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기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은 25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국내 수출 기반인 기업들이 각종 규제로 힘들어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과도한 기업규제를 막고, 기업의 연구·개발(R&D) 역량을 끌어올려야 구조적 무역적자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며 “신(新) 산업 육성에 나서고 있는 중동 지역 등의 개발에 관심을 둘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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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는 국내 투자 여건이 과도한 기업규제 등으로 나빠지고 있어 현재의 일시적 무역수지 적자가 구조적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21대 국회의 연평균 법률 반영 건수는 2320건으로, 영국·미국과 비교해 각각 47배, 26배 많았다. 그는 국내 규제가 강화하면서 기업이 제대로 된 경영 활동을 벌이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 부회장은 국내 수출경쟁력을 강화하려면 국회의 과잉 입법을 개선하고 국내 기업의 R&D 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못 박았다. 그는 “한국의 2020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 비중은 세계 2위 수준으로, 투자를 더 늘리긴 어려운 상황”이라며 “연구과제 선정이나 개발 속도를 높일 수 있는 기업 자체 R&D의 세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부회장은 또 고(高) 유가와 증산으로 경기 호황을 누리고 있는 중동 등 산유국에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도 꺼냈다. 그는 “현재 중동 등은 재정 흑자를 기반으로 석유 의존 경제 탈피를 시도하고 있다”며 “무역협회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도록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과 수주를 체계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언급했다.
아울러 정 부회장은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IRA) 시행 등에 대해선 “석탄·석유 의존 시대에서 전기 의존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과도한 중국 의존도를 떨쳐내려는 시도”라며 “미·중 분쟁의 시각으로만 봐선 안 되고, 국내 기업들로선 공급망 다변화와 해외 자원개발 등으로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 밖에도 서울 강남구 삼성동 트레이드 타워 내 그의 사무실에서 국내 무역·기업 상황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다음은 정 부회장과의 일문일답.
-올해 들어서 무역수지가 급격히 악화, 역대 최대 규모 연간 적자를 기록하리란 전망도 나온다. 현재의 무역수지 악화를 어떻게 바라보나.
△지난 수십년간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다가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니 충격이 큰 건 사실이다. 그러나 관련 내용을 잘 살펴보면 무역 규모와 비교해 적자 비중이 높은 수준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1~9월 총 무역액 대비 무역적자 비중은 2.7%로, 1997년 IMF 위기(7.4%)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1.6%)와 비교하면 높지 않다.
또 올해 우리 세계 수출 순위는 6위로, 지난해 7위에서 한 단계 뛰어올랐다. 5위인 일본과의 수출 격차도 역대 최소폭으로 좁혀진 상태다. 독일과 일본 등 주요국 수출이 미미한 성장세에 그치고 있는 상황에서도 우리나라 수출액은 두자릿수 성장세(14.6%)를 유지하면서 선방하고 있다.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가격이 큰 폭으로 올랐다는 점이다. 지난해 총수입에서 에너지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3%였지만, 올해는 27.2%에 달한다. 최근 몇 년간 원자력 등 저가 에너지원 비중을 줄이고 액화천연가스(LNG) 등 고가 에너지원 비중을 늘려왔고 전기요금을 오랜 기간 동결하면서 과도한 에너지 소비 구조가 자리 잡은 점이 악영향을 끼쳤다.
그럼에도 일본·독일 등 우리나라와 산업 구조가 유사하고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과 비교해 지난해 대비 무역수지 악화 정도는 크지 않다. 또 현재의 무역적자는 단기 환경 변화에 따른 것으로, 에너지 소비 구조를 바꾸고 원전 등 무역수지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에너지원을 사용하면 무역적자는 개선될 수 있으리라 보고 있다.
-그렇다면 에너지 가격 급등과 같은 요인만 사라지면 국내 무역수지는 쉽게 개선될 수 있는 건가.
△최근 국내 경영환경이 악화한 점이 걱정된다. 특히 이는 구조적 요인이어서 지금의 일시적 요인보다 더 문제가 될 수 있다. 주52시간제 시행,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더해 각종 경제 규제가 생기면서 국내 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제조업 부문에선 해외로 나가는 투자액이 국내로 유입되는 외국인 투자액보다 6배 이상 많을 정도다.
