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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재건축 단지 ‘세금폭탄’ 우려
신탁 방식 재건축은 주민들이 구분소유자 75% 이상의 동의를 받고 전체 토지면적의 3분의 1 이상의 아파트 소유권을 신탁사에 위임하는 사업이다. 신탁사가 사업시행자로서 사업비 조달에서부터 분양까지 재건축 사업 전반을 대행한다. 지난해 3월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 개정으로 신탁사가 재개발·재건축사업의 단독 시행사로 참여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처음 도입됐다.
신탁 방식으로 재건축사업을 진행하면 추진위 구성과 조합인가 단계를 생략할 수 있어 정비사업 기간을 최대 1~2년이나 앞당길 수 있다.
하지만 서울시가 지난달 아파트지구 총 18곳 중 압구정·반포·서초·여의도 등 4곳을 지구단위계획으로 묶어 통합 개발·관리하는 사업을 추진하면서 신탁 방식을 택한 재건축 주요 단지들의 정비사업 일정이 늦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지구단위계획은 하나의 아파트 단지만이 아닌 보다 큰 그림에서 도시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난개발을 막고 도시를 보다 체계적으로 개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교통·기반시설 등 그만큼 고려해야할 부분이 많아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도 있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여의도다. 여의도 아파트지구는 총 11개 단지(6323가구)로 이뤄져 있다. 이 중 신탁 방식 재건축사업을 추진 중인 단지는 시범(1790가구·한국자산신탁), 공작(373가구·KB부동산신탁), 수정아파트(329가구·한국자산신탁) 등이다. 광장아파트(744가구)는 다음달 3일 신탁 방식 재건축사업에 대한 주민 찬반 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다.
재건축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아파트값도 주춤하다. 여의도 시범아파트 전용면적 118㎡형은 올해 초 시세가 11억5000만원에 형성된 이후 4월까지 12억원으로 5000만원 가량 올랐다. 하지만 지난달 서울시의 지구단위계획 추진 방침을 발표한 이후 아파트값이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인근 G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사업 지연으로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적용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매입 문의도 줄고 거래도 뚝 끊겼다”고 말했다.
신탁 방식 재건축의 열기가 퍼진 강남권 단지들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현재 강남에선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2차(1572가구)와 서초구 반포동 신반포 궁전아파트(108가구) 등이 신탁 방식의 재건축 사업을 추진 중이다. 신반포2차 전용 92㎡형은 매매 시세가 15억원으로 연초 대비 8000만원 이상 뛰었지만 4월 중순 이후로는 상승세가 멈췄다.
◇신탁 계약시 해지 어려워…“계약시 수수료 등 잘 따져야”
정비사업 일정을 앞당기기 위해 신탁 방식 재건축을 고려하고 있는 단지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아직까지 신탁 방식 재건축에 대한 표준화된 기준이 없어 주민 동의율을 달성하는 첫 단계를 통과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서울시의 아파트지구 지정에 주민들의 반대의 목소리가 높아질 수 있어서다.
지난 2월 추진위가 한국자산신탁과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양해각서를 체결한 강동구 명일동 삼익그린맨션2차(2400가구)의 경우 구청으로부터 주민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보완돼야 한다는 권고를 받고 양해각서를 해지, 지난 3월 다시 현장설명회를 열었다. 이 단지는 다음달 10일 주민투표를 통해 신탁사 선정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재건축 사업을 진행하던 중 문제가 생기는 경우에도 신탁계약을 해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 토지신탁계약서 21조는 이해관계인 전원의 동의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수탁사의 귀책사유 없이 신탁계약을 해제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어서다.
강정규 동의대 재무부동산학과 교수는 “서울시 아파트지구 지정 이후 신탁 방식 재건축을 추진하는 단지는 향후 추가부담금 등에 신탁 수수료까지 고려해도 수익을 낼 수 있을 지를 잘 따져봐야 한다”며 “사업성이 있는 정비사업 단지에는 굳이 신탁사를 끼지 않고 재건축을 추진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