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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뒤…독립운동가 최재형 있었다

장병호 기자I 2017.08.15 06:00:00

창작뮤지컬 '페치카' 제작하는 테너 주세페 김
최재형의 삶 담아…광복절 독립기념관서 갈라 공연
안중근·윤동주 등 독립운동가의 삶 노래로 불러
"역사 아픔 이겨낸 사랑과 화합 정신 전할 것"

독립운동가 최재형의 일대기를 그린 뮤지컬 ‘페치카’를 제작하는 테너 주세페 김(왼쪽)과 그의 아내 소프라노 구미꼬 김(사진=랑코리아).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최재형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이겨내고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그렇게 번 돈을 조국의 흥망이 갈렸을 때 아낌없이 나라를 지키는데 썼다. 죽음을 앞두고는 가족을 살리기 위해 일본군에 홀로 투항했다. 지금 한국사회가 많은 것을 본받아야 하는 위인이다.”

1909년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 의사 뒤에는 독립운동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준 이가 있었다. 독립운동가 최재형(1858~1920)이다. 시베리아와 연해주를 오가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최재형은 고려인 동포들 사이에서 ‘페치카’(러시아어로 벽난로를 일컫는 말)로 불린다. 나라를 잃은 이들을 따뜻하게 품어줬다는 뜻에서다.

테너 주세페 김(51·본명 김동규)이 최재형의 순국 100주기인 2020년을 목표로 창작뮤지컬 ‘페치카’(가제)를 제작하고 있다. 15일 독립기념관에서 열리는 광복 72주년 경축행사에서는 ‘페치카’의 주요 넘버로 꾸민 갈라 콘서트를 선보일 예정이다. 주세페 김은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광복절을 맞아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최재형의 삶을 전하고 아픈 역사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았던 인간적인 사랑을 국민과 함께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최재형은 함경도 경원에서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혹독한 기근을 견디지 못하고 국경을 넘어 시베리아에 정착해 군수업으로 부를 쌓았다.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전 재산을 의병 양성에 쏟고 한인 후손을 위한 학교를 세우는 등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주세페 김은 “최재형은 사람들 앞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뒤에서 묵묵히 나라를 위해 일한 위대한 지도자였다”고 말했다. 또 “자수성가했다는 점에서 청소년에게는 좋은 롤모델이자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몸소 실천했다는 점에서는 요즘 기업인에게 경종을 울리는 분이다”라고 강조했다.

현재 뮤지컬은 시인 이상백, 작가 권오경과 함께 대본을 작업 중이다. 주요 넘버는 이미 완성된 상태로 독립기념관에서 여는 갈라 공연을 통해 일부를 공개할 예정이다. 주세페 김은 “일제의 잔혹상을 고발하는 것보다 힘든 순간에도 사라지지 않았던 보편적인 인류애에 초점을 맞춰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오는 11월에는 쇼케이스를 가질 계획이다.

테너 주세페 김(왼쪽)과 소프라노 구미꼬 김(사진=랑코리아).


주세페 김이 독립운동가의 삶을 예술작품으로 선보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3년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옥중에 있는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바탕으로 노래 ‘아들아 아들아’를 작곡해 발표했다. 광복 70주년이었던 2015년에는 광화문에서 열린 국민화합대축제의 오프닝 공연을 장식했다. 시인 윤동주를 테마로 한 공연을 열기도 했다.

주세페 김은 “음악에 입문하기 전 심리학을 전공해서 문학·역사·철학에 관심이 많았다”며 “‘아들아 아들아’를 작곡한 것이 계기가 돼 우리 역사에 보다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최재형의 존재를 알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주세페 김은 “안중근을 통해 알게 된 최재형은 삶 자체가 마치 한 편의 소설처럼 감동적인 실화였다”면서 “예술가로서의 사명감을 갖고 뮤지컬을 구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주세페 김은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을 다니다 뒤늦게 이탈리아 유학을 떠나 성악가가 된 이색 경력의 소유자다. 유학 시절 지금의 아내인 소프라노 구미꼬 김(48·한국명 김구미)을 만나 결혼한 뒤 팝페라그룹 듀오아임을 결성해 활동해왔다. 인문학과 음악을 접목시킨 ‘K문화독립운동’ 프로젝트를 비롯해 다양한 공연을 펼쳐온 두 사람은 최근 융복합 전문예술단체인 랑코리아를 창단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주세페 김은 “그동안 해온 ‘K문화독립운동’ 프로젝트는 우리의 문화를 지키는 동시에 외국의 문화도 함께 받아들이면서 긍정적인 방향을 찾아가자는 것이었다”면서 “역사에서도 긍정적인 태도를 이어가 아픔을 이겨낼 수 있었던 사랑과 화합의 정신을 음악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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