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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민의 인생영업]작은 성과에도 꼭 해내야할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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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기자I 2019.08.22 05:00:00
[신동민 머크 생명공학 R&A 컨트리헤드·‘나는 내성적인 영업자입니다’ 저자]미국은 절망에 빠져 있었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처참하게 패배한 이후 반격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그동안 일본은 소위 남방작전으로 유럽열강들이 지배하고 있던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싱가포르, 홍콩 등을 차례로 점령하고 있었다. 미국이 지배하던 필리핀도 점령했다. 미국이 패전
의 혼돈에 있는 동안 일본은 아시아를 점령하면서 전쟁에 필수적인 자원을 확보해 나갔다. 미국은 일본에 설욕을 다짐했으나 해군력이 일본에 절대적인 열세였고, 괌과 웨이크 제도까지 잃게 되며 태평양에서 맥을 못 추고 있었다. 심지어 일본 잠수함의 미국 본토 캘리포니아주 산타바바라 정유소 포격은 미국 전역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세계 최강국이라 자부하던 미국의 자존심은 바닥까지 떨어졌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매일같이 공격방법을 강구하라고 채근을 했지만, 진주만의 피해도 복구 못한 상황에서 뚜렷한 방법이 없었다.

전세를 전환하기 위해서 일본의 본토를 공격하자는 전략이 나왔다. 미국으로서는 회심의 일타가 절실했다. 그런데 태평양 건너에 있는 일본 본토를 어떻게 공격한다는 말인가? 장거리 폭격기가 이륙할 비행기지도 이미 다 잃어버렸고, 본토나 하와이에서 일본은 너무 멀었다. 목표는 좋았으나 방법론을 찾기가 어려웠다. 마침내 육군의 폭격기를 이용해서 일본의 주요 도시를 폭격하는 전략을 세웠다. 일명 둘리틀 공습(Doolittle Raid) 작전이 실행된다.

궁리를 거듭하던 미군 수뇌부는 항공모함 함재기보다 항속거리가 긴 육군의 B-25 미첼 폭격기를 항공모함에 싣고 가서 적의 수도를 폭격하기로 결정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가벼운 B-25폭격기라도 항공모함에서 이륙하고 착륙하기에는 짧은 활주로 때문에 불가능에 가까웠다. 미국은 최정예 조종사들을 선발하고 슈나이더컵 대회 조종사로 명성이 있던 둘리틀 중령을 지휘관으로 선발했다. 선발된 조종사들은 항공모함의 짧은 갑판에서 이륙할 수 있도록 맹훈련을 했고, 폭격기를 개조하기 시작했다. 항공모함에서 이륙할 수 있도록 무게를 최대한 가볍게 하고, 장거리비행을 위해서 비행하는데 최소한의 장비를 제외하고 모두 제거를 했다. 심지어 기관총, 무전기 등도 제거하고 추가 연료통을 달았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이륙은 할 수 있으나, 폭격 후 착륙할 수는 없었다. 폭격기는 항공모함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었다.

1942년 4월 1일, 항공모함 호넷은 개조된 폭격기 16기를 탑재하고 샌프란시스코 항구를 떠났다. 항공모함에 함재기 대신에 폭격기만 가득 탑재했으니 공격을 받을 시 방어기능이 전무했다. 호넷을 호위할 엔터프라이즈 항공모함이 하와이에서 합류하여 공격 목표인 일본으로 향했다. 일본으로 순항하던 중 원래 폭격기가 이륙을 예정한 지점에서 310㎞나 못 미쳐 일본의 순찰선에 발각당하고 만다. 순양함과 구축함이 순찰선은 격침시켰으나, 이미 항공모함의 존재를 일본 본국에 알린 뒤였다.

1942년 4월 ‘둘리틀 공습’ 작전을 펼치기 위해 미군 항공모함 호넷에서 이륙하고 있는 B-25 폭격기.(사진=미 공군 제공)
미군은 결정을 내려야 했다. 후퇴를 하느냐, 아니면 공격을 감행해야 하는가? 문제는 일본 본토 폭격 후 중국으로 가서 착륙할 예정이었으나 310km나 미리 발진하여 중국에 도착할 수 있는 연료가 모자랐다. 그러나 미군은 더 이상 기회가 없다고 판단해 폭격기를 발진 시켰다. 폭격기는 항공모함으로도 돌아오지 못하고, 예정되었던 중국으로도 갈 연료가 부족한 상태에서 출격을 감행한다.

미군의 폭격기는 예상과 달리 아무런 제재 없이 일본 본토에 진입을 했다. 일본군은 미군 항공모함의 함재기가 일본에 들어오려면 최소 20시간 이상 걸릴 것이라 생각하고 방어전을 준비했다. 그들은 항공모함이 일본 본토에 더 접근해서 함재기가 공격할 것이라 오판한 것이다. 폭격기가 일본 영공에 들어올 것이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미군 폭격기들은 대낮에 일본의 주요 도시 도쿄, 나고야, 고베 등에 폭탄을 퍼붓고, 일본 본토를 가로 질러 중국으로 향했다. 일본은 거의 무방비 상태였다.

사실 16기의 폭격기로 많은 피해를 입히지는 못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한 번도 본토 공격을 받은 적이 없었던 일본은 그들의 수도이자 황궁이 있는 도쿄가 폭격을 받았다는데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본토 공격을 받은 일본은 혼란 속에 이성을 잃었고, 동남아시아에서 승승장구한 자신감으로 곧이어 태평양 전쟁에서 분수령이 된 미드웨이 대전을 촉발시킨다. 일본은 미드웨이 대전에서 처참하게 패배했으며, 태평양전쟁의 전세는 기울었다.

미군의 각고의 노력으로 이룩한 일본 공습의 전과는 소소한 것이었다. 그러나 애초부터 미군은 많은 전과를 바란 것이 아니라, 연전연패하면서 바닥에 떨어진 미군의 사기를 전환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또한 패배감과 무기력에 빠져 있던 미국인들에게는 용기가 필요했다. 미군이 일본의 본토를 공격했다는 것은 그 어떤 전과를 넘어선 새로운 의미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죽고 죽이는 전쟁은 아니지만, 전쟁과 같이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싸움을 하게 된다. 비즈니스에서 경쟁을 하다 보면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이겨야 하는 상황이 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마음과 자신감이다. 싸워서 이길 자신감이 없는 싸움은 하지 않는 것이 옳은 선택일 것이다. 1942년 미국의 상황은 일본에 비하면 전력은 열세였고 군인이나 국민의 사기는 바닥이었다. 도쿄 공습은 피해를 입혀서 승리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이길 수 있는 정신을 만드는 것이었다. 한 번의 과감한 공격으로 미군은 이길 수 있는 정신을 획득했고 일본은 혼란에 빠졌다. 역사상 모든 전쟁의 승패는 객관적인 전력으로만 결정되지 않았다. 이길 수 있다는 신념과 절박함이 승리를 만들어 주었다.

과연 우리는 지금 전쟁 같은 싸움에서 돌아오지 못할 폭격기를 탄 80명의 영웅이 있는가? 그리고 적의 심장을 공격할 용기와 절박함을 가지고 있는가? 둘리틀이 일본 공습을 성공한 후에도 작은 성과라고 폄하하는 세력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국민이 돌아오지 못할 폭격기에 몸을 싣고 적진에 뛰어들 때 무엇을 하였는지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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