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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민 변호사] 생물학적 나이에 따라 연령집단을 구분하는 용어는 그 자체로 가치중립적이다. 예컨대 만 6세까지 정도의 연령대를 지칭하는 ‘유아’와 그 이상부터 성년이 되기 전까지를 뜻하는 ‘청소년’ 간에는 어떠한 가치에 따른 차별도 존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청년, 장년, 노년 등 특정 연령대를 지칭하는 다른 용어들 역시 가치중립적이다. 그러나 특정 연령대를 지칭하는 용어 중 유독 중립적이지 않게 사용되는 용어가 있다. 바로 성인이다.
성인(成人)은 단어의 의미 그대로 ‘온전히 성장한 사람’을 뜻한다. 반면 미성년(未成年)은 ‘아직 온전히 성장하지 못한 사람’을 뜻한다.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은 미성년자와 거의 유사한 의미로 사용한다. 민법은 “미성년자가 법률행위를 함에는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규정하여 미성년자의 독립적 법률행위를 부정한다(제5조 제1항). 이러한 제한은 미성년자에 대한 차별보다 그들에 대한 보호 의미가 더 크다. 이는 바로 이어지는 “전항의 규정에 위반한 행위는 취소할 수 있다”는 규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제5조 제2항).
아직 사회적 경험이 부족한 미성년자는 자칫 잘못된 판단에 의해 그들에게 불리한 법률행위를 할 위험이 크다. 이같은 경우 해당 법률행위가 법정대리인의 동의 하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면 취소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이다. 미성년자의 잘못된 법률행위를 취소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해 준 것이다.
그러나 제한보다 보호 취지를 가지고 있는 ‘미성년자’이지만 현실에서 보호보다 제한을 위해 더 많이 쓰이는 것으로 보인다. 즉 미성년자와 성인 사이에 존재하는 만 18세 생일을 맞이하기 전날 23시59분59초라는 지극히 추상적 경계선이 현실에서는 어마어마한 권력의 분기점으로 작용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선거권이다.
제20대 국회는 수많은 갈등 속에서 패스트트랙이라는 특단의 조치까지 사용해 가며 겨우겨우 선거법을 개정했다. 개정된 선거법의 핵심 내용 중 하나는 준연동형비례대표제의 도입이다. 준연동형비례대표제가 거대 양당의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이라는 꼼수와 맞물리면서 제21대 총선의 이슈를 집어삼키고 있다. 그러나 준연동형비례대표제에 가려 눈에 띄지는 않지만 개정 선거법에는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선거연령이 만 18세로 하향된 것이다.
선거연령이 만 18세로 낮춰지면서 2002년에 태어난 소위 월드컵돌이들은 생일이 4월16일 이전이라면 제21대 총선에 투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선거연령이 낮아지는 과정을 살펴보면 ‘미성년자’에 대하여 우리 사회가 부여하고 있는 차별적 시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만 18세를 학년에 대입해 보면 일반적으로 고등학교 3학년에 해당한다. 때문에 선거연령 하향을 반대했던 이들은 “고등학교 교실에서 무슨 정치냐”, “고등학생이 무엇을 안다고 선거를 하냐”, “교실을 정치판으로 만들 작정이냐” 등 주로 만 18세의 학생이라는 특성을 문제삼고는 했다.
“고등학생이 무슨 정치냐”는 말은 표면적으로 고등학생이라는 사회적 신분을 문제삼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뒤에는 “어린 것이 뭘 안다고 정치를 하냐”는 폄훼가 깔려 있을 것이다. 단지 그 나이대 인구 대부분이 고등학생이기 때문에 ‘고등학생’이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것뿐이다. 그렇다면 18세와 19세라는 미세한 차이는 있지만 여기서 ‘미성년자’는 선거권이라는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 것이다. 이는 역대 선거연령의 조정 사례를 살펴보면 더 명확해진다.
우리나라 선거연령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당시 만 21세로 시작한 후 1960년 한 살이 낮춰졌고 다시 2005년 한 살이 낮춰져 만 19세가 되는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이번 선거연령 조정과 같이 민법상 미성년자 상한연령의 하향에 맞춰 조정된 것일 뿐 선거에 참여하기 위한 능력을 갖추는 시기가 언제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 따른 결과는 아니었다. 그리고 매번 선거연령 조정을 반대한 이들은 “어린 것들이 뭘 안다고 정치야”라는 비판만 늘어놓았을 뿐 몇 세가 선거연령의 적기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하지 않았다. 이는 선거연령 하향에 찬성한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미성년자는 단독으로 법률행위를 영위할 수 없는 연령 기준일 뿐이다. 국민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때문에 미성년자 상한연령과 선거연령이 상이한 것이 국제적 경향이고 미성년자 상한연령보다 선거연령이 더 낮은 것이 추세다. 그러나 한국은 선거연령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아닌 민법에 따른 미성년자 상한연령의 변화에 선거연령을 맞춰가는 모습만 보여왔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미성년자는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없어”라는 차별적 시선과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이제 얼마 후면 제21대 총선이다. 생애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하게 되는 만 18세 청소년들이 선거를 통해 스스로의 정치적 목소리를 명확히 내길 기대해본다. 그래야만 “어린 것들이 무슨 정치야”라며 ‘미성년자’라는 가치중립적 단어에 차별을 덧씌운 이들에게 “당신들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도대체 선거연령으로 몇 세가 적정한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청소년’을 다시 가치중립적 위치에 되돌려 놓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총선이 특히 기대되는 이유다.
◇김광민 변호사 이력
△부천시 고문변호사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인천지부 부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