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재호 기자] 고(高)수익 투자에 목마른 개인투자자들의 자금이 비우량 회사채로 몰리고 있다. 증권사들도 미매각 된 비우량 회사채 물량을 적극적으로 내다 팔며 투자 수요에 화답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미국 기준금리 인상 등으로 향후 시장금리가 상승할 우려가 있는데다 발행사 신용등급이 더 떨어질 경우 손실을 볼 수 있어 신중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저금리 시대, 4.9% 이율의 치명적 매력
2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증권사 영업점을 통해 소매로 판매되는 비우량 회사채 물량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올들어서만 벌써 두 차례에 걸쳐 발행된 대한항공 회사채 4000억원 가운데 미매각 된 1600억원을 개인들이 사갔다. 2월 발행한 회사채(1500억원)의 경우 한국신용평가로부터 `A-` 등급을 받았고 한국기업평가와 나이스신용평가는 `BBB+` 등급을 줬다. 지난 14일 추가로 발행한 회사채(2500억원) 등급은 `BBB+`였다.
`BBB+`는 올해 발행된 회사채 가운데 가장 낮은 등급이지만 일선 영업점에서는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인수주관사 중 한 곳인 NH투자증권 관계자는 “별도의 프로모션 없이도 발행 당일에 전량 판매가 완료됐다”고 귀뜸했다. 인기 비결은 높은 이자율이었다. 2월 발행분에는 4.80% 이자가 붙었고 이달 발행분은 4.90%로 더 높았다. 은행 정기예금 최고금리인 1.8%보다 3배 가까이나 높은 수준이다. 만기도 2년으로 예·적금 상품과 비슷하다. 대한항공 회사채에 투자한 한 개인투자자는 “2년이라는 짧은 만기에 금리도 비교적 높아 수익률 측면에서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현대비앤지스틸과 한솔홀딩스, AJ렌터카, 크라운제과 등이 발행한 A- 등급 회사채 중에서도 300억원 정도가 개인에게 판매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회사채의 이자율은 2%대 중반에서 3%대 초반에 형성돼 있다. 회사채는 아니지만 아시아나항공이 항공권 매출채권이나 신용카드 마일리지 판매대금 등을 담보로 발행하는 자산유동화증권(ABS)에 대한 호응도 높다. 신용등급이 `BBB`인 아시아나항공은 회사채 발행이 어려워 ABS로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다. 지난달 발행된 4050억원 규모의 `A-` 등급 ABS 중 상당량이 증권사를 통해 소매로 판매됐다. 최고 이자율은 5.471%에 달한다. 현대증권 관계자는 “판매할 때 중위험 상품이라는 점을 고지하고 있지만 개인투자자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라며 “저금리가 장기화하고 증시도 박스권에 머물고 있어 리스크를 떠안고라도 수익을 챙기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美금리인상·업황부진 등 리스크 살펴야
개인들이 비우량 회사채를 찾는 또 다른 이유는 해당 기업의 부도 가능성을 낮게 보기 때문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각각 한진그룹과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주요 계열사이며 현대비앤지스틸은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이다. 모기업이 국내 굴지의 그룹사인 만큼 채무 불이행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그러나 낮은 신용등급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업황 악화로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는데다 원·달러 환율 상승에 따른 환위험도 높다. `A-` 등급 회사채를 발행한 기업들이 영위하는 제지·철강·렌터카사업 등도 경쟁 심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제로 대한항공 회사채의 경우 2월분 수요예측 결과 청약률은 8% 수준이었고 이달 발행한 물량은 3%에 그쳤다. 지난 19일 진행된 한솔홀딩스 회사채 청약률도 15%로 집계됐다. 기관투자가들은 이들 회사채를 철저히 외면했다.
미국에서 지난해 12월에 이어 또다시 기준금리 인상이 가시화하고 있는 것도 부담스럽다. 금리 인상 국면에 진입할 경우 회사채 금리가 뛰고 국고채와의 스프레드(=금리 차이)도 벌어질 수 밖에 없다. 증권사들은 이런 위험 요인을 인지하면서도 비우량 회사채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평균 0.3% 수준인 발행수수료와 더불어 개인에게 판매하는 과정에서 금리를 조정해 이중으로 마진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판매 확대를 위해 무리수를 두는 모습까지 포착되고 있다. 대한항공 회사채의 부채비율 한도는 기존 1000%에서 1500%로 상향 조정됐다. 지난해 일시적으로 1000%를 넘었던 점을 감안해 원리금 즉시 변제 위험을 피하려고 한도를 높인 것이다. 한 신용평가사 연구원은 “미국 금리 인상이 국내 채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신용도가 낮은 기업은 산업내 과당 경쟁으로 현금흐름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다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며 “비우량 회사채가 투자 대안으로 관심을 끌고 있지만 투자 결정과정에서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