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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레으리잇고’ ‘약속을 지키으리’ ‘아메으리카노’. 길거리나 TV 속에서나 ‘의리’가 넘쳐난다. 닷새 앞으로 다가온 6·4 지방선거 포스터에도 ‘의리’는 어김없이 등장했다. 대한민국에 의리열풍을 몰고 온 이는 바로 배우 김보성(48). 데뷔 이후 줄곧 한 가지 가치 ‘의리’만을 고집해온 그가 드디어 대세가 됐다. 의리의 대명사로 우뚝 선 것이다.
이달 초 김보성은 국내 한 음료업체의 CF에서 “우리집 으리(의리) 음료” “항아으리(항아리)” “광고주는 갑, 나는 으리(을)니까” 등을 외쳐대며 유행어를 만들어냈다. 이 광고가 크게 화제가 되면서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일명 ‘의리시리즈’가 퍼져 나갔다.
최근에서야 ‘으리으리하게’ 주목받고 있지만 사실 김보성이 의리를 외친 건 오래전부터다. “스물네 살에 데뷔해서 2~3년 후부터 계속 의리를 강조했다. 1994년 음반을 냈는데 ‘영웅’이라는 곡에서도 의리이야기가 나온다. ‘사나이로 태어나 보람된 사람인가를 생각하면. 의리 위해 모든 것 버리며’란 가사도 직접 썼다. 의리와 함께한 지 어느덧 20여년이 넘었다.”
김보성의 의리에 대한 애착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김보성은 단순히 사전적인 의미를 넘어서 의리에는 정의로움이 깔려 있어야 한단다. 그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나눔의 의리’로 가기 위한 단계라고 했다. “개인 간의 우정도 의리일 수 있지만 ‘정의로운 의리’가 더 중요하다. 정의가 마음속에 자리 잡다 보면 타인을 위해서 사는 나눔의식이 싹트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우정으로 시작했다가 나쁜 쪽으로 빠지면 공익을 해칠 수 있다. 그래서 정의로움이 필요한 거다. 자연스럽게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최고의 의리다.”
요즘 의리가 더욱 각광받는 이유를 김보성도 잘 알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매일같이 터지는 각종 사건·사고와 비리들이 국민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와 아픔을 남겼기 때문. 김보성은 “몸과 마음이 지쳐 있는 이들에게 의리가 위로가 되고 위안이 되는 것 같다”며 “그래서 더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하지만 스스로도 의리를 외치다 상처를 받은 경험이 적지 않다. “의리를 외치면서부터 각오했던 일이다. 의리로 살다 보면 손해를 볼 수도 있고 억울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결국 고독해질 수밖에 없다. 그 고독함을 이겨나가는 게 진짜 가치 있는 삶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김보성은 결국 이겨냈나 보다. “상처받을 것이 두려워 믿는 마음을 가지지 못한다면 너무 각박한 현실이 되지 않을까. 일단 사명감을 가지고 희생하는 마음에서 시작해야 하는데 지금 우리 사회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 많은 사건·사고를 겪으면서 상처도 생겼겠지만 그만큼 의리의 진정성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내가 재료가 돼서 훌륭한 요리가 된다면 난 얼마든지 망가져도 좋다.”
‘의리’라는 말 하나로 이렇게 긴 시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도 흔치 않다. “의리는 정의도 필요하고 사랑도 필요하지만, 겸허함도 있어야 하고 극기도 있어야 한다.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하니까.” 역시 ‘의리’의 사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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