결국 이런 점들이 국내 수출 산업의 기반을 계속 약화하고 있다. 미국에선 리쇼어링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는 데다 각종 스타트업이 계속 나올 수 있게 지원해 수출 산업의 기반을 강화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장기적으로 국내 산업 기반이 쪼그라들면 무역수지에도 부정적 영향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국내 수출경쟁력을 강화하려면 국내 투자 여건을 개선하면서 어떤 점에 주목해야 할까.
△개인적으로는 국내 R&D의 역량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우리나라는 GDP 대비 R&D 투자 비중도 높은 국가인데, 매년 50억달러 내외의 기술 무역적자를 보고 있다. 미래기술로 꼽히는 인공지능(AI)·이차전지·반도체 등 분야에서 앞서나가기 위해선 우리 R&D 투자의 생산성을 높이는 게 시급한 과제다.
특히 국가 R&D는 ‘연구 역량이 높은 연구 주체 선정’과 ‘연구 속도 제고’가 중요하다. 현재 다른 국가보다 정부의 R&D 지원이 소홀한 대기업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은 국가 전략 기술을 제외한 R&D 투자세액 공제율이 대기업 평균 17%인데, 한국의 대기업 평균은 최대 2%에 그친다.
우리나라도 대기업의 연구역량을 최대한 활용하려면 R&D 투자에 대한 세제 지원을 높이면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세제 지원 차이를 줄여나가야 한다. 이런 식으로 지원해야만 우리나라와 기술 격차를 줄이려는 중국의 시도를 막고, 그 격차를 유지하거나 벌려 국내 수출경쟁력에도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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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아프리카와 중동 대사들과의 네트워킹 행사에서 많은 얘기를 나눴는데, 이들은 원전과 수소, 재생에너지 등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석탄·석유 중심 의존 시대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점에서 제조업 등도 적극적으로 유치하려는 모습이다. 당장 프로젝트는 없더라도 계속 모니터링해 프로젝트를 발굴, 국내 기업들 진출하는 것도 새로운 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최근 고유가 시대를 지나오면서 무역흑자를 많이 거뒀으니 점차 시장 규모나 투자 규모가 커질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중동 외에도 중국을 대체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베트남, 인도 등의 아시아 국가들을 전략적으로 노려볼 만하다고 보고 있다. 장기간 꾸준히 관심을 두고 지켜보면서 시장 영향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IRA)을, 유럽은 원자재법(RMA)을 시행하려고 앞두고 있다. 이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미국과 유럽이 각종 법안을 통해 동맹국 위주로 산업 체계를 재편하려고 하는 건 중국이 미워서라기보다는 미래산업에서의 중국 의존성이 너무 높을 것으로 예측돼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당장 현대차 등 일부 국내 기업으로선 위기로 느낄 수 있지만, 중국 의존도를 점차 낮추면 우리에게 미국과 유럽의 이러한 움직임이 너무 비관적이지만은 않으리라고 본다.
현재 각 기업이 추진하고 있는 공급망 다변화도 미·중 간의 경제 갈등으로만 접근해선 안 된다. 결국 공급망 다변화는 사업의 위험을 낮추는 효과가 있고 사업을 진행하다 보면 필요한 부분이다. 중국 정부나 기업들과의 원활한 대화를 통해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해야 하고, 중국 역시 스스로 위험을 줄이기 위해선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하리라고 예상된다.
아울러 정부는 자원개발과 재활용(리사이클링) 사업을 지원해 기업들의 공급망 문제에 도움을 줄 필요가 있다. 관련 사업을 하는 공공기관의 기능을 강화한다든지, 민간기업의 투자를 지원한다든지 정부로서 지원할 방법은 많다. 최근 산업계에선 자원을 재활용하는 부분에도 관심이 많은데, 여기서도 R&D 세제 지원 등을 통해 관련 기술개발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
정만기 상근부회장은…
△서울대 사범대·행정대학원 졸업 △파리 제10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학위 △1984년 제27회 행정고시 합격 △산업자원부 산업기술개발과장·산업통상기획관 △2014년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실 산업통상자원비서관 △2016~2017년 산업통상자원부 제1차관 △2019~2022년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 △2020년~ 한국산업연합포럼 회장 △2022년 9월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