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나온 암탉"…원작의 변주는 계속된다

김미경 기자I 2015.02.02 06:42:10

황선미 밀리언셀러 '마당을 나온 암탉'
연극·애니 이어 뮤지컬까지
탄탄한 원작 기반…끊임없는 영역 확대
"편식 심한 공연계 새 시너지 줄 것"

(맨 위쪽 시계방향으로)황선미 작가의 베스트셀러 소설 ‘마당을 나온 암탉’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한 장면. 폐계가 된 주이공 ‘잎싹’이 양계장에서 알을 품고 어미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그리는 장면이다. 2011년 제작된 애니메이션 모습, 2000년 출간된 책 표지(사진=이다엔터테인먼트).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셰익스피어가 그랬고 J K 롤링의 ‘해리포터’도 마찬가지다. 탄탄한 원작은 다양한 장르의 작품으로 재탄생하게 마련이다. 황선미 작가의 밀리언셀러 소설 ‘마당을 나온 암탉’(오는 3월 1일까지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이 이번엔 뮤지컬로 옮겨졌다. 2002년 연극, 2011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이후 4년 만이다. 국내서 창작한 원작이 연극, 애니메이션, 뮤지컬까지 확대된 건 드문 사례. 토종 콘텐츠의 ‘원소스 멀티유즈’의 파워를 증명한 셈이다.

원작은 2000년 출간, 150만부의 판매고를 올리며 지금까지도 꾸준히 읽히고 있다. 해외 25개국에 팔려 나가며 같은 해 12월엔 성인용으로도 출판됐다. 이번 뮤지컬 제작에는 연극으로 이미 선보인 바 있는 극단 민들레의 송인현 연출이 각색과 연출을 맡아 재도전했다. 뮤지컬 ‘해를 품은 달’ ‘그날들’, 연극 ‘모범생들’ ‘환상동화’ 등을 통해 안정적인 제작 노하우를 선보였던 ‘이다엔터테인먼트’가 공동 제작했다.

◇‘암탉’ 어떻게 진화해 왔나

뮤지컬로 변주된 (밥) 먹고 (알) 낳는 게 일인 양계장 암탉 ‘잎싹’의 이야기는 15년 전 원작과 다르지 않다. 폐계가 된 잎싹이 알을 품어 자신의 아기를 보고 싶다는 소망을 스스로 이뤄나가는 과정이다. 동물을 통한 진한 모성애와 성장담을 다룬 듯싶지만 ‘나는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주체적 삶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성장동화다 .

뮤지컬 ‘마당을 나온 암탉’의 한 장면(사진=이다엔터테인먼트).
다만 접근법이 달라졌다. 송 연출은 “그동안 물체극, 오브제극, 테이블극 등 다양한 연극화로 ‘암탉’을 요리했지만 항상 부족함을 느꼈다”며 “좀더 큰 극장에서 많은 관객이 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뮤지컬 화법을 택했다”고 말했다. 때문에 이번 작품에서 중점을 둔 건 음악이다. 뮤지컬 ‘빨래’ ‘영웅’ ‘캣츠’ 등을 작업해 온 박미향 음악감독이 의기투합해 동물의 캐릭터에 맞게 넘버를 꾸몄다. 귀에 착착 달라붙도록 멜로디 역시 단순하게 구성했다.

송 연출은 “공들인 넘버 곡 중 하나는 ‘나그네’다. 중년의 날개가 꺾였지만 꿈을 갖고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원작에는 없지만 ‘잎싹’이 아기를 처음 낳고 아기에게 불러주는 노래에도 신경을 썼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어른이 봐도 유치하지 않다. 잎싹이 품은 알이 깨어나올 때는 울컥하기까지 하다. 암탉뿐 아니라 늙은 개, 족제비, 청둥오리 등 동물을 통해 비유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성찰은 일품이다. 설명적 장치는 없앴다. 대신 의상과 무대, 음악 등을 통해 전통색감과 형태미를 더하며 한국적 정서를 끌어냈다.

애니메이션은 무려 6년 동안 공들여 제작했다. 그 결과 220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애니메이션의 신기록까지 세웠다. 1년간 기획과 캐릭터 개발, 2년간 시나리오 개발 및 프로덕션 등 후반 작업을 거쳤다. 투입한 스태프만도 120명. 그려낸 원화도 12만장이 넘는다.

연극은 초연 당시 객석 점유율 120%를 기록하며 꾸준히 감동을 선사해왔다. 동물군상이 밀도 있게 인간과 대비돼 잘 드러나 호평을 받았다. 그동안 물체극, 테이블,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형식의 오브제 연극으로 재공연되면서 원작 ‘암탉’은 그렇게 진화해 왔다.

◇스토리 탄탄하면 세월 거스른다

50대를 넘긴 한 아주머니에겐 ‘모성애’로 읽힐 수 있다. 또 중년 남성은 가장의 무게를 떠올릴 수도, 어린아이는 작은 소망을 바라볼 수도 있다. 송 연출은 이것이 15년에 걸쳐 ‘마당을 나온 암탉’이 변주될 수 있었던 힘이라고 말한다. 그는 “조리하고 볶아도 보고, 튀겨도 보지만 원 자료의 맛은 바뀌지 않는다”며 “들여다보면 한없이 펼쳐지는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 그것이 마당을 나온 암탉의 힘이다”라고 강조했다.

공연계 관계자는 “다 알려진 스토리 등이 식상하지 않도록 색다른 포장이 필요하다”며 “영역이 다른 문화 소비자를 겨냥하는 기획력 등을 고르게 갖춰야 성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같은 변주는 문화 편식이 심한 국내공연계에서도 장르 간 시너지를 고르게 낼 수 있는 적절한 사례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송 연출은 “셰익스피어가 여러 사람을 통해 난도질당하는 것처럼 ‘마당을 나온 암탉’이 고전이 안 될 이유는 없다”며 “혁명이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행복한 아이들에서 출발한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그 힘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마지막 장면. 잎싹이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날으는’ 소망을 이루는 장면을 그렸다(사진=이다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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