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대표는 부친을 ‘선생님’으로 칭하며 “선생님이 오래전부터 (본인 브랜드를) 독창적으로 표현하고 싶어서 본인 영문을 ‘LEE’ 대신 ‘LIE’로 표기했다”라면서 “본인 여권 영문 이름을 바꾸지 못해서 아쉬워한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가 처음부터 부친과 같은 길을 선택한 건 아니었다. 그가 1999년 영국 유명 디자인 학교인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예술대(CSM)에서 고른 첫 전공은 ‘예술과 디자인(ART&DESIGN)’으로 패션 경영 쪽이었다. 이 대표는 “처음엔 패션 사업에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에 CSM에 입학해 3년간 전반적인 패션업계를 배웠다”라고 말했다.
중간에 전공을 바꾼 이 대표의 선택은 여성복이 아닌 남성복이었다. 이 대표는 “패션을 알아가면서 직접 디자인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겨서 학사 졸업 후 2006년 남성복 디자인과로 편입했다”라며 “2008년 졸업하자마자 영국 디자이너 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돼 (세계 4대 패션쇼인) 런던 패션위크에 두 차례 섰다”라고 말했다.
◇때론 선생님…여성복 색·패턴 갈피 못잡을 때 아버지 큰 도움
남성복 디자이너로 촉망받던 이 대표는 막상 남성복 브랜드를 만들려고 하자 벽에 부딪혔다. 남성복 시장이 생각보다 작고 치열했기 때문이다. 또 여성복이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이 대표는 “2010년쯤 국내·외 남성복 도매업자(바이어)와 여성복 도매업자 비율은 1대 9 정도였다”라며 “디자인을 시작하고 나니 여성복을 디자인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남성복을 전공한 이 대표가 여성복 디자인을 시도하면서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여성 인체는 남성과 달라서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또 처음에는 여성이 어떤 색감이나 디자인을 좋아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이씨는 “남녀 인체가 다르게 생겼기 때문에 옷 패턴부터 전혀 다르고 차이도 크다”라며 “어떻게 만들어야 더 예쁠지 몰라서 고민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성복이 남성복보다 과감한 부분이 많고 여성 심리를 이해하는 게 무척 어려웠다”라며 “남녀가 옷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여성 고객 등 주변에 많이 물어봤다”라고 덧붙였다.
|
데면데면한 부자 관계였던 두 사람은 같은 길을 걸으면서 조금씩 가까워졌다. 이 대표가 늘 바쁜 삶을 살았던 부친을 이해하게 된 계기였다. 이 대표는 “정식으로 함께 일하기 전에는 서먹서먹한 관계였는데 같이 일하면서 선생님을 이해하게 됐다”라며 “부친이기 이전에 멘토로서 조언해준 덕에 라이가 5년 만에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라이는 출범 5년 만에 급성장하며 전 세계 60여개 매장을 냈다. 특히 지난해 9월 미국 뉴욕 패션위크에 서면서 세계 시장에서 호평을 받았다. 라이 2018년 봄·여름(S/S) 컬렉션이 올 초 두바이 고급 백화점 ‘갤러리 라파예트 두바이’에 팝업스토어(임시 매장)로 소개됐다. 오는 6월 일본 오사카에서도 라이 팝업스토어가 열린다. 국내에서는 이달 3일 경기도 판교 현대백화점에 정규 매장을 냈다.
◇때론 경쟁자…‘LEE’ 대신 ‘LIE’ 간판 내걸고 세계로
요즘 이 대표는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미국 뉴욕 패션쇼 무대에 선 라이 제품은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전시회에 참여했다. 또 싱가포르에서 패션업계 관계자와 언론인 등을 초청해 쇼케이스를 열고 이달 말엔 중국 상하이로 건너갈 예정이다. 이 대표와 라이 관계자는 직접 짐을 싸들고 태평양과 대서양을 건너 바이어를 만난다.
국내 1세대 대표 디자이너인 이상봉씨는 장남이 단시간내에 성장할 수 있도록 뒷받침이 됐다. 처음 이 대표가 학교를 선택할 때 CSM을 추천한 것도 이씨였다. 영국의 자유분방하고 창의적인 교육 방식이 이 대표를 성장시켰다.
이 대표는 “미국과 달리 영국 등 유럽 디자인 학교는 학생들의 상상력을 중요하게 여긴다”라며 “디자인 실무 등을 가르쳐주는 학교도 있지만 우리 학교(CSM)는 학생이 스스로 창의적인 디자인을 끌어낼 수 있도록 도와줬다”라고 말했다.
이제 브랜드를 총괄하는 이 대표는 ‘이상봉’과 다른 길을 걷는다. 그는 “디자이너 대 디자이너로서 라이 관련된 일은 주도권을 쥐고 본인이 책임지고 일한다”라며 “선생님이 라이 패션쇼 전에 디자인을 보여달라고 해도 보여주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프라다나 샤넬 등 외국 브랜드처럼 ‘이상봉’이 긴 역사를 지닌 브랜드로 기억되길 바란다. 동시에 ‘라이’를 젊은 고객이 좋아할 감각적인 브랜드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이탈리아 고급 브랜드 ‘프라다’가 젊은 고객층을 겨냥한 브랜드 ’미우미우(Miu Miu)’를 키웠듯이 말이다. 라이는 그런 고민 속에서 탄생한 여성복 브랜드다.
이 대표는 “‘사랑(LOVE)·정체성(IDENTITY)·자아(EGO)’ 첫 글자를 따서 브랜드 라이(LIE)를 만들었다”라며 “여성 고객이 라이 옷을 입었을 때 자신을 사랑하고 표현하는 브랜드란 느낌을 주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나중에 ‘이상봉’이란 브랜드를 맡아서 역사가 있는 브랜드로 계속 키우고 싶은 마음도 있다”라며 “프라다와 미우미우처럼 라이도 이상봉 고객층과 다른 고객층을 겨냥한 제품을 만들고 싶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본인이) 총괄해 (이상봉과 라이를) 하이엔드(최고급)부터 현대적인 감각을 자랑하는 하우스 브랜드(한지붕 아래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브랜드)로 운영하고 싶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