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현장에서 한국경제 연구를 시작하던 1980년대 만 해도 일본 배우기 열풍이 거세게 불던 시기였다. 경제는 물론이고 사회, 문화 등 모든 방면에서 일본을 벤치마킹하는 것이 관행처럼 여겨졌다. 당시 일본경제는 세계 1위 경제대국 미국을 바짝 추격하며 기세가 등등하던 때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일본경제는 1980년대 말을 정점으로 급격히 추락했다. 제로성장에 가까울 정도로 성장률이 크게 떨어졌고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경제의 늪에 빠져 들었다.
일본경제 추락의 핵심 원인은 인구 고령화, 초엔고, 디지털혁명 대응 실패로 요약할 수 있다. 생산인구 감소로 생산능력과 내수시장은 쪼그라들었고 지방은 소멸해갔다. 엔고로 수출은 위축됐으며 디지털 전환에 미적거리다 산업 경쟁력은 뒤처졌다.
추락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경제·사회 전반의 변화와 혁신이 필요했으나 정치 리더십 실종으로 변화를 위한 개혁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렇게 20년이 흘러갔다. 소위 ‘잃어버린 20년’의 기간이었다.
|
아직 반신반의하는 회의론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주가는 2011년을 바닥으로 10여 년간 견고한 상승추세를 유지하면서 일본경제 회생을 웅변해주고 있다. 일본경제는 여전히 고전 중이지만 적어도 디플레경제에서는 빠져나오는 모습이 확연하다.
회생의 모습을 보이는 일본과 대비해 한국경제는 지금 화려한 정상을 뒤로 하고 시들어가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1990년대 정상에서 급전직하할 당시 피크(peak) 재팬의 그림자가 지금의 한국에 오버랩 돼 보인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치명적 요인이었던 인구고령화는 당시 일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가속되는 반세계화의 기류는 수출의존도가 기형적으로 높은 한국경제에 심히 우려할 만한 요소다. 1980~90년대 디지털 혁명에 무모할 정도로 공격적으로 올라타던 패기는 지금의 4차 산업혁명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아베 총리가 등장하기 직전까지 매년 한 명꼴로 6명의 총리가 갈린 정치 리더십 부재만큼이나 한국 정치도 표류하고 있다.
지금의 이런 한국과 일본의 현실을 투영한 결과가 반세기 만의 한일 성장률 역전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한국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같은 늪에 빠진다면 그 시련은 일본보다 훨씬 혹독할 것이다. 내수시장 축소의 직격탄을 맞는 자영업은 그 비중이 일본보다 훨씬 높다. 수도권 집중도가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에서 인구감소의 지방소멸 효과 역시 더 클 것이다. 대외금융자산 규모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일본에 비해 쌓아 놓은 자산도 적어 버티기 능력도 떨어질 것이다.
이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반면교사로 삼아 피크(peak) 코리아에 대비해야 한다. 지금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한국경제는 잃어버린 20년 이상의 혹한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