 반면 외고·자사고 측은 학생 선택권 보장과 수월성 교육을 위해 학교 운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14일 조희연 서울교육감 당선자는 기자회견에서 “공정한 교육 기회를 보장하고 고교 서열화를 해소하기 위해 외고와 자사고는 일반고로 전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희연 1기에 이어 2기에서도 재임 4년간 외고·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을 강하게 밀어붙이겠다는 의미다.

교육부에 따르면 자사고(43)·외고(31)·국제고(7)는 전국에 81개교가 운영 중이다. 외고나 국제고는 서울·부산·인천·경기 등에 분산돼 있지만 자사고의 경우 43곳 중 23곳이 서울에 집중해 있다. 서울에서 자사고·외고 폐지 정책이 성공하느냐에 따라 파급력이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희연 당선자를 비롯해 도성훈(인천)·이재정(경기)·김지철(충남)·김승환(전북) 등 다른 진보교육감 당선자들도 고교 서열화 해소를 위해 외고·자사고 폐지를 추진할 방침이다.

◇ 외고·자사고 폐지 실현 가능성 높아

외고·자사고 폐지 정책을 둘러싼 논란은 전임 박근혜 정부 때부터 불거졌다. 2014년 교육감선거에서도 전국적으로 13명의 진보교육감이 당선되면서 고교체제 개편을 추진했지만 중앙정부와의 마찰로 갈등만 커졌다.

서울의 경우 자사고 운영성과 평가를 통해 점수가 낮은 자사고의 ‘지정 취소’를 추진했지만 취소권한을 두고 교육청과 교육부가 충돌했다. 조희연 교육감 재직 4년간 일반고로 전환한 자사고는 2곳(우신고, 미림여고)에 불과하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첫 교육감선거에서 진보교육감이 압승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외고·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을 골자로 하는 ‘고교체제 개편’이 국정과제에 포함되면서 교육부 입장도 선회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외고·국제고·자사고의 ‘우선 선발권’을 폐지했다. 올해 치러지는 2019학년도 고입부터 외고·국제고·자사고도 일반고와 동일하게 후기 모집으로 신입생을 선발해야 한다. 현 중3 학생들은 자사고·외고·국제고에 지원하려면 불합격 시 원치 않는 일반고에 강제 배정될 수 있음을 각오해야 한다.

교육부 관계자는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은 동시 입학전형과 재지정 평가 등 2단계로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고와 모집 시기를 동일하게 조정, 외고·국제고·자사고의 힘(우선 선발권)을 뺀 뒤 운영성과 평가를 통해 목적과 달리 운영된 학교는 재지정을 취소할 방침이다. 자사고·외고·국제고 중 설립목적과 달리 ‘입시 대비’에 초점을 맞춘 학교가 많아 엄격한 평가기준을 들이댈 경우 일반고로 전환되는 학교가 상당수 나올 전망이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최근 들어 수월성 교육이 힘이 빠졌다”며 “보수 성향의 교육감이 있다면 이를 막아줄 텐데 진보교육감이 대거 당선되면서 자사고·외고 폐지는 탄력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외고·자사고 완전추첨제 당장 추진은 어려워

다만 조희연 교육감이 추진하는 외고·자사고 ‘완전추첨제’의 경우 당장은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 완전 추첨제란 외고·자사고의 학생 선발권(내신+면접)을 없애고 합격자를 추첨으로만 뽑는 방식이다. 외고·자사고가 일반고와 같은 시기에 신입생을 모집하고, 선발 방식도 추첨으로 변경되면 사실상 일반고로 전환한 것과 같게 된다.

하지만 교육부령인 초중등교육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외고·자사고의 입학전형은 학교장 권한이다. 서울시교육청이 완전추첨제를 밀어붙일 경우 월권행위가 될 수 있다. 교육청 관계자는 “지난 1월 완전추첨제 도입을 검토한 결과 교육감이 입학전형방법으로 완전추첨제를 강제하면 학교장 권한을 침해하는 월권행위가 될 수 있다는 법률 자문을 받았다”며 “시행규칙 개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교육부는 이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서울교육청의 완전추첨제에 대해서는 아직 검토하지 않고 있다”며 시행규칙 개정에 대한 협조 요청이 들어오면 검토는 해보겠지만, 일단은 교육부 방침대로 외고·국제고·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 ‘지정 취소’ 위기 외고·자사고 반발 예고

교육감이 외고·국제고·자사고의 재지정 취소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부분은 5년 주기로 받게 돼 있는 운영성과 평가다. 서울의 경우 내년에 자사고 13곳에 대한 평가가 예정돼 있다. 하지만 2014년의 경우처럼 재지정 취소 위기에 놓이게 될 자사고·외고·국제고의 격렬한 반대가 예상된다.

앞서 최명재 민족사관고 이사장, 홍성대 상산고 이사장, 오연천 현대청운고 이사장 등 전국단위 자사고 이사장들과 학부모 등 9명은 지난 2월 28일 헌법소원을 제기한 바 있다.

오세목 서울자율형사립고연합회장(중동고 교장)은 “국가의 약속을 믿고 법령에 근거해 자사고를 운영·투자를 해왔는데, 합의나 동의 과정 없이 일반고로 전환해야 하는 것은 억울하다”고 지적했다.

서울소재 대학의 한 교육학과 교수도 “자사고를 보낸 학부모들을 만나보면 일반고 전환에 결사반대하는 등 반발이 심각하다”며 “정부나 교육청이 외고·자사고 폐지를 밀어붙일 경우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전국 자사고·외고·국제고 현황(자료: 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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