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연준의 산문집 ‘쓰는 기분’(2021년, 현암사)에 등장하는 글의 일부다. 박연준은 이 책에서 시가 무엇인지,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한 번쯤 궁금해했던 시의 세계로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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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지 않는 시대, 문해력 위기가 거론되는 시대라지만 2022년 9월 가을의 문턱, 시(詩)가 여전히 읽히고 있다. 어렵고 난해해 한동안 외면받았던 시가 다시 독자들에게 선택받고 있는 것이다. 감소세를 보이던 시집 판매량은 3년 연속 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확연해진 현상이다. 현실의 고단함 속에서 짧은 글로 위로받으려는 욕구가 커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단 몇 줄만으로도 깊은 울림을 줄 수 있고, 2030 동년배의 감성을 써낼 줄 아는 젊은 시인들의 등장은 시집 판매 호조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온라인 서점 예스24 집계에 따르면 시집 판매량은 3년 연속 증가하는 추세다. 시집 판매량은 2017년과 2018년 전년 대비 각각 -5.4%와 -7.6%로 감소세를 보였으나, 2019년(8.3%) 반등한 뒤 2020년(12.9%)과 2021년(10.9%) 두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다. 지난해 출간된 시집도 3257권으로, 2017년(2267권)보다 43.7% 늘었다. 교보문고도 비슷한 흐름이다. 2018년 7.1% 줄었던 시집 판매량은 2019년(2.6%)과 2020년(8.4%), 2021년(11.5%) 3년 연속 증가했다.
20대가 시집의 주요 구매층으로 떠오른 점도 눈에 띈다. 2017년 8.9%에 불과했던 20대 구매 비중은 2021년 13.3%로 4.4%포인트 늘었다. 예스24 측은 “젊은 시인의 등단 문턱이 낮아졌고, SNS에 노출하기 좋은 구도를 고민하는 출판사의 노력으로 시집의 형태도 자유로워지는 게 최근 경향”이라며 “시집 한 권을 통독하던 방식에서 SNS를 통해 부담 없이 즉각적으로 유통되고 소비될 수 있는 장르가 바로 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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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계절 가을을 맞아 기성 시인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문정희(75) 시인은 통산 15번째 시집 ‘오늘은 좀 추운 사랑도 좋아’(민음사)를 최근 펴냈다. ‘작가의 사랑’ 이후 4년 만이다. 시력 50년에 달하는 기념비와도 같은 이 시집에서 작가는 끝없는 반복으로 ‘나’와 만나고 대화하며 건넨 말에 집중한다. 시인은 ‘디자이너Y’에서 시와 자신과 세계 사이의 무한한 분열을 목도하고, ‘눈송이 당신’에서는 처음 만져 보는 추운 사랑을 긍정한다. 최진석 문학평론가는 이번 시집에 실린 작품 해설에서 문 시인에 대해 “시를 낳을 적마다 그는 다른 시인이 됐고, 태어난 시로 인해 또 다른 시인으로 변모해왔다”고 썼다.
진은영(52) 시인이 10년 만에 펴낸 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문학과지성사)는 출간과 동시에 시 분야 1위에 올랐다. “시인은 침묵함으로써 대화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진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42편의 시를 통해 공동체에서 잘 드러나지 않은 목소리와 다양한 삶의 문제를 표현했다. 신형철 평론가는 “사랑과 저항은 하나이고 사랑과 치유도 하나라고 이 시집 전체가 작게 말하고 있을 뿐, 어떤 시도 직접적으로 크게 말하고 있진 않다”면서 “진은영은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꿈을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아름다움, 그런 것을 가졌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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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업계는 가을을 맞아 시집을 찾는 독자들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출판사 한 관계자는 “나태주, 류시화, 최승자, 이병률 등 기성 시인의 애송 시집들이 여전히 사랑받는 흐름 속에서 황인찬, 최지인 등 젊은 시인들이 계속 발굴되고 있다”면서 “2030세대 새로운 독자층의 탄생도 시가 살아남는 이유다. 가을을 맞아 시집을 찾는 독자들은 더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서울시는 다음달 16일까지 ‘절판 시집의 추억전(展)’을 서울 송파구 잠실나루역 인근 공공헌책방 ‘서울책보고’에서 개최한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절판 시집과 함께 서울책보고가 보유 중인 200여권의 절판 시집을 전시·판매한다. 또한 서울시는 지난 2일부터 ‘책 읽는 서울광장’(도서 규모 5000권)을 11월13일까지 운영한다. 금·토·일요일(오전 10시~오후 5시) 열리며, 외부 대규모 행사나 우천 시 휴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