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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두 달도 안돼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문 대통령이 야심차게 지명한 인사가 5대 원칙에 걸려 넘어지기 시작했다. 첫 국무총리로 낙점한 이낙연 전남지사부터 외교부 수장으로 지명한 강경화 당시 후보자, 김상조 당시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까지 적게는 1개, 많게는 3개까지 배제 원칙에 해당됐다. 호남·여성 등을 배려한 ‘대탕평’인사라며 자신있게 소개했지만 5대 원칙 위반 여부만 부각되고 말았다.
5대 원칙과 관련된 사항은 사실 ‘엘리트’의 상징으로 통한다. 일정 수준의 재력과 사회적 지위를 보유해야 비로소 해당될 수 있다. 후보자들이 어겼던 사례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아내의 강남 학교 배정을 위한 위장전입(이낙연), 오랜 해외생활하다 귀국한 자녀의 학업을 위한 위장전입(강경화) 등 모두 경제·사회적 지위가 담보돼야 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정부가 보유한 인재 풀(POOL)이 이와 겹친다는 점이다. 정부가 원하는 ‘해당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전문가 집단’은 곧 엘리트 계층일 확률이 높다. 따라서 정부가 좋은 인재를 찾으면 찾을 수록 5대원칙을 어길 확률도 함께 높아지는 ‘아이러니’가 계속되는 셈이다.
5대 원칙에 ‘구체적 기준’을 마련하겠다는 시도가 나오고 있다. 잦은 인사논란으로 자칫 국정동력이 느슨해질 수 있다는 판단에 청와대가 발벗고 나섰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역시 “인선 기준이 현실적합성이 있어야 한다”며 “고위 공직자 임용을 위한 새로운 기준을 마련하겠다”며 힘을 보탰다.
당장 내각구성이 시급한 정부가 먼저 나섰다. 대통령 인수위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5대 원칙을 세분화한 개선안을 만들고 있다. 특히 논문표절·위장전입 기준을 세분화하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여야도 청문회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이뤘다. 지난달 27일 여야 4당 원내대표는 국회 정상화를 합의하며 인사청문회 개선을 위해 운영위원회에 소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했다.
하지만 기준 마련에 회의적인 목소리도 많다. 부적합 기준을 도저히 합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법 위반과 윤리 위반의 구분이 애매한 데다 도덕관념도 시대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위장전입(주민등록법 위반)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부동산 투기를 위한 위장전입도 있지만 전출이 잦은 직업 군인이 자녀의 학업을 위해 주소를 이전하는 행위, 대학교 기숙사에 배정받고자 주소지를 지방으로 옮기는 경우 등과 같은 ‘생계형’ 위장전입 사례도 많다. 물론 ‘투기 목적을 위한 위장전입이 가장 문제’라고 주장하는 의견도 많지만 ‘개인의 사익추구 측면에서 모두 같다’는 비판도 일리없는 주장은 아니다. 신율 명지대 교수 역시 “청문회 통과기준을 점수화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며 “줄을 세우려면 사안별로 가치 기준을 나눠야 하는데, 이 기준을 만들기가 녹록치 않다”고 했다